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매일] “그런데…….”

“그런데?”

장팔규의 말에 주봉이 낯빛이 갑자기 환하게 바뀌었다.

“네 말은 믿을 수 없지만, 혹시 모를 일이니 만일의 경우를 대비해 지금 여각 곳간에 쌓여있는 모든 물산을 다른 장소로 옮기겠다는 거여.”

“어디로? 어디로 옮긴다더냐?”

주봉이가 귀를 세우며 관심을 나타냈다.

“그러나 저러나 네가 한 말은 조금도 거짓이 없냐? 만약 있으면 살아남기 힘든 분위기던데…….”

“설마 죽이기야 하겠냐?”

“죽이고도 남을 걸? 자기들이 시킨 온갖 궂은일을 다하며 수족처럼 일하던 나를 이렇게 만든 걸 보면 모르겠냐, 아이구구! 난 이제껏 거역 한 번 안 하고 시키는 대로 무조건 충심을 바쳐왔는데……. 대행수도 너무 독단적이여. 저러면 오래 못가! 여기서 나가기만 하면 그만 북진여각을 뜰 거여!”

장팔규가 서운함을 숨기지 않고 발설했다.

“고향으로 갈 거냐?”

주봉이가 물었다.

“이렇게 빈털터리로 그리 할 수는 없지. 내가 우리 고향 구레골로 돌아갈 때는 돈을 한 자루 지고 갈 거여. 그래서 우리 아부지와 식구들을 업신여기던 마을사람들을 부리며 떵떵거리고 살 거여!”

장팔규는 이까지 응시 물며 주봉이 물음에 대답했다.

“그래, 너는 정말 북진여각을 뜰 거냐?”

주봉이가 무엇을 확인이라도 하려는 듯 팔규를 뜯어보며 말했다.

“너 때문에 이렇게 눈 밖에 났는데 나를 다시 쓰겠느냐? 혹여 쓴다고 해도 사람을 이리 헌 짚신 버리듯 하는 이런 데는 있고 싶지 않다. 내가 고향을 떠난 것도 이런 취급을 하는 고향사람들이 싫어서였다. 그런데 여기 와서 또 이런 취급을 받고 보니 정나미가 뚝 떨어졌다!”

장팔규가 체머리를 흔들었다.

“우리 같이 뜰까?”

“어디로?”

“청풍도가로!”

“뭐? 청풍도가?

장팔규가 놀라서 되물었다.

“그래, 청풍도가!”

주봉이가 아주 천연덕스럽게 대답했다.

“니 놈이 제 정신이냐! 지 주인인 김주태의 청풍도가 비밀을 팔아먹은 놈이 거길 들어가면 니가 성할 것 같으냐?”

장팔규가 여드레 삶은 호박에 이빨도 안 들어갈 소리 말라며 펄쩍 뛰었다.

“다 수가 있지…….”

그런 장팔규의 모습을 보며 주봉이가 야릇한 웃음을 흘렸다.

“무슨 수?”

“실은 난 바람잡이여. 여기에 가짜 정보를 흘리고 적당한 기회를 봐 강을 건너 청풍도가로 돌아가려했는데, 재수가 없어 갇힌 거지.”

주봉이는 팔규가 꾸민 술수인 줄도 모르고 제 비밀을 까기 시작했다.

“그럼 처음부터 여각을 속이려고 작정하고 이리로 온 거네?”

“그려!”

주봉이가 팔규에게 제 스스로 정체를 밝혔다.

“넌 배짱도 좋다! 그러다 들통 나면 무슨 화를 당하려고 그런 짓을 했냐?”

“내가 하루 이틀 사이에 청풍도가로 돌아가지 않으면 나를 구하겠다고 약조를 받고 왔지! 아마 지금쯤 청풍도가에서도 무슨 일이 생긴 것을 알고 날 구하기 위해 수를 쓰고 있을 거여!”

주봉이는 북진여각 한복판에 갇혀있으면서도 청풍도가를 믿고 조금도 걱정하는 기색이 없었다.

“이봐! 북진여각도 예전 임방 때가 아녀. 청풍도가에서도 쉽게 너를 구해내지는 못 할 거여. 아마도 무슨 일을 벌어지면 우선 너부터 강물에 처넣을 걸?”

장팔규가 주봉이 얼굴을 쳐다보며 은근하게 불안감을 부추겼다.

“무슨 일이 있어도 도가에서는 날 구하러 올 거여! 그리고 북진여각 곳간도 털러 올 거구만!”

무슨 믿는 구석이라도 있는지 주봉이는 청풍도가에서 자신을 구하러 올 것이라고 굳게 믿고 있었다.

“그렇게 쉽지는 않을 거여. 북진여각도 예전 북진여각이 아녀. 그러니 청풍도가를 그리 믿지는 말어!”

“믿건 말건 그건 내 일이니 너는 니 걱정이나 혀. 그나저나 아까 얘기하던 것이나 마주 해보자!”

주봉이가 팔규의 당부는 귓전으로 흘리며 화제를 돌렸다.

“무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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