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매일] “아녀! 마음먹은 길에 바로 가야지. 내일 되면 또 어떻게 변할지 몰러!”

장팔규가 주봉이의 잡은 손을 뿌리쳤다.

“나랑 같이 우리 도가로 가면 좋을 텐데 서운하구나.”

주봉이는 장팔규와 함께 가지 못하는 것이 못내 서운한 눈치였다.

두 사람은 팔영루가 보이는 길에서 각자 돌아섰다. 팔규는 북진과는 반대쪽인 강 하류 서창 쪽으로 발길을 돌렸다. 주봉이가 팔규의 가는 모습을 지켜보다 팔영문을 향해 돌아섰다. 이내 두 사람은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한편 북진여각에는 이튿날부터 각 지역의 임방객주들과 보부상들, 그리고 휘하의 행상들이 속속 모여 들었다. 난장을 틀기 위함이었지만 그보다 급한 문제가 청풍도가 놈들의 습격부터 막기 위함이었다. 동몽회원들도 모두 북진으로 불러들여 장마당 상전과 북진여각의 곳곳에 목을 지키며 청풍도가의 동태를 주시했다. 그러나 며칠이 지나도 청풍도가에서는 눈에 띄는 변화가 보이지 않았다. 청풍읍내로 도가 염탐을 나간 녀석들도 별다른 변화가 없다는 연락을 수시로 해왔다. 북진여각 일각에서는 뜨내기 같은 주봉이의 말을 믿고 너무 호들갑을 떠는 것은 아니냐는 볼멘소리도 나왔다. 그렇지만 최풍원 대행수는 헛수고를 하는 한이 있더라도 미리 대비를 해서 나쁠 것은 없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더욱 방비를 잘하라고 독려했다.

난장이 틀어지는 초이렛날 밤이 이슥해지자 강 건너 청풍 읍리나루에 정박해 있던 두어 척의 거룻배들이 어둠을 뚫고 북진나루를 향해 강을 건너오고 있었다. 한낮에야 청풍읍성과 북진을 오가는 사람들이 있으니 강을 건너는 거룻배가 이상할 것도 없지만 이렇게 밤이 깊어 배를 띄우는 것은 좀처럼 없는 일이었다. 분명 청풍도가에서 무슨 행동을 시작한 것이 틀림없었다. 북진나루 두둑에서는 김상만과 장석이, 그리고 비호가 강을 넘어오는 배를 주시하고 있었다. 그런데 거룻배들이 상류의 부엉이굴로 가는 것이 아니라 곧장 북진나루를 향해 곧장 직진하고 있었다.

“저놈들이 왜 이리로 오고 있지?”

장석이가 의아해했다.

“혹시 우리 계획이 들통 난 것이 아닐까요?

비호가 장석이 말을 받아 불안한 어조로 되물었다.

“그렇게 약을 쳐놨는데 그럴 리가 있겠냐. 무슨 꿍꿍이가 있겠지. 어찌하려는지 좀 지켜보자.”

피륙전 김상만 상전객주가 어둠 속에서 거룻배의 움직임을 살피며 나직하게 말했다.

북진여각에서는 저녁 어스름이 되자 동몽회원들을 포함한 대부분 사람들을 부엉이굴 주변에 포진시켜놓고 있었기 때문에 여각은 빈 집이나 다름없었다. 만약 저대로 청풍도가 놈들이 북진나루로 들어와 여각을 친다면 속수무책이었다. 혹시 북진여각에서 썼던 꼼수가 먹혀 들어가지 않은 것인지 불안했다.

“여보시오! 여각 주변에 화톳불을 피우고 모두들 밖으로 나와 횃불을 들고 나와 사방 돌아다니시오!”

장석이가 북진여각에 남아있던 사람들에게 소리쳤다.

이윽고 북진여각은 강 건너에서도 보일 정도로 사방이 대낮처럼 환해졌다. 분명 강에 떠있는 배에서도 불빛을 보았을 텐데 청풍도가 놈들이 탄 거룻배는 뱃머리를 틀지 않고 그대로 북진나루를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아무래도 뭔가 잘못된 모양이유?”

장석이도 불안해하며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김상만을 쳐다보았다.

“아직은 여유가 있으니 조금만 더 기다려보자!”

김상만은 여전히 흔들리지 않고 침착하게 강에 떠있는 배를 주시했다.

“객주님, 읍나루에서 다른 배들이 움직이고 있어유?”

비호가 강 건너 청풍읍성 아래 나루터를 가리켰다.

비호의 말처럼 청풍 읍나루에서 거룻배 예닐곱 척은 족히 되어 보이는 배가 떼를 이루며 서서히 움직이고 있었다. 그런데 나루를 떠난 배들이 강심에서 방향을 돌려 뱃머리를 상류 쪽으로 돌렸다. 열을 지어 상류로 향하던 배들이 청초호를 지나치는가 싶더니 갑자기 왼쪽으로 방향을 틀어 곧바로 부엉이굴이 있는 엉성벼루로 향했다. 그와 동시에 북진나루를 향해 오던 배들도 뱃머리를 돌려 부엉이굴을 향했다.

“저 놈들도 애초에 부엉이굴로 갈 놈들이었어. 우리 눈을 속이려고 북진으로 향하는 척 한 다음 다른 놈들을 부엉이굴로 가게 하려던 속셈이었구만!”

김상만이 이제야 청풍도가 놈들의 속셈을 알아차렸다는 듯 고개를 주억거렸다.

SNS 기사보내기
기사제보
저작권자 © 충청매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