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꿈세상 정철어학원 대표

[충청매일] 헉! 나는 할 말을 잊었다. 고추 모종은 축 늘어져 있고 고구마 모는 곧 땅으로 녹아들어 갈 듯 바닥에 널브러져 있다. 애처롭다. 죄책감마저 든다.

살다 보면 접하곤 하는 우리네 인생 같다. 삶을 배워가느라 지친 자녀들의 풀 죽은 우울함 같기도 하고 세월의 무게에 지친 어느 아버지의 처진 어깨와도 같다. 그렇게 한번쯤 먹먹하게 무너져 내렸을 우리네 가슴 같기도 하다. 

얼마 전 아내를 거들어 때 늦은 고추 모종이랑 고구마 모를 심었다. 며칠 후 그 고구마와 고추가 궁금해 밭을 찾았을 때 벌어진 일이었다. 다음날 밭일 채비를 하고 이른 새벽에 밭으로 나갔다. 마음은 고구마 잎처럼 타 들어가지만 발만 동동거린다. 어찌저찌하여 인근 농가에서 물을 얻어 물을 주었다. 마음속으로 정성을 담아 기원도 했다. 매일 새벽 밭에 달려가 잡초도 뽑아주고 여기저기 물어보아 적당한 약도 쳤다. 그러고 있는 나를 보고 누군가 말했다. 그냥 편하게 사먹으라고….

나는 고추를 따서 먹으려고, 고구마를 캐서 먹으려고 그러는 게 아니었다. 그러려고 팔 다리 허리에 알배가며 물을 길어다 주고 새벽잠 대신 밭에 나가 쪼그려 앉아 풀을 뽑곤 한 게 아니었다. 나는 상추, 고추, 토마토, 고구마, 옥수수랑 사랑다툼을 하고 있는 것이다. 내가 준 물은 물이 아니라 사랑이다. 내가 준 물은 사랑이 있어 의미가 있다. ‘물만 있으면 됐지 웬 사랑?’이라 말 할지 모른다. 하지만 끊임없는 그 사랑 때문에 그들은 비로소 우뚝 일어설 것이다. 그 물은 그래서 의미와 가치가 있다.

‘사랑 정 따위들이 뭐가 중요한데…?’

물질의 타산에 밝은 요즘은 사랑, 우정, 정의, 나눔의 꿈 이런 것들이 현실에 둔감한 삶의 방법으로 치부되기도 한다. 배우자를 선택하는데 사랑보다 능력이 우선이 되기도 하고 간혹 우정도 득과 실의 잣대로 평가되기도 하는 세상이다. 정의의 기준도 점점 모호해진 듯하고 모든 가치의 기준에 이해득실이 앞서는 것 같다.

세상을 사노라면 이상, 명예, 권력, 사랑, 물질적 풍요 등 갖고 싶은 것들은 무척 많다. 어느 때는 악이 선에 이르는 불가피한 수단으로 여겨져 우리의 판단을 혼란스럽게 하기도 한다. 심지어 선과 악의 구분조차 모호해진 것 같기도 하다.

달콤한 것들을 모두 가질 수 없다. 이런 선택의 기로에서 가치의 선택은 이상과 물질 사이에서 미래와 현재 사이에서 갈등해 왔다. 요즈음은 물질의 득과 실이 가치의 선택기준에 상당히 깊이 영향력의 그림자를 드리운다. 

하지만 이런 물질만능의 시대에도 많은 사람들이 이상을 꿈꾼다. 많은 사람들이 종종 진실한 정과 사랑을 갈구하는 것을 본다.

매사에 씩씩하게 잘 살고 있던 친한 아우가 사랑하는 이를 보내더니 삶의 원동력을 잃었다. 그는 우울의 늪에 완전히 빠져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고추 모종도 사랑이 필요하듯 우리네 삶은 사랑이 있어 의미가 있다.

정이 있어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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