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진명
온깍지활쏘기학교 교두

[충청매일] 1929년에 나온 우리 활의 완결판은 책 이름이 ‘조선의 궁술’입니다. ‘궁술’이란 ‘활쏘기’를 가리키는 말입니다. 일제 강점기 내내 “전 조선 궁술대회”라고 불렀습니다. 오늘날은 대부분 “궁도대회”라고 합니다. ‘궁술’이 ‘궁도’로 바뀐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안타깝게도 이 ‘궁도’란 말은 일본말입니다. 일본에서는 스포츠에 ‘도’라는 말을 붙였습니다. 주로 일본군국주의가 성장하면서 나타난 현상입니다. 그 전에는 일본에서도 궁술이라는 말을 썼습니다. 칼잡이는 ‘검술’이나 ‘격검’이라고 했고, 활쏘기는 ‘궁술’ 또는 ‘유미(弓)’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무기로서 기능을 다한 칼과 활을 제도권에서 다른 용도로 쓴 것입니다. 즉 제국주의 신민을 양성하는 교육체계 안으로 편입시키면서 여기에다가 ‘도’라는 말을 붙인 것입니다. 그래서 검술이 검도가 되고, 궁술이 궁도가 됩니다. 나아가 모든 잡기에 도가 붙어서, 유도 합기도 역도라는 말이 생기고, 다른 분야까지 확대되어 서도(書道), 의도(醫道), 심지어 꽃꽂이를 화도(華道)라고 하기에 이릅니다.

일본이 이런 이름을 붙이는 것에 대해서는 그들의 전통문화나 세태 풍속에 따른 것이니 뭐라고 할 것도 없습니다. 이들에게 가서 배워온 우리나라 사람들이 이런 명칭을 따라 하는 것도 탓할 것 없습니다. 스포츠에 붙이는 관행에 따라 당수도, 태권도, 국선도, 선무도, 용무도, 절권도라고 하여 ‘도’를 붙여도 상관할 바가 아닙니다.

문제는 활쏘기입니다. 우리의 활쏘기는 일본의 활과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우수하고 또 훨씬 더 오랜 내력을 지녔습니다. 한 마디로, 활의 종주국은 한국입니다. 게다가 우리는 일본 군국주의의 최대 피해자입니다. 36년 세월을 그들의 식민지로 신음했던 기억이 또렷합니다. 이런 활쏘기에서 일본 용어를 갖다 쓴다는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좀 모자란 것이라고 할 수밖에 없잖겠습니까?

‘궁도’라는 말을 처음 쓴 것은 조직명이었습니다. 즉 1932년에 ‘조선궁술연구회’를 ‘조선궁도회’로 바꿉니다. 일제 강점기에 궁도란 말을 차용한 것은 불가피한 일이기도 합니다. 일본의 통치에 장악당한 현실에서 체육조직 또한 그들을 따라갈 수밖에 없는 불가피한 현상 때문입니다. 그러나 실제 생활에서는 궁술이라는 말을 썼습니다. ‘전 조선 궁술대회’ 같은 말이 그것입니다. 일제강점기하의 신문 기사를 살펴보면 전국에서 벌어진 거의 모든 대회 이름이 ‘궁술’대회입니다.

이 궁도가 얼마나 일본스럽고 우리에게 어색한 것이었는가 하는 점은 해방 직후에 벌어진 우리말 정화작업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해방 이후 어수선한 정국 속에서 활쏘기가 뜸하다가 한국전쟁이 끝난 1958년에 처음으로 전국대회가 열리는데 그때 한국일보사에서 후원한 대회 이름이 ‘제1회 전국남녀활쏘기대회’였습니다. 궁도가 일본말이기에 그것을 청산한 자취입니다. 그리고 지역에서 벌어진 대회도 대부분 궁술대회였습니다. 그러다가 1970년대부터 ‘궁도대회’가 서서히 부활하여 1980년대로 접어들면 ‘궁도대회’ 이외에는 찾아볼 수 없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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