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0장 위반 : 울타리를 뛰어넘다
(3) 여성이 표현하는 여성의 성기
1866년 사실주의 표명했던 프랑스 화가 ‘귀스타브 쿠르베’
미술사의 금기인 여성 성기를 충격적인 방식으로 재현 눈길
‘세상의 기원’은 아름다운 이상 속에 감춰진 실제 여성 표현
발리 엑스포트, 뮌헨 극장 앞에서 성기 패닉 퍼포먼스 선봬
바지 앞섶을 오려내 노출한 채 맨발에 총을 들고 걸어다녀
주디 시카고 작품에선 성기에 대한 다양한 탐구 소재 삼아
작품들에 금기 표현 난무…작품성에 대한 찬반양론 팽팽
여성성에 대한 논의 수면 위로 끌어내…여성의 경험 표현

 

왼쪽부터 발리 엑스포트 ‘성기 패닉’ 1969. 귀스타브 쿠르베 ‘세상의 기원’ 1866. 주디 시카고 ‘붉은 깃발’ 1971.
왼쪽부터 발리 엑스포트 ‘성기 패닉’ 1969. 귀스타브 쿠르베 ‘세상의 기원’ 1866. 주디 시카고 ‘붉은 깃발’ 1971.

[이윤희 수원시립미술관 학예과장]고대 그리스로부터 19세기 중반에 이르기까지 여성의 누드가 줄곧 그려져 있지만, 다리의 사이에 있는 성기와 주변의 음모가 그려지는 것은 금기로 여겨져 왔다. 비너스상이건 요정이건 간에 누드의 주인공은 다리를 모으거나 꼬아 그 사이가 보이지 않도록 자세를 취하였다. 그에 더하여 외설의 함정에 빠지지 않도록 그 부분에 천을 걸치거나 손으로 가려 명확하게 보이지 않도록 교묘하게 조치되었다.

신상이건 성경이 이야기이건 여성의 누드를 그릴 소재를 찾아 에로틱한 시선을 담아 그려내면서도 정작 성기의 묘사가 생략되었던 가장 큰 이유는, 고급예술의 범위 안에 안전하게 있기 위해서였을 것이다. 대개 남성 고객들의 주문에 의해 남성 화가들이 제작하는 많은 작품들은 양자의 품격이 손상되지 않는 선을 지켜왔던 것이다. 일종의 금기였던 여성 성기를 충격적인 방식으로 재현한 작품이 1866년 사실주의를 표명했던 프랑스 화가 귀스타브 쿠르베(Gustave Courbet)에 의해 은밀하게 그려졌다.

“내가 천사를 그려야 한다면 천사를 내 눈앞에 보여 달라”고 했던 쿠르베는 기존 미술의 관습을 ‘사실주의(realism)’의 이름으로 거부하고자 했다. 이 충격적인 그림 ‘세상의 기원’ 역시 아름다움의 이상 속에 감추어진 실제 여성을 그리고자 하는 의도의 표현이라고 해석될 수도 있겠다.

하지만 이 그림은 1995년 오르세 미술관에 기증되어 일반 대중에게 공개될 때까지 몇몇 소장가들과 그들의 지인만이 조심스럽게 감상할 수 있었다. 처음 이 그림을 주문하고 소장했던 이는 프랑스에 머물던 전직 터키 외교관 칼릴 베이(Kahlil Bay)였으지만, 곧 그가 파산하게 됨에 따라 가지고 있는 작품들이 경매로 처분되었다. 이후 이런 저런 애호가들의 손을 거쳐 이 그림을 마지막으로 소유했던 이는 시대의 사상가 자크 라캉(Jacques Lacan)이었다. 라깡은 이 그림 위에 다른 그림을 덮어 은밀하게 간직했지만, 그의 사후 부인이 오르세미술관에 기증하면서 일반 공개가 가능해졌던 것이다.

‘세상의 기원’이라는 저속함과 선정성이 용서될 것 같은 이 그럴듯한 제목을 누가 붙였는지는 아직도 밝혀지지 않았다.

사실상 이 제목이 그림의 반을 차지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데도 말이다. 여성의 성기가 그려지는 것이 미술사의 오랜 금기였고, 그 전통적인 선을 넘는 것이 쿠르베의 대단한 도전이었으며, 세기의 사상가가 이 작품을 비밀리에 소장하고 있었다는 사실은 시각을 조금만 바꾸어 생각을 해 보면 피식 웃음이 날만한 일이다. 사실 이 그림은 모델의 동의를 구했는지 아닌지는 모르겠지만 잠자리에서 이불을 걷어 무방비로 벌어진 다리 사이에 있는 성기를 그린 것 뿐이니 말이다.

금기를 뛰어넘은 위대한 행위 치고는, 요즘도 많은 남성들이 비밀리에 찍어 올린다는 여성 나체의 사진과 그 시각이 참 많이 닮아있는 것은 아닌지 의심이 생긴다. 이 그림을 바라보는 관객들도 마찬가지, 2013년 프랑스의 잡지 ‘파리 마치(Paris March)'에서 이 하반신의 얼굴 그림을 드디어 찾았노라 하는 기사가 대서특필 되었다. 한 골동품상에서 쿠르베의 ‘세상의 기원’의 얼굴 부분을 따로 그린 작은 그림이 발견되었다는 것인데, 정작 오르세미술관에서는 이 기사를 반박하는 공식 기자회견을 가졌다. 물론 새로 발견되었다는 작품이 ‘세상의 기원’의 주인공 얼굴이었다면 그것은 이 작품 자체의 의미를 새로이 해석해야 하는 중대한 사건이기는 하다. 하지만 이 사건의 진행이 어쩐지 음란물 동영상의 실제 주인공을 찾은 것 같은 흥분의 포인트를 가졌다고 하면 이것은 지나친 악의적 해석일까?

자는 사람 이불을 걷어 몰래 그린 것 같은 느낌을 주는 쿠르베의 작품과는 정반대의 의미로, 여성 작가가 스스로 자신의 성기를 보여주는 퍼포먼스가 등장했다. 오스트리아 출신 여성작가 발리 엑스포트(Valie Export)는 1968년과 1969년에 뮌헨의 한 극장 앞에서 두 차례 ‘성기 패닉’이라는 제목의 퍼포먼스를 했다.

산발을 한 작가는 바지의 앞섶을 가위로 오려내 성기를 노출한 채, 맨발에 총을 들고 포르노가 상영 중인 극장 앞에서 걸어 다녔다. 관객들이 극장에서 보고자 했던 여성의 맨살은 결코 이런 모습이 아니었을 것이다. 남성적 에로티시즘의 시각으로 만들어진 포르노에서 보고자 했던 여성의 모습과는 정반대로, 엑스포트는 자신의 성기를 공격적으로 공개했다. 성기를 노출한 이 여성 작가에게 극장으로 들어가려던 남성 관객들이 희롱이라도 했을까? 그런 일 없이 퍼포먼스는 조용히 끝났다. 그것은 엑스포트가 손에 들고 있었던 총 때문이었을까, 산발에 공격적인 표정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었을까.

더 근본적으로는 이러한 여성 성기 노출은 남성들의 에로틱한 환상에 전혀 들어맞지 않는 방식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게도 보고 싶어 했던 것을 마음껏 보라고 눈앞에 갖다 들이대는 방식, 진짜 여성의 성기는 이렇게 생겼다고 여성이 말하는 방식 말이다.

주디 시카고(Judy Chicago) 역시 1970년대 여성의 성기에 대한 다양한 탐구를 작품의 소재로 삼았다. 그의 작품들에는 금기의 표현들이 난무했고 작품성에 대한 찬반양론도 팽팽했다. 미술작품에 대한 기존의 잣대로는 무어라 평가를 할 수 없는 충격적인 시도들이었기 때문이다. 그 중 시카고의 ‘붉은 깃발’은 눈을 의심할 만큼 놀라운 작품이다.

전체적으로 흑백인 가운데 일부만 붉게 채색이 되어 있는 이 장면은 도대체 무엇인가. 이것은 여성이 자신의 질에서 생리혈을 흡수하는 탐폰을 꺼내는 모습이다. 탐폰은 피를 가득 머금어 축축해 보이는데, 주인공 여성은 용도를 다한 그것을 줄을 당겨 빼내는 중이다. 탐폰을 쓰는 여성이라면 바로 알아볼 수 있겠지만, 남성 관객들은 도대체 이것이 뭐하는 짓인지 충격을 받을만한 장면이기도 하다.

여성의 성기를 묘사하는 것조차 금기였으므로, 여성의 생리가 미술의 주제가 되었던 일은 단 한 번도 없었다. 모든 여성이 일생의 절반을 한 달에 한 번씩 거쳐야 하는 생리는, 그만큼 당연하고 거추장스러운 일상의 한 부분이다. 생리를 하는 그 어떤 여성도 그 과정이 생리대 광고에서 말하는 ‘마법에 걸린 날’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딱 달라붙는 흰 바지를 입고 나가 뛰어놀 신체적 컨디션이 아닌 것은 말할 필요도 없다. 그것이 여성의 경험이다.

시카고는 이 작품을 하던 시기에 ‘여성의 경험’을 표현하는데 집중했다. 미술의 언어로는 한 번도 제대로 이야기되지 못했던 여성만의 경험을 드러냄으로써 기존의 불균형을 해소하고, 여성성에 대한 논의를 수면 위로 끌어올리고자 하는 의도에서였다. ‘붉은 깃발’은 여성의 일상적 경험을 그대로 드러낸 것 뿐 이지만, 이 장면이 눈을 의심케 할 만큼 충격적인 것은 무슨 이유에서일까. 우리가 알지 못하는 사이에 익숙해져 있었던 여성에 대한 남성의 시각을 뒤집어엎고 있기 때문이다.

이 작품에서 여성의 성기는 일상 그 자체를 보여주는 것이지만, 보는 이에 따라 무시무시한 실체를 드러내는 것으로 생각될 수도 있다. 피가 흐르고 그것을 담아내기 위한 기구를 삽입하고 그것을 다시 빼내는 장면은, 여성의 성기가 전면에 드러남에도 불구하고 전혀 에로틱하지 않아 보인다.

‘세상의 기원’ 주인공이 누구인지를 그렇게도 궁금해 하는 관객들이 주디 시카고의 ‘붉은 깃발’의 주인공까지 궁금하지는 않을 것이다. 여성의 신체에 기대하는 바의 이미지가 아니기 때문이다. 이렇게 여성이 말하는 여성의 실제적 경험, 여성이 보여주는 여성의 성기는 남성이 기대하는 것과 사뭇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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