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매일] “북진여각 대단하구나. 저 많은 물산들을 어떻게 다 끌어모았다냐?”

“최풍원 대행수가 각 임방객주들을 호달궈 길목을 막고 청풍도가로 흘러드는 물산들을 싹쓸이 한 거지. 그리고는 물산 값은 난장이 끝나면 주겠다며 미뤄 놓았단다.”

“그래도 임방객주들 불만이 없다냐?”

“없을 리 있겠냐? 그렇지만 최풍원 대행수에게 밉보이면 장사를 해먹을 수 없으니 속에서 울화통이 치밀어도 꾹꾹 참고 있는 것이겠지!”

장팔규가 최풍원 대행수를 긁어대며 뒷담화를 했다.

“그래도 풍문을 들어보면 고을민들 평판이 후하다고 소문이 났던데?”

주봉이가 슬쩍 팔규의 속내를 떠봤다.

“개뿔 같은 소리! 제 상다리 밑에 떨어진 숟가락 줍는 일 누군들 못하겄냐? 임방객주들 등쳐 고을민들한테 인심 쓰는 것이야 나도 하겠다. 최풍원 대행수는 참으로 고약한 사람이다. 아마도 북진여각에 코만 꿰어있지 않으면 남아있을 임방객주들은 하나도 없을 걸!”

장팔규가 최풍원 대행수를 마구 깎아내렸다.

“그럼 만약 이번 난장이 잘못되면 북진여각이 된서리를 맞을 수도 있겠네?”

어둠 속에서 줄나래비를 이루고 있는 햇불을 바라보며 주봉이가 물었다.

“만약 이번 일이 잘못 되면 북진여각은 쪽박을 차고 조직도 모두 풍비박산이 되겠지. 최풍원 대행수가 그렇게 독단을 부리니 인지상정이지.”

장팔규가 남의 이야기하듯 했다.

“그래, 팔규야! 그런 사람 밑에서 일해 봤자 맨날 종살이 밖에 더 하겠냐? 그러니 나랑 함께 우리 도가로 가자!”

주봉이가 팔규를 회유했다.

“그 전에 너한테 물어볼 말이 있다.”

장팔규가 주봉이 물음을 회피하며 화제를 돌렸다.

“뭔데?”

“청풍도가에서 북진여각을 치겠다는 날이 정말 열흘 뒤인 거여?”

“이젠 그만 북진여각을 뜰 사람이 그건 뭣 하러 물어봐?”

“뜰 거기는 하지만 그래도 궁금하잖어.”

“뭐가?”

“생각해봐. 여각 곳간을 털기 위해 습격을 한다면 난장을 틀기 전에 해야지, 닷 세 뒤에 난장이 열리면 많은 물건들이 팔려나갈 텐데 그 전에 쳐야지 열흘 뒤에 들이닥치면 무슨 영양가가 있겠냐? 그게 너무 이상하지 않냐?”

장팔규가 미심쩍다며 물었다.

“팔규야, 니가 이제 북진여각을 떠났으니 하는 말이다. 실은 열사흗 날이 아니고 초이렛날이 북진여각을 치는 날이다! 저놈들 그것도 모르고 부엉이굴로 물산들을 옮겨놓고 안심을 하고 있겠지!”

주봉이가 햇불이 나래비를 치고 있는 강가 빈장 위를 보며 비웃듯 말했다.

주봉이가 말한 초이렛날이면 불과 사흘 뒤였다. 그리고 그날은 북진여각에서 난장을 틀기로 결정한 전날이었다. 주봉이 녀석의 꿍꿍이는 거기에 있었다. 멀찍이 잡혀있는 날짜를 흘려 여유를 갖게 한 다음 그 허점을 노려 북진여각을 습격하려는 계획이었다.

“열 사흗날이고, 초이레고 이젠 관심 없다! 난 이곳이 싫어졌다. 북진여각을 떠나겠다. 집나가는 년이 물 길어다 놓고 가겠냐? 청풍도가와 북진여각이 싸우든 말든 이젠 나하고는 상관없다!”

장팔규가 관심조차 없다는 듯 과장되게 목소리를 높였다.

“청풍도가도 난리 났다.”

“왜?”

“관아에 공납할 기일은 부득부득 다가오지, 물건은 다 팔아치웠지, 값은 곱절로 올랐는데도 산지나 장에서 물산은 구할 수 없지. 그런데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뗏꾼들을 이용해 하려던 나무장사까지 어그러져 곡물 판 돈까지 날려버리고 말았다. 그래서 부득불 북진임방을 쳐서 물산을 확보할 요량인 게야.”

주봉이는 이제 팔규를 완전히 믿는지 묻지도 않은 이야기를 술술 풀어냈다.

“그랬구나.”

장팔규가 어둠 속에서 남의 이야기하듯 했다.

“너는 나랑 같이 가겠지?”

강을 건너 청풍 읍성으로 들어가는 팔영루가 희끗희끗 보이자 주봉이가 물었다.

“난 이 참에 좀 더 큰 고을로 갈란다. 거기 가서 돈을 벌어 고향으로 갈란다.”

“밤이 이슥한데 가더라도 오늘은 나와 도가로 가서 자고 내일 떠나거라!”

주봉이가 팔규를 잡아 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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