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0년 8월 5일 야소교당에서 청년회 출범


보성의숙 설립 등 민족교육·풍속 개량 등 활동

괴산청년회 창립총회 소식을 알린 1920년 8월 18일자 동아일보.
괴산청년회 창립총회 소식을 알린 1920년 8월 18일자 동아일보.

 

[충청매일 추두호 기자] 일제가 3·1운동 이후 언론·집회·결사의 자유를 일부 허용하자 전국에서 청년단체들이 활발히 결성되면서 충북에서도 1920년 6월 청주, 7월 제천에 이어 8월 괴산에서 청년회가 조직됐다.

동아일보 1920년 8월 18일자를 보면 8월 5일 괴산읍 야소 교당에서 발기인 10여명으로 창립총회를 열고 회장 유홍규, 총무 김영규, 덕육부장 김사원, 지육부장 유문규, 체육부장 김태응을 선출했다.

괴산 야소교당은 괴산 제일교회 자리에서 출범했다.

괴산 제일교회는 1903년 4월 괴산에서 처음 새워진 교회로 현 괴산읍 읍내로15길 47-46 괴산제일 어린이집이 위치다.

창립당시 총무를 맡은 김영규는 교회 영수로 지역의 정신적 지주인 김주현의 아들이다.

괴산 청년회는 1921년 4월 2회 정기총회에서 임원을 개선하면서도 괴산 제일교회 전도사인 경환을 지육부장으로 선임했다.

괴산 청년회는 민족교육을 위해 보성 의숙을 설립하고 노동 야학과 여자 야학을 운영했으며, 풍속 개량과 미신타파를 위해 연극 공연과 순회강연을 하고 금주·금연운동, 이재민 구호와 도난예방 활동도 했다.

1927년 혁신총회를 열고 강령과 규약을 새로 제정하고 사회주의 노선을 표방해온 괴산 청년회는 창립 5~6년 이후에는 회원이 300명으로 늘었지만, 일제 감시와 불온문서 혐의 등의 탄압으로 1928년 2월 전격 해체하고 사회주의 경향 괴산 청년동맹으로 변신했다.

한편, 괴산 제일교회는 1980년 4월 지금의 위치로 이전했고, 괴산청년회 창립대회 장소인 괴산제일 어린이집 건물은 1996년 12월 준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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