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진명
온깍지활쏘기학교 교두

[충청매일] 우리가 우리의 활쏘기 시합에서 ‘궁도대회’라는 말을 쓰면 다른 나라 사람들이 이렇게 오해합니다.

“한국에는 일본 활 대회가 굉장히 많이 열리네!”

우리 활과 달리 일본 활은 전 세계 모든 대륙에 도장이 없는 곳이 없습니다. 그만큼 많이 보급되어 활성화되었고, 대륙별로 세계대회가 치러집니다. 머지않아 올림픽 종목에 들어갈 만큼 많은 국가에 많은 동호인이 있습니다. 그들은 한결같이 ‘弓道’대회라고 합니다. 우리가 이 말을 쓰면 그들은 일본 활로 우리를 오해하고, 일본 활이 아니라고 하면 반발을 하여 항의합니다. 실제로 우리나라에서 주최한 세계 민족궁 대회에 참가한 일본인들이 주최 측에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정작 활 쏘는 사람들 자신은 궁도인이라는 말이 입에 달라붙어서 뱉을 생각이 없습니다. 궁도가 일본말임을 지적한 지가 벌써 20년이 넘었습니다.(『우리 활 이야기』) 그런데도 궁도라는 말에 대한 애착은 눈물겨울 지경입니다. 한 단계 더 나아가 이제는 궁도가 우리말이라는 궤변까지 떠돕니다. 그것도 알 만한 교수님들이 그런 소리를 하고 다닙니다. 근거는 이렇습니다. 조선왕조실록에서 궁도를 검색해보니 세조실록에 단 1차례 2번 쓰인 용례가 나타납니다. 세조는 활을 잘 쏜 왕입니다. 활쏘기도 정교함이 극에 이르면 도에 이를 수 있다는 논리로 활도 궁도라고 할 수 있다는 내용입니다. 이것으로 끝입니다.

모든 말에는 말하는 이의 태도가 숨어있습니다. 이때 세조의 말을 잘 살펴보면 ‘도’라는 큰 말을 잡기에 적용하여 설명하는 것에 대한 겸연쩍음 또는 멋쩍음 같은 것이 느껴집니다. 당시 ‘도’라는 말은 성리학과 중국철학 전반의 용어여서, 활이나 칼 같은 잡기에 붙일 성질이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어린 세자 앞에서 마치 활에 무슨 큰 도라도 있는 듯이 설명하자니 어딘가 못내 어색했던 것이지요.

궁도가 우리말이라면 그 후에도 얼마든지 썼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 뒤로 수백 년 동안 아무도 안 쓰다가 일제강점기에 일본문화를 따라 들어옵니다. 그것도 군홧발 자국을 내면서 말이죠. 궁도는 일본 식민문화의 찌꺼기가 분명합니다. 그런데 이 말이 조선왕조실록에 나오는 말이라면서 오늘날 써도 괜찮다는 논리를 펴는 사람들이 적지 않습니다. 앞뒤가 안 맞고 사실과 말이 어긋나는 이런 주장은 논리라고 하지 않습니다. 이런 것들을 특별히 ‘궤변’이라고 합니다. 이런 궤변이 귓속에 달콤하게 들리는 것은, 그렇게 듣고 싶은 사람들의 마음 때문입니다. 분명히 해방 직후 일본어 정화작업에서 청산된 용어인데도, 그 동안 입에 달라붙은 말을 걷어내기가 불편했던 것이지요. 궁도가 사라지지 않는 이유는 아주 단순합니다. 문제는 이런 ‘틀린 관행’을 ‘전통’으로 만들려고 궤변을 부리는 식자들입니다.

그 중 다행인 것은 최근 들어 ‘궁도대회’를 버리고 ‘궁술대회’, ‘활쏘기대회’, ‘국궁대회’라고 쓰는 사례가 점차 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협회 중심의 대회 용어는 외국인들의 눈에 여전히 우리가 일본 활을 쏘는 것으로 비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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