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던 여성, 집에 묶이다
노동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던 여성, 집에 묶이다
  • 충청매일
  • 승인 2020.07.26 16: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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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의 눈으로 읽는 열 가지 미술 키워드
제10장 위반 : 울타리를 뛰어넘다
(2) ‘집사람’의 노동
이윤희 수원시립미술관 학예과장
이윤희 수원시립미술관 학예과장

예나 지금이나 생계 유지하는 ‘바깥일’ 남녀 구분 없어

집안 머무르면서 할 수 있는 일 찾아야 했기에 제약 많아

‘집안일’ 병행하던 여성의 바깥일은 자연스럽게 저평가

‘집’이 여성의 영역이라는 관념은 현대사회에서도 지속

1970년대 페미니즘 미술 시작되면서 ‘집과 여성’ 관계 주목

여성의 노동 대부분은 유지에 초점…정당한 가치에 질문

우리가 모두 아는 그림으로부터 이야기를 시작해보자.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그림들 가운데 하나인 장-프랑수아 밀레의 ‘이삭 줍는 사람들’에는 19세기 중반 가난한 농민들의 모습이 담겨 있다.

앞치마를 묶어 주머니를 만들고 허리를 굽혀 추수가 끝난 들판의 곡식 낱알을 줍는 이들은 한 눈에 보아도 여성들이다. 이들이 집으로 들어가면 저녁 밥상을 차리는 ‘집사람’이 될 것이다.

예나 지금이나 계급적으로 직접적인 노동을 하지 않아도 절로 먹고 살 수 있는 사람들이 아니라면 생계를 유지하는 ‘바깥일’을 하는데 있어서는 남성과 여성이 함께 하는 경우가 많았다.

가부장제 사회에서는 남성이 사회적 노동을 하고 아내는 집안일을 하도록 분업이 확실하게 유지됐던 것처럼 생각하지만, 노비의 아내도 일을 하는 여성 노비이고 농부의 아내는 일을 하는 여성 농부의 역할을 함께 했다. 물론 대장장이처럼 근력을 더 써야 하는 일은 남성이, 옷을 짓는 일이나 세탁부 같은 일은 여성이 주로 담당했지만 이러한 일들이 모두 사회적 노동의 영역이었다는 것을 부인하기는 어렵다.

▲장-프랑수아 밀레, ‘이삭줍는 사람들’, 1857
▲장-프랑수아 밀레, ‘이삭줍는 사람들’, 1857

 

‘만약 남성이 옷 짓는 일을 했다면 그들이 만든 팬티도 루브르에 걸렸을 것이다’라는 게릴라 걸즈(Guerilla Girls)의 말이 농담이 아닌 이유는, 여성의 노동은 그저 생계의 유지를 보조하는 소일거리로 여겨지기 십상이었기 때문이다.

여성의 노동이 저평가 받는 이유 가운데 하나는, ‘집안을 유지하는 일’과 ‘바깥일’을 동시에 하거나 집안에 머무르면서도 할 수 있는 일들을 찾아야 했기 때문에 남성들과 경쟁하며 사회적 노동을 수행하는데 제약에 따랐던 탓도 있다. 미혼 시절 남성 화가들과 어깨를 나란히 했던 여성 화가들이 결혼과 더불어 대외적 활동상이 미미해지거나 아예 이름이 사라져버리는 것도 마찬가지의 이유에서였을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결혼한 남성이 제3자에게 자신의 아내를 칭할 때 ‘집사람’으로 부르고, 영어권에서 주부를 ‘housewife’라고 부르는 것은 ‘집’이 여성의 영역이라는 관념을 포함하고 있다. 19세기 산업화 이후 가정주부들은 남편이 벌어다 준 돈으로 소비하고 남성들이 누리지 못하는 시간적 여유를 즐기는 팔자 좋은 직업 아닌 직업으로 여겨져 왔지만, 실상은 커리어와 직업 가운데서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거나 가정을 떠받치기 위해 표면적으로 드러나지 않는 육아와 가사노동에 시달리는 경우가 다반사였다.

밥은 밥통이 해 주고 청소는 청소기가, 빨래는 세탁기가 해 주는 지금에 와서야 여성은 사회적 직업과 가사를 유지하는 이중 노동을 이전보다는 수월하게 할 수 있게 됐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여전히 집안일이 여성의 것으로 여겨져야 하는가에 대한 의문은 여전히 남는다.

미술의 영역에서 ‘집’과 ‘여성’의 얽히고설킨 관계에 대한 질문을 본격적으로 시작한 것은 1970년대 페미니즘 미술이 봉화를 올리면서부터였다.

1972년 캘리포니아예술대학(California Institute of the Arts)의 젊은 강사들이었던 주디 시카고(Judy Chicago)와 미리암 샤피로(Miriam Schapiro)는 자신들이 가르치던 21명의 여성 대학생들과 더불어 ‘여성의 집(Womanhouse)’이라는 전시를 기획했다.

▲‘여성의 집’ 전 카탈로그 표지, 1972
▲‘여성의 집’ 전 카탈로그 표지, 1972

 

이 전시는 로스앨젤레스의 한 폐가를 빌려 작가·학생들이 직접 집을 수리하고 그 안에서 집과 관련된 여성의 경험을 표현하는 다양한 작품들을 설치한 후 한 달 반 동안 일반 대중에게 공개하는 과정으로 진행됐다. 이러한 시도는 미술관이나 화랑 같은 전문 전시공간이 아니라 일상의 공간을 전시장으로 만든 이른바 ‘대안적(alternative)’인 전시의 형태를 만들어낸 최초의 사례들 가운데 하나로 평가되고 있다.

지금이야 ‘대안공간’이라는 타이틀을 가진 여러 전시장들이 있지만, 한 번의 프로젝트로 한 장소를 빌려 전시를 하고 해체하는 형식은 당시로서는 대단히 신선하고 충격적인 것이었다. 이 전시는 그 자체로 남성 미술가들이 독점하던 미술계에서 기존과는 전혀 다른 장소에서의 생경한 작품들로 미술에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하는 것이기도 했다.

주디 시카고와 미리암 샤피로는 학생들과 더불어 곧 철거 예정인 폐가를 얻어 일단 집을 고치기로 결심했다. 이 집은 17개의 방과 정원으로 이뤄진 대저택이었으며, 학생들이 ‘여성의 집’을 실현할만한 여러 공간들을 찾아다니다가 발견한 것이었다. 오랜 시간 방치됐던 집을 전시 장소로 결정하게 되면서 두 강사들과 학생들은, 전기와 수도를 연결하고 깨진 창문에 유리를 끼우고 난간이 없어 위험해진 계단을 수리하고 벽을 칠하는 일부터 시작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을 깨닫게됐다. 이들은 남성의 도구로 여겨졌던 전동 드릴과 톱과 망치를 들고 집수리를 해 가면서, 짬짬이 전시를 위한 토론을 진행했는데 이 모든 과정에 두 달이 소요됐다.

드디어 공개된 전시는 방안과 거실, 계단, 부엌, 정원 등 모든 공간들을 이용한 것이었고, 몇 명이 모여 공동으로 작업한 작품들도 있었으며, 한 달의 전시 기간 동안 그 공간 안에서 여러 종류의 퍼포먼스 작업들도 병행됐다. 양식을 특정할 수 없는 수많은 작품들이 설치됐지만, 집의 철거와 더불어 사라진 대부분의 작품들 가운데 산드라 오겔(Sandra Ogel)의 ‘린넨 클로짓’ 등 여러 작품들이 이후에도 오래 회자되고 있다. ‘린넨 클로짓’은 집안의 수납장소를 작품의 설치장소로 삼고 있다. 선반에는 차곡차곡 개어진 린넨 천들이 정갈하게 얹혀 있고, 그 안쪽에 여성 형태의 마네킹이 꼼짝달싹 하지 못하게 가궈져 있다. 한쪽 다리를 겨우 밖으로 뻗고 한쪽 손으로 가고자 하는 방향을 가리키는 것 같지만 이미 선반과 일체가 돼 버린 몸을 빼내기는 어려울 것 같다. 깨끗이 세탁되고 개어진 린넨 천들 사이에 가구의 부분처럼 붙박힌 존재가 돼 버린 여성의 모습은 유령과도 같이 충격적이다.

▲ 산드라 오겔, ‘린넨 클로짓’, 1972
▲ 산드라 오겔, ‘린넨 클로짓’, 1972

 

여성의 노동은 보통 이렇게 일상을 유지(maintenance)하는 것들이다. ‘여성의 집’ 전시와 비슷한 시기에 미엘 래더맨 유켈레스(Mierle Laderman Ukeles)는 여성들이 집안에서나 밖에서 하는 유지 노동을 재현하는 퍼포먼스를 미술관 공간 내에서 행했다.(도판 4) 유켈레스는 뉴욕대에서 미술을 전공하고 작가활동을 시작했지만 결혼 이후 세 자녀를 뒀고 끝없는 가사일과 작가로서의 활동 사이에 지난한 갈등이 시작됐음을 직감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이 일상을 유지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시간을 들이는 노동으로부터 작품의 테마를 발견했다. 유켈레스는 1973년 코네티컷의 하트포드에 있는 워즈워드 아테네움 미술관(Wdadsworth Atehneum Museum)에서 미술관을 청소하는 퍼포먼스를 함으로써 작가이자 주부역할을 동시에 하는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되묻고 있다. 그는 미술관 입구 계단에 물을 뿌려 정성들여 닦고, 미술관 안으로 들어와서는 무릎을 꿇고 걸레로 바닥의 얼룩과 관객의 발자국을 지웠다.

▲ 미엘 래더맨 유켈레스, ‘청소-길-유지’, 1973
▲ 미엘 래더맨 유켈레스, ‘청소-길-유지’, 1973

 

여덟 시간 동안 미술관 내외부를 청소하는 퍼포먼스를 통해 유켈레스는 표면에 드러나지 않고 감춰진 노동에 대해, 주로 여성들이 도맡아 하는 쓸고 닦는 일에 대해 질문을 던지고 있는 것이다. 미술관을 유지하는 사람들은 누구인가, 집안을 유지하는 사람들은 누구인가, 그들의 노동은 어떤 가치를 유지하기 위해 필수적인 것이지만 그것이 정당한 댓가와 평가를 받고 있는가에 대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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