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매일] 어스름이 짙어지자 두 사람은 바깥 동정을 살피며 도망칠 준비를 했다. 북진여각의 구조를 잘 알고 있는 장팔규는 지금 자신이 갇혀있는 곳간의 위치를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었다. 날은 어두워졌어도 여전히 밖에서는 물산들을 실어 나르느라 두 사람이 갇혀있는 창고는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저놈들, 우리가 여기 갇혀있다는 것도 모르나 벼.”

주봉이는 종일 곳간 문 한 번 열어보지 않는 북진여각 놈들이 외려 이상했다.

“왜, 잡혀나가 볼기짝이라도 맞아야 시원하겄냐. 니 얘기 듣고 물산을 나르기도 벅찬데 너 같은 조무래기 관심이나 있겄냐. 더구나 니 스스로 청풍도가 속셈을 다 알려줬는데 더 궁금할 게 뭐 있겠냐?”

장팔규가 핀잔을 주었다.

“다 알려줬다고 누가 그러더냐?”

“그럼 뭐가 도 있더냐?”

“그건 알 것 없고, 어서 빠져나갈 궁리나 하자!”

주봉이가 야릇한 웃음을 흘리며 곳간에서 도망부터 치자고 장팔규를 재촉했다.

“야, 일루 와봐!”

장팔규가 곳간 한쪽 구석에 쌓아놓은 섬 앞에 서서 주봉이를 불렀다.

“왜 그래?”

“나는 맞은 자리가 부러졌는지 아무것도 들 수가 없어. 그러니 니가 이 섬들을 옆으로 옮겨 봐!”

장팔규가 서있기도 힘들다는 듯 한 쪽 팔을 추욱 늘어뜨린 채 엉그럭을 썼다.

“왜?”

“잔소리 말고 옮기기나 혀!”

장팔규의 재촉에 주봉이가 쌓여있는 섬들을 들어내자 중방 밑으로 뻥 뚫린 구멍이 드러났다.

“이게 뭔 구멍이냐?”

“뭔 구멍은 뭔 구멍, 개구멍이지!”

“이런데 무슨 이런 구멍이 있다냐?”

“옆 곳간과 통하는 구멍이니 그리로 빠져나가 봐.”

“왜?”

주봉이가 잔뜩 의심스러운 눈치로 물었다.

“옆 곳간으로 가야만 우리가 저놈들 눈치 채지 못하게 도망 칠 수가 있단 말이다!”

장팔규가 주봉이에게 설명을 해도 주봉이는 의심스러워하며 선뜻 개구멍으로 머리를 들이밀지 못했다. 팔규가 먼저 대가리를 개구멍으로 들이밀고 꽉 끼인 몸을 빼느라 온몸을 비틀며 버드덩거렸다. 그 뒤로 주봉이가 팔규 똥궁댕이에 대가리를 처박고 버둥거리며 옆 곳간으로 넘어갔다.

“주봉아, 거기 살창 너머를 봐!”

장팔규가 막 개구멍을 빠져나온 주봉이에게 곳간 상방과 중방 사이에 가느다란 막대기로 막은 창문을 가리켰다. 주봉이가 까치발을 딛고 밖을 내다보았다. 살창 밖으로는 마을 지붕들이 보였고 그 앞으로는 강물이 흐르고 있었다.

“곳간 바로 옆이 마을로 내려가는 골목이여. 살창을 뜯어내고 흙벽만 조금 트면 얼마든지 도망갈 수 있겄네!”

주봉이 목소리가 날아갈 듯 가벼웠다.

“그래서 이리로 오자 한 거여!”

장팔규가 생색을 냈다.

주봉이가 나무오리로 만든 살 하나를 잡아당기자 힘없이 부러졌다. 몇 번 힘을 쓰지도 않아 나무오리가 뜯겨지고 살창 틀을 잡아당기자 벽이 뚫렸다. 그러나 건장한 사내가 빠져나가기에는 비좁았다. 장팔규는 곳간 문을 통해 여각 안쪽 마당을 망보고, 주봉이는 살창 아래 흙벽을 발길로 내지르며 조심조심 털어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벽에 커다란 구멍이 생겼다. 벽이 털려 나가는데도 여각 안쪽에서는 물산들을 옮기느라 여념이 없어 눈치조차 채지 못했다. 벽이 뚫린 곳간 바깥쪽도 마을 고샅으로 사람들 왕래가 적어 눈에 띌 염려가 없었다. 더구나 시각이 한밤중이라 고샅은 개미새끼 한 마리 없었다.

“혹시라도 짐 옮기는 일꾼들 눈에 띄기라도 하면 낭패니 빨리 여기를 벗어나자.”

장팔규가 벽을 뚫고 나오며 주봉이에게 서두르라고 낮게 속삭였다.

그 고샅은 마을을 지나면 곧바로 강과 연결되어 있어 강 건너 청풍 읍내로 도망치기에도 수월했다. 두 사람은 별다른 어려움 없이 갇혀있던 곳간을 빠져나와 강가에 당도했다. 한숨을 돌린 두 사람이 강가 바위 위에 올라앉아 북진여각 쪽을 올려다보았다. 북진여각에서 강가로 난 길을 타고 부엉이굴 쪽으로 횃불 줄기가 띠처럼 이어져 있었다.

“밤새 나를 모양이네.”

주봉이가 말했다.

“아마 특산품만 나르려고 해도 며칠은 걸릴 걸.”

장팔규가 특산품이라는 말에 힘을 주며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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