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매일] 남의 것을 거저먹으려고 욕심을 부리다 그것도 노른자위 땅 쉰 마지기를 잃게 된 김주태는 너무나 가슴이 쓰려 중병 앓는 늙은이처럼 신음소리를 냈다. 소작인들 등치고 남의 것 빼앗는 것에는 명수지만 제 것 주고 베푸는 데는 자린고비보다도 인색한 김주태가 알토란같은 문전옥답을 그것도 쉰 마지기나 날려버렸으니 문드러지는 그 심정은 누구도 알 수 없었다. 그러나 그 속앓이는 이제 시작에 불과했다. 눈만 뜨면 천불 날 일이 김주태 앞에 기다리고 있었다.

한양의 탄호대감에게 바쳐야 할 공납물품과 청풍관아에서 빼다 쓴 구휼미를 한 방에 해결하려고 뗏목에 손을 댔다가 최풍원과 우갑노인의 술수에 말려들어 문제해결은커녕 땅까지 날려버린 김주태는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한양의 탄호대감으로부터 숩시 전갈이 당도했고 청풍현감 이현로도 연일 독촉을 해댔다. 그러나 청풍도가 곳간에는 아무것도 남아있는 것이 없었다. 시세보다도 몇 배의 금을 쳐주겠다는 우갑노인의 제의에 눈이 뒤집혀 그나마 모아놓았던 곡물까지 팔아치웠기 때문이었다. 김주태는 그 돈으로 시세보다 조금만 더 주면 곧바로 곡물을 채울 수 있을 것이라고 확신했다. 그렇지만 그것은 김주태의 생각이었다. 이제껏 청풍 일대에서 장사를 해오며 자기 뜻대로 되지 않는 일은 없었다. 무엇이든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할 수 있었다. 청풍에서 김주태의 눈 밖에 나면 그 누구도 살기 버거웠다. 버거운 정도가 아니라 살 수가 없었다. 청풍 인근의 모든 땅과 돈을 쥐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니 땅을 부쳐먹는 소작인들뿐만 아니라 집안 대소사에 급전이 필요한 고을민들은 누구나 김주태에게 머리를 조아릴 수밖에 없었다. 청풍은 김주태 천하였다. 그러다보니 김주태는 뭐든지 이룰 수 있다고 자신만만해했다. 이번 일만 해도 그랬다. 때가 때인지라 좀 힘이 들더라도 공납물품과 구휼미를 얼마든지 해결할 수 있다고 믿었다. 그러나 이번에는 달랐다. 이미 한참 전부터 북진여각 최풍원은 김주태의 목을 죄기위해 철저하게 준비를 해오고 있었다. 북진의 상전객주들은 물론 모든 임방객주들을 독려하여 청풍도가로 흘러들어가는 물산들을 막고 있었다. 김주태는 그것도 모르고 그나마 모아놓고 있던 곳간의 곡물까지 돈에 눈이 뒤집혀 우갑노인에게 넘겨버렸다. 고을민들 주리를 틀면 그 정도 물산은 거둬들일 수 있을 것이고 정 부족하다면 넉넉하게 받은 곡물 값으로 타지 장사꾼들로부터 웃돈을 얹어 사들이면 문제없을 것이라 자만했다. 워낙에 오랫동안 앉은자리에서 제 마음대로 배짱 장사를 하다 보니 돌아가는 세태를 읽지 못한 까닭이었다.

청풍도가로 들어오던 물산들도 길목 곳곳을 지키고 있는 북진여각 임방들이 선수를 쳐 도거리를 하고, 영월 동강 뗏목꾼들을 이용해 돌파구를 마련하려던 일도 무산되자 김주태는 큰 곤경에 빠졌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한양의 탄호대감은 약조를 어긴 김주태를 당장 잡아들여 주리를 틀라며 길길이 뛰었다. 그런 기세에 눌린 청풍부사 이현로도 자신에게 그 불똥이 튈까 두려운 나머지 김주태와의 모든 거래를 끊어버렸다. 이제껏 탄호대감과 청풍관아에 약채를 쓰고 그 댓가로 특권을 따내 콩 주어먹는 장사를 하던 김주태의 청풍도가는 하루아침에 내리막길을 만나고 있다. 김주태는 모든 특권을 잃어버리고 말았다. 북진여각 최풍원 대행수는 청풍도가 김주태를 몰아 부칠 또 다른 계략을 짜냈다.

“몰이를 할 때도 정신이 쏙 빠져 아무 생각도 하지 못하도록 호달궈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외려 독기만 품게 만들어 역으로 당할 수도 있다. 그러니 이번 기회에 확실하게 몰아부쳐야겠다!”

최풍원 대행수가 북진여각 상전객주들, 장석이와 봉화수, 동몽회 대방 강수가 앉아있는 자리에서 강한 어조로 쐬기를 박듯 말했다.

“대행수 쥐새끼도 몰을 대 도망갈 틈을 주고 몰라 했소. 그렇지 않으면 오히려 되돌아서 물 수도 있소. 조금 숨을 돌리게 한 후 다시 몰아붙이는 게 어떻겠소?”

북진여각 상전에서 어물전을 하는 김길성 객주가 최풍원의 말끝에 이의를 제기했다.

“아니여! 나는 대행수 말처럼 늦추지 말고 잡을 때 확 잡아버리는 게 옳다고 생각 혀! 김주태 그놈, 워낙에 여우 같은 새끼라 좀만 틈을 주면 무슨 수를 쓸지 아무도 몰러, 그러니 쇠뿔도 단김에 빼버리자구!”

피륙전 김상만 객주는 최풍원의 이야기에 동조했다. 한자리에 모인 객주들 생각이 제각각 달랐다. 그렇지만 김주태를 잡아버려야한다는 생각은 모두들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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