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책테라피 강사

[충청매일] 학교 교문 앞에서 팔던 병아리, 아아, 그것들은 얼마나 사랑스럽던지. 연노랑빛 보송보송한 털을 가끔씩 세우기도 하면서 삐약거리는 그 사랑스러운 것들을 한 두 마리 사들고 오면 집 안은 온통 신기한 생명으로 가득차는 공간이 되었을지. 모든 생명체에게 나이들고 힘 빠지고 더는 호기를 부릴 수도 없는 날은 반드시 찾아온다. 그럴 때 무엇으로 위로를 삼을까. 어느 날 수평아리가 한 마리 태어난다. 그 병아리는 다른 병아리와 달랐다. 힘이 세며 달리기도, 높이뛰기도 따라올 병아리가 없었다. 시간이 흘러 이 병아리는 늠름하게 자라 누구도 따라오지 못하는 힘센 수탉이 되었다. 새벽마다 힘차게 우는 수탉 울음소리는 온 동네에 울려 퍼지고, 힘자랑 대회에서도 이 닭은 언제나 이긴다. 동네의 수탉들은 이 힘센 수탉을 부러워하고, 암탉들은 그의 뒤를 졸졸 따라 다닌다.

오호, 통재라. 어느 날 이 수탉보다 더 힘이 센 수탉이 동네에 나타난다. 그 뒤로 수탉은 동네에서 술을 제일 잘 마시는 수탉이 된다. 술에 취하면 자신이 젊었을 때 얼마나 힘이 세고 멋있었는지 큰 소리로 떠들어대곤 한다. 온 몸의 근육질을 자랑하던 수탉은 자신이 예전과 같지 않다는 걸 깨닫고는 시름에 잠긴다. 이때 수탉 부인이 다가와 건강하게 자라고 있는 손자, 손녀들 그리고 힘이 센 아들들, 어느 암탉들보다 알을 많이 낳는 딸들을 보여준다. 그리고 당신은 여전히 힘센 수탉이라고 말해준다.

어쩌면 식상하고 심심한 이야기일 수 있지만 작가 특유의 화면 구성법과 화법, 유머가 넘치는 글, 조화를 이루는 그림이 압도한다. 거칠고 험한 세상에서 힘센 수탉으로 살아야 하고, 피나는 노력으로 힘센 수탉이 되기도 했지만 세월에 밀려 더 이상 힘이 세지 않다는 것을 알고 실망과 자괴감으로 힘들어하던 수탉. 우리 주변에 있을만한 수탉들 모습이다. 유교적 가부장제 사회에서 아들로도 아버지로도 살아내기가 얼마나 힘겨웠을지 남자아이를 낳아 기르다보면그 속사정을 조금은 이해하게 된다. 힘이 세지 않아도 힘을 내고, 자기 꿈은 접어둔 채 앞을 보고 달려야 하던 우리 아버지들, 남편의 모습이기도 하다. 그림에 등장하는 닭들의 삶이 우리 아버지, 남편이 살아온, 살아낸 삶의 알레고리이기도 하다. 비단 수탉 뿐일까. 암탉으로 사는 일도 끝없이 힘을 내며 깜냥을 다해 살아가는 것이 생명 가진 존재들의 일이다. 어느 날 갑자기 나이든 나, 힘없는 나, 자랑할 게 없다고 좌절하고 자책하는 시간을 자기 삶에서 만나게 될 때 어떻게 그 상실의 시기를 잘 보낼 수 있을까.

이 책은 나이 들어감과 그에 따르는 여러 서글픔을 말하려는 것은 아니다. 강함 뒤에서 조용히 기다려준 온화함과 여유 배려심 넓은 시야 농익은 삶 즉 나이 들어서 가질 수 있는 아름다운 것들을 수탉의 삶을 빌려 말하고자 했을 것이다.

오랜 세월을 함께 해온 암탉은 수탉의 까부라드는 마음을 위로해줄 수 있겠다. 애증의 세월과 인내의 세월이 주는 달콤한 열매와 함께 세상의 수탉들이 세상에서 제일 멋졌던 꼬리 깃털에 또다른 꼬리를 달아줄 수 있을 것이다. 한 때 강했고 강해야 했던 것은 그것으로 족하다고, 그리고 늘 강할 필요도 없다고, 평화롭게 늙어가도 된다고 위안을 건네는 것이다.

이호백 글·이억배 그림의 ‘세상에서 제일 힘센 수탉’은 그걸 이야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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