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가

[충청매일] 지난해에 담가 저장했던 김장단지에서 잘 익은 김치를 꺼냈다. 단지 뚜껑을 여는 순간 맛있는 냄새가 온몸을 떨게 했다. 김치 한 포기를 양재기에 꺼내 담자 코로 맛보았을 때보다 눈으로 보는 맛은 뇌를 자극했다. 드디어 한 조각을 떼어 입에 넣었다. ‘훅’하고 목에서 당겨 입을 놀릴 새도 없이 미끄러져 들어간다. 역시 김치는 냉장고 보다는 단지를 땅에 묻어 저장하는 게 최고인 것 같다.

추위가 오기 전 서둘러 김장을 했다. 일부는 김치냉장고에 저장했다. 나머지는 전통의 맛을 유지하기 위해 땅에 묻기로 했다. 땅을 파고 단지를 묻어 차곡차곡 채워 넣었다. 김치를 가득 채운 후 뚜껑을 덮고 위에 볏짚을 엮어 덮었다. 땅의 기운과 살아 숨쉬는, 단지의 절묘한 조화로 발효시킨 김치를 맛보기 위한 노력이다.

시골집에 내려갔는데 동네 초상이 났다. 장례식장에서 일행이 도착하기 전 굴삭기가 땅을 파고 장례치를 준비를 서두른다. 얼마 뒤 영구차가 도착하고 상여가 장지로 출발했다. 오랜만에 상여를 볼 수 있었다. 장지에 도착하고 굴삭기와 마을 사람들이 산소 짓기를 시작했다. 봉분을 만들고 주변 평탄작업을 마치고 잔디를 덮는다. 그 광경을 지켜보다 문득 지난해에 김장단지 묻고, 위에 짚을 엮어 덮었던 생각이 떠올랐다.

단지는 김치뿐만 아니라 된장도 보관하고, 고추장, 간장, 소금 등을 보관하는 저장고다. 시간이 지나면 부패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발효되어 깊은 맛을 자아낸다. 날씨가 춥고 덥고를 가리지 않고 음식의 오묘한 맛을 내는데 사용해왔다. 우리가 어렸을 때 홍역, 역병 등 각종 전염병으로 아기들이 많이 희생 됐었다. 그러면 지게에 지고가 애장을 만들었었다. 단지에 넣고 돌무더기로 덮어 주었다. 장사를 지내는 장의용품으로도 사용됐었다.

우리 조상들의 지혜가 돋보이는 귀한 물건이다. 이집트의 피라미드에 보관되어있는 미라가, 이런 단지의 원리를 응용하여 만들어졌지 않나 생각해보게 한다. 미라가 부패되지 않듯, 오래 묶은 간장단지엔 영롱한 빛을 발하는 수정체 같은 결정체가 만들어 진다. 동동주를 담가두기도 하고 장아찌를 담가 보관하기도 한다. 발효를 필요로 하는 식품의 보관은 단지라야만 한다.

보관 장소가 한정되어 있지 않고 햇빛이 잘 드는 장소면 된다. 옛날부터 집집마다 뒷마당에 가면 장독대가 만들어져 있다. 그런 장독대가 서서히 사라지고 있다. 요즈음의 단지는 식품 보관소가 아닌 정원 용품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집 마당 정원이나 가든 등에 가보면 단지로 탑을 쌓고, 단지에 그림을 조각하여 전시 해놓는다. 오랜 세월동안 우리들의 먹거리를 보관 해오던 단지다. 구경거리가 되어가고 있는 현실이 안타깝기만 하다.

땅에 묻혀 묵은 단지 속 김치는 오묘한 맛을 대대로 전해준다. 산소에 묻힌 선망 조상들은 후손들의 부귀영화를 안겨준다. 김장단지가 향기를 머금어 전해주듯 앞서가신 분들은 한곳을 지키며 그들만의 향기를 전해줄 것이다. 땅의 힘을 더해 아름답고 맛있는 향기를 돌려줄 것이다. 강풍에 흔들리지 않는 정원의 단지가 되더라도 변함이 없을 것이다

SNS 기사보내기
기사제보
저작권자 © 충청매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