박효진 음성 동성초 교사

 

[충청매일] 2000년 초반 소셜네트워크 최강자로 자리하던 싸이월드가 위태롭다는 뉴스가 나온 지도 몇 년이 지났다. 그간 회생을 위해 노력해왔지만 결국 또다시 폐업 위기에 몰렸다. 싸이월드가 영영 사라진다는 기사가 뜰 때면 사람들의 댓글은 봇물이다. 과거의 기록이 영원히 사라지는 것, 지난 추억이 모조리 지워지는 것이 아쉬운 까닭이다.

어렵사리 웹사이트에 접속을 시도하는 건 꽤 흥미진진한 일이었다. 솔직히 걱정되었다. 사이버공간의 글이란 것이 바람 불면 날아가 버릴 한 점 먼지 같은 거란 사실을 새삼 깨닫는 순간이었다. 누군가는 잊혀질 권리를 주장하는 영원불변의 장기 기억 장치 같은 곳이 삭제 버튼 하나면 수년의 기억조차 깃털처럼 가볍게 날아가 버리고야 마는 역설. 이럴 땐 마치 광활해 보이는 사이버 세상에 내 지분은 하나 없는 것 같은 초라함마저 느껴진다.

한 시절 하루도 빠지지 않고 썼던 일기가 폐업이라는 위기로 바람 빠진 풍선이 돼 버릴 줄은 몰랐다. 부여잡으려고 하면 더 빨리 요란하게 허우적대는 풍선처럼 ‘안돼, 안돼’를 외쳐봐야 이미 구멍이 숭숭 뚫려버린 풍선이 내 말을 듣고 있을 리 없었다.

간절한 염원 덕분인가. 어렵사리 접속에 성공했다. 성현의 말씀도 아니고, 현인의 지혜도 아닌, 조금은 미숙했던, 그리고 매우 솔직한 생각이 ‘비밀글’이라는 갑옷 안에 고요하게 여린 속내를 감추고 있었다. 어떤 글을 읽으면 한없이 가엽고, 또 어떤 글은 의미심장하기도 하며, 때론 환호에 가득 찬 의기양양한 글과 마주하며 용기를 얻기도 했다. 그 시절 나는 그렇게 사이버 작은 텃밭에 물을 주고, 비타민도 주고, 햇볕도 쬐어주며 나를 키웠다.

수 시간에 걸쳐 지난 글을 다시 탐독했다. 매일 매일의 나를 만나고, 내가 쓴 글의 숫자만큼이나 다양한 모습을 하고 있던 나를 대면했다. 나 백 명, 나 이 백 명…. 지금의 나를 닮은 수백 명의 나를 만났다. 복제된, 그러나 조금씩 차이가 나는 나였다.

그곳은 사람들이 우스갯소리로 회자하는 오글거리는 감정의 집합소였다. 보여주기식 사진으로 잔치를 벌이는 일촌 낚시터가 아니었다. 가장 입이 무거운 나만의 대나무 숲이었다. 나를 기억하는 또 하나의 내가 있는 곳이다. 수 시간에 걸쳐 사이버 크레파스에서 허덕거리는 기억을 새 창고에 옮겼다. 물론 새 창고 역시 영원불멸하지는 않을 것이다. 혹시 떠날 수도 있는 싸이월드에게 인사를 건네고 싶다. 그동안 함께해줘서 고맙다고 말하고 싶다. 이번에 닥쳐온 위기도 잘 극복해 싸이월드가 존속되기를 간절하게 바란다.

1999년 서비스를 시작한 싸이월드는 개인 홈페이지 ‘미니홈피’, 인터넷 친구 관계 ‘일촌’, 사이버머니 ‘도토리’ 등의 기능으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2003년 SK커뮤니케이션즈가 싸이월드를 인수하며 2000년대 후반까지 사세를 급격히 키웠다. 한때 누적 가입자 수가 3천만명을 넘어서기도 했다.

하지만 2010년 대규모 이용자정보 해킹 사건과 뒤늦은 모바일 대응, 페이스북과 트위터 등에 이용자를 빼앗기면서 위기를 맞는다. 이후 싸이월드는 2014년 SK커뮤니케이션즈로부터 분사해 재기를 모색했으며 2017년 삼성벤처투자로부터 투자금 50억원을 유치하기도 했다. 그러나 과거의 인기를 회복하지 못하고 쇠락의 길을 걸었다. 지난해에는 10월 사전 공지 없이 접속이 일시 중단되기도 했다. 동시에 ‘cyworld.com’ 도메인 주소의 만료 기간도 지난해 11월로 알려지면서 싸이월드가 이대로 서비스를 중단하는 것 아니냐는 항의가 빗발쳤다. 이에 대해 당시 싸이월드 측은 오는 11월 21일까지 도메인을 1년 연장하고 서비스를 이어가겠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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