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매일] “여기 곳간에 물산들 옮긴다는 그 말. 그래 북진여각 물산을 어디로 옮긴다더냐?”

“내가 널 구해보려고 온갖 궁리를 하느라 흘려들었지만, 저어기 엉성벼루 부엉이굴이라고 하는 것 같더라.”

장팔규가 여운을 남겼다. 부엉이굴이라면 북진나루 상류 쪽 학현취적이 있는 강가의 벼랑에 있는 굴이었다.

“확실하냐?”

“부엉이굴이라는 소리는 분명하게 들었다. 거기가 확실하다!”

“그래에?”

주봉이가 뭔가 골똘하게 생각하고 있었다. 그때 두 사람이 갇혀 있는 곳간 밖이 시끌시끌해졌다.

“야! 너희들 지금 당장 여각 안 곳간으로 모두 오래!”

“왜?”

“곳간에 있는 특산품과 다른 물산들을 오늘 중으로 몽땅 부엉이굴인가, 맞어 부엉이굴로 옮기라는 엄명이 떨어졌어!”

전갈을 하러 온 녀석이 부엉이굴에 힘을 주어 말했다.

“무슨 일이랴?”

“니놈이 그걸 알아 뭣해! 시키는 대로 그저 일이나 하면 되지.”

“맞어! 우리 같은 놈들이 이유는 알아 뭘 해! 부앵이굴이든 여우굴이든 옮기기만 하면 되지!”

곳간 밖에서 잠시 동안 녀석들이 이바구를 떨더니 이내 부산해지기 시작했다.

“니 말이 틀림없는 것 같다! 여각 안 물산들을 부엉이굴로 옮기려나보다!”

“내가 분명 들었다 그랬잖냐?”

“팔규야! 우리 함께 여기서 빠져나가자!”

밖에서 사람들 발소리가 어지럽게 들려오자 주봉이가 갑자기 몸이 달아 안절부절못했다.

“여각이야 망하든 말든 나도 이놈의 여각을 뜨고 싶은데, 도망을 친다 해도 당장 갈 곳이 없으니 막막하네.”

팔규가 북진여각 욕을 하며 주봉이의 얼굴을 아련하게 바라보았다.

“그건 걱정 말어. 나하고 청풍도가로 같이 가자!”

“청풍도가에서 날 받아줄까?”

“그건 걱정할 것 조금도 없어! 청풍도가 실권자인 김 참봉이 종조부여. 그러니까 주태 형님이 내 사촌일세. 그러니 내 말이면 너 하나쯤은 책임질 수 있어!”

주봉이의 성은 김 가였다. 김주봉이 말이 사실이라면, 보연이를 동첩으로 삼았던 김 참봉이 주봉이 할아버지와 형제간이었다. 주봉이가 김 참봉의 조카라니 놀랄 일이었다.

“그렇게만 된다면 너를 따라가 볼까?”

장팔규가 주봉이 말에 찰싹 달라붙는 시늉을 했다.

“그러자!”

“주봉아, 북진여각 모든 사람들이 달려들어도 오늘 밤새도록 물산들을 옮겨야 할 거다. 짐을 나르느라 어수선하고 밤이 깊어지거든 그 틈을 타고 도망치자!”

사람들의 감시 눈만 피한다면 건장한 청년 둘이 묶인 줄을 풀고 이까짓 흙벽쯤 뚫고 도망치는 것은 ‘소경 밤길 가기’보다도 쉬운 일이었다. 더구나 장팔규는 북진여각의 집 구조를 훤하게 알고 있었다. 지금 장팔규와 주봉이가 갇혀있는 곳간은 북진여각의 바깥 행랑채에 딸린 곳간이었다. 북진여각에는 행랑채에 딸린 바깥 곳간과 사랑채 안에 딸린 곳간 두 곳이 있었다. 행랑채에 딸린 곳간에는 값이 그리 비싸지 않은 여느 물산들을 보관했고, 안에 있는 곳간에는 귀한 특산품이나 값이 제법 나가는 귀한 물산들이 보관되어 있었다. 아마도 주봉이 말을 듣고 북진여각에서는 청풍도가의 습격을 피하기 위해 귀한 특산물과 값진 물산부터 옮기려는 것 같았다. 두 사람이 갇혀있는 곳간 밖은 하루 종일 분주했다. 사람들 발자국 소리가 종일 부산하게 움직였고 마차 소리도 끊이지 않고 들려왔다. 곳간 안에서 바깥이 어떤 상태인지 눈으로 확연하게 보이지는 않았지만 들려오는 소리만으로도 엄청남 물량이 여각 곳간에서 부엉이굴로 옮겨지고 있음을 짐작할 수 있었다. 마치 난리를 만나 피난을 떠나는 집처럼 온통 집 안팎을 뒤집어엎는 듯했다.

“북진여각도 대단하구나!”

주봉이가 곳간에 쌓여있는 물산들을 나르느라 종일 끊이지 않는 분주한 소리에 놀란 듯 팔규에게 말했다.

“내가 그러지 않았냐? 이제 북진여각도 예전의 북진여각이 아니라고. 얼마 전에는 여각에서 쓸 마차도 열대나 들어왔고, 각 임방들 물산을 실어 나를 배도 두 척이나 지었다더라.”

주봉이가 놀라는 것을 보며 대수롭지도 않다는 듯 팔규가 대답했다.

 

SNS 기사보내기
기사제보
저작권자 © 충청매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