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매일] 읍내 청풍장은 사흘과 여드레에 열렸다. 초사흘 장은 이미 지났고, 열사흘 장날은 열흘 뒤였다. 북진여각에서 계획하고 있는 난장은 열사흘 청풍 읍장의 중간이었다. 주봉이 말대로 청풍도가에서 북진임방을 습격하기로 계획한 날이 열사흘 날이면 열흘이 남아 있었다. 그리고 열사흘 날이면 북진에서는 이미 난장이 틀어지고 끝날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런데 촉각을 다투는 중요한 사안을 열흘 동안이나 기다린다는 것도 미심쩍었다. 그 기간 동안 북진여각을 요절낼 무뢰배들을 모으기 위해서라고 생각해봐도 설득력이 없었다. 왜냐하면 무뢰배들을 동원하는 데는 그만한 시간이 필요 없었다. 그들은 쇠파리와 같아서 엽전 냥이나 생기는 일이면 순식간에 모여들 위인들이었기 때문이다. 또, 도가의 비밀을 폭로한 주봉이는 어디선가 보았던 낯익은 얼굴이었다. 더구나 공원이라는 직책이 보부상 조합에서 실무를 맡아보는 중책인데, 그런 자가 뭐가 아쉬워 자기 동료들을 배신하고 비밀을 상대에게 넘겨주었는지도 의문이었다. 최풍원은 아무리 머리를 짜내도 혼란만 가중될 뿐이었다. 청풍도가에서 어떤 방법으로든 대응을 해오리라는 사실은 진작부터 예상을 하고 있었지만, 시기는 분명 열흘 뒤가 아닐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습격을 해온다면 난장을 틀기 직전 모든 물산들이 쌓여있을 그 때가 호기일 것이었다. 대행수 최풍원이가 서둘러 여각 식구들과 상전 객주들을 불러 모았다.

“저 주봉이란 놈을 믿을 수 없어! 분명 무슨 꿍꿍이가 있어!”

“형님! 주봉이 놈 주릴 틀까유?”

도식이가 불끈 핏대를 세우며 말했다.

“그렇게 해서 먹힐 놈이 아니다.”

“이보시게 대행수, 청풍도가에서 꼼수를 쓰고 있다면 우리도 꼼수를 써보는 게 어떻겠는가?”

싸전 박한달 객주가 말했다.

“어떻게 말인가?”

“청풍도가에서 우리 곳간을 털려는 것은 분명한데 언제 습격을 해올는지 그 날짜를 모르는 게 문제 아닌가. 그런데 주봉이란 놈이 우리를 속이려고 부러 여기로 왔다면 절대로 그 날짜를 토설하지는 않을 게 아니겠소이까?”

“그렇다고 주리를 틀어 될 일도 아니잖는가?”

“그러니가 우리도 꼼수를 써보자 이거요.”

“어떻게?”

“팔규를 이용하면 어떨까?”

“팔규를?”

박한달의 계획은 이러했다. 장팔규를 주봉이가 갇혀있는 창고에 집어넣어 조봉이의 속내를 떠보자는 것이었다. 그러려면 주봉이가 팔규를 믿도록 꾸며야했다. 최풍원과 박한달이는 장팔규를 불러 모의를 했다. 장팔규가 신원이 불투명한 주봉이를 데리고 온 탓에 윗전으로부터 미움을 사 치도곤을 당하고 내침을 당한 것으로 꾸미기로 했다. 그런 후 팔규는 모진 매를 맞아 온몸이 만신창이가 된 채 주봉이가 갇혀있는 곳간에 내동댕이쳐졌다. 주봉이가 놀라 팔규 곁으로 다가왔다.

“어찌된 일이냐?”

“어이구! 어이구!”

주봉이의 물음에는 대답도 없이 팔규는 죽는 시늉을 하며 엉그럭을 썼다.

“팔규야! 왜 이렇게 깨졌어?”

주봉이가 어느 한 곳 빤한 곳이 없을 정도로 엉망진창이 된 팔규 몰골을 살피며 물었다.

“팔규 놈, 왜 저 지경이 됐다냐?”

“근본도 모르는 청풍도가 놈을 데려왔는데, 그놈 때문에 저래 됐디야.”

“그놈 때문에 왜?”

“그놈 역성을 들다 그래 됐디야.”

“워떻했길래?”

“지를 믿고 여각을 도우려고 왔는데 저리 곳간에 가두면 워쩌냐고 대행수한테 대들었었다가 강수 대방에게 죽사발이 났디야.”

그때 창고 밖을 지키고 있던 동몽회원들끼리 하는 말이 들려왔다.

“그랬구나. 그런데 왜 대들었대?”

바깥에서 들려오는 말에 바짝 귀를 기울이던 주봉이가 팔규의 몸 구석구석을 살피며 말했다.

“다 네놈 때문이여! 아이구구구!”

장팔규가 버럭 소리를 지르다 옆구리를 쥐어뜯으며 비명을 질렀다.

“많이 당했구나.”

“우리를 도와주는 너를 가두는 건 도리가 아니라고 계속 우겼지. 그런데 모두들 널 믿을 수 없다는 거여. 아이구구!”

“정말 내 말을 안 믿더냐?”

“그럼 너 같으면 믿겠냐?”

주봉이의 표정이 복잡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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