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책테라피 강사

[충청매일] 나이들면서 인류가 필연적으로 겪는 기억 문제. 

상상도 싫지만 직면해야 할 잃은 기억 대하기 문제를 멤 폭스 글·줄리 비바스의 그림책 ‘할머니의 기억은 어디로 갔을까?’는 놀이의 방법으로 안내한다.

주인공 윌프리드 고든 맥도널드 파트리지의 집 옆에는 양로원이 있다. 소년은 그곳에 사는 할머니 할아버지와 잘 알고 지낸다. 그중에서도 자기 이름처럼 이름이 네마디인 낸시 앨리슨 델라코트 쿠퍼 할머니를 가장 좋아한다. 소년은 할머니와 비밀 이야기도 한다.

어느 날 소년은 낸시 할머니가 기억을 잃어버렸다는 소리를 듣는다. 소년은 엄마 아빠에게 기억이 뭐냐고 묻자, 그건 머릿속에 간직해 두었다가 다시 떠올릴 수 있는 거라고 말한다. 소년은 기억이 무엇인지 더 알고 싶어서 할머니 할아버지들을 찾아간다.

오르간 연주를 하는 조던 할머니에게 물어보니 그건 따뜻한 거라고 대답한다. 무서운 이야기를 들려주는 호스킹 할아버지는 그건 아주 오래된 것이라고 답하고, 크리켓을 좋아하는 티페트 할아버지는 그건 너를 울게 만드는 것이라고 말한다. 지팡이를 짚고 다니는 미첼 할머니를 찾아가 물으니 그건 너를 웃게 만드는 것이라 말해준다. 마지막으로 목소리가 거인처럼 큰 드라이즈데일 할아버지를 찾아가 묻자 그건 황금처럼 소중한 것이라고 말해준다.

다 듣고 난 소년은 낸시 할머니의 잃어버린 기억을 찾아주기로 한다. 지난여름 바닷가에서 주운 소라와 조개껍데기를 바구니에 담고, 보는 사람마다 웃던 꼭두각시 인형도 담고, 볼 때마다 할아버지 생각이 나 슬퍼지는 메달도 담는다. 황금처럼 소중히 여기던 축구공도 갓 나은 닭장의 알도 바구니에 담는다.

소년은 낸시 할머니에게 가서 바구니에 담긴 것들을 하나씩 보여준다. 할머니는 머릿속에서 어떤 것들이 하나둘 떠오르는 걸 느낀다. 소라껍데기를 귀에 대고는 어렸을 때 기차를 타고 바닷가에 갔던 일을 생각해 낸다. 할머니는 메달을 만지작거리며 전쟁에 나갔다가 돌아오지 못한 큰오빠 이야기도 한다. 꼭두각시 인형을 본 할머니는 여동생과 인형을 가지고 놀던 어린 시절을 떠올리며 미소 짓는다. 할머니는 소년에게 공을 던져주다가 소년과 처음 만난 날을 기억하고 서로 비밀 이야기를 나눈 것도 기억해낸다. 할머니와 소년은 웃고 또 웃는다. 낸시 할머니가 기억을 찾게 되었으니까, 작은 소년 덕분에. 한동안 할머니는 물건들을 보면서 기억을 더 많이 되찾고 소년은 할머니의 이야기을 더 들을 수 있게 될 것이다. 그러면서 비밀이야기를 또 서로 나누게 되고.

나이가 들면 어쩔 수 없이 겪게 되는 안타까운 추억들과의 결별. 그것이 따뜻하고, 오래되고, 울게 하고, 웃게 하고, 황금처럼 소중한 것임에도 어쩔 수 없이 그런 일은 일어난다. 누군가의 기억 속에만 살고 있는 일들, 그가 기억해 주지 않으면 없어져버리는 여러 감정을 일으키는 사실들은 다른 누구에게가 아니라 그 자신에게 재산같은 것이다. 그걸 이 땅의 마지막까지 고이 잘 간직하고 때때로 꺼내볼 수 있다면 좋겠지만 너무 빨리 망각되어 버리는 것은 슬프다.

노인 인구가 비율이 폭발적으로 늘어나는 시대, 또 누구나 늙어야 하는 생명가진 존재의 운명 앞에서 겸허해 지는 것은 부정하고 외면하는 방식이 아니라 미리 숨막혀 하지 말고 순하게 천천히 놀이처럼 대면하고 익혀가야 하는 것일 수 있겠다. 무엇보다 따뜻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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