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매일] 기억을 소재로 한 드라마가 꽤 있다. 다만 전에는 기억상실증이 단골 소재였다면 요즘엔 과잉기억 증후군과 같은, 모든 것이 떠올라 고통스러워하거나 역이용하는 이야기를 다루는 드라마가 많이 보인다.

기억상실증과 과잉기억 증후군은 실존하는 질환이다. 많이 들어봤을 해리성 기억상실증은 뇌의 이상 없이 심리적 원인에서 발생하며 개인에게 중요한 과거 경험과 정보를 갑자기 회상하지 못하는 장애이다. 특정 사건과 관련돼 심적 자극을 준 부분을 선택적으로 기억하지 못하거나 혹은 사건 전체를 기억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드물게는 살아온 모든 기억과 정체성, 날짜를 잊고 방향감각까지 잃기도 한다. 이런 환자들은 자신이 기억상실인지 잘 모른다. 알더라도 사소한 문제로 치부하고, 평가 절하하는 경향을 보인다고 전문의들은 설명한다. 그러나 지식이나 비개인적인 정보에 대한 기억은 남아 있고, 새로운 정보를 학습하는 능력도 남아 있다.

과잉기억 증후군이란 학습 능력이나 암기력과는 관련 없이 자신에게 일어난 거의 모든 일을 기억하는 증상이다. 한 번 본 것이 마치 사진 찍듯 머릿속에 남아있는 극히 드문 현상이다. 실제 전 세계적으로 과잉기억 증후군 판정을 받은 사람은 100여명으로 알려져 있다. 정확한 원인도, 치료법도 밝혀지지 않았다.

드라마에서 기억장애를 가진 주인공들은 기억을 잃어 전혀 다른 인생을 살게 되거나 지우고 싶은 기억까지 또렷이 떠올라 고통 속에 살거나 모든 것을 기억하는 능력을 이용해 악과 맞서 싸우기도 한다.

가끔 유치원 다니는 아이가 서너 살 때의 에피소드를 어제 일인 듯 상세히 들춰낼 때마다 놀랍다. 아이들의 기억력은 어디까지일까. 그 기억이 성인이 돼서도 이어질까? 내가 가끔씩 아이에게 홧김에 했던 말과 행동들이 작은 몸속 세포에 어떻게 새겨졌을지 걱정이 되곤 한다. 가끔 이런 생각도 해본다. 잊고 싶은 기억을 다 지우고 원점으로 돌아갈 기회가 주어진다면 그때로 돌아갈 것인가. 나는 현재의 나를 선택할 것 같다. 현재의 내 환경과 가족들이 소중하기 때문이다.

독일의 철학자 니체는 말했다. “망각이 없다면 행복도, 명랑함도, 희망도, 자부심도 현재도 있을 수 없다”고. 기억장애를 바탕으로 인물들의 인생역정을 다루는 드라마들은 결말도 뻔하고 식상하지만 그래도 재미있다. 지나치게 잔혹하거나 선정적인 장면은 자제하고 극중 인물과 상황들을 통해 시청자의 마음을 치유하고 선한 영향력을 끼치는 드라마들이 제작됐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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