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매일] 최근 며칠 사이에 우리나라 수도 서울의 시장으로 재직하던 인물이 극단적인 선택으로 생을 마감했다. 참 충격적이고 참담하지 않을 수 없는 현실이 안타깝다. 왜 극단적인 선택을 했을까, 자살이 아무리 사회문제로 심각하지만 사회지도층이 이렇게 쓸쓸하게 가버리니 정말 비겁하고 무책임함에 황망하기까지 하다.

정말 우리나라 사회 지도층의 수준이 이 정도밖에 안 되는 걸까.

프랑스말로 ‘노블레스 오블리주 (noblesse oblige)’라는 말이 있다.

사회 고위층 인사에게 요구되는 높은 수준의 도덕적 의무라는 말로 높은 사회적 신분에 상응하는 도덕적 의무를 뜻하는 말이다.

근대와 현대에 이르러서도 이러한 도덕의식은 계층간 대립을 해결할 수 있는 최고의 수단으로 여겨져왔다. 특히 전쟁과 같은 총체적 국난을 맞아 국민을 통합하고 역량을 극대화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기득권층의 솔선하는 자세가 요구됐다.

실제로 제1차 세계대전과 제2차 세계대전에서는 영국의 고위층 자제가 다니던 이튼칼리지 출신 중 2천여명이 전사했다.

중국 지도자 마오쩌둥이 6·25전쟁에 참전한 아들의 전사 소식을 듣고 시신 수습을 포기하도록 지시했다는 일화도 유명하다.

사람들은 흔히 그가 속한 사회의 지도층 인사들에게 일반인들보다 더 높은 도덕성을 요구한다. 그리고 그러한 기대가 충족될 때 지도층 인사들을 존경과 신뢰의 눈으로 바라본다.

노블레스 오블리주는 이러한 철학과 도덕성을 갖춘 상류 지도층 인사들의 명성만큼의 도덕적 의무를 이르는 말이다. 상류 지도층 인사들이 노블레스 오블리주 정신의 바탕 위에서 자기 자신을 희생하면서 솔선수범해 앞장서 나감으로써 사회의 갈등을 조정할 수 있고 혼란을 극복할 수 있는 등 여러 사회적 순기능이 기대되기 때문이다.

오늘날 우리 사회는 노블레스 오블리주가 없다는 말을 자주 한다. 오죽하면 우리 사회지도층은 사회를 지도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로부터 지도를 받아야 할 사람들이라는 말이 나오고 있는 실정이다. 지난 반세기 동안 급속한 사회화를 거치면서 새로운 사회지도층 집단이 형성되어 왔지만 군사정권 등을 거치면서 ‘화랑도 정신’이나 전통사회의 명문가들이 지켜왔던 ‘선비정신’은 찾아 볼 수 없게 됐다. 오히려 사회지도층과 그 자녀들의 행태는 국민들에게 분노를 넘어 허탈감을 안겨주고 있다. 병역기피, 탈세, 부정입학 등 사회지도층의 ‘도덕적 해이’는 우리 사회 전체의 부패구조로 확대 재생산되어 왔다. 우리나라의 지도층은 ‘오블리주 없는 노블레스’, 다시 말해 ‘의무를 망각한 상류집단’이라는 비난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그렇다면 사회지도층에게 요구되는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구체적인 덕목은 무엇일까?

물론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구체적인 덕목은 어디에도 명문화 된 바가 없지만 최근 우리 사회의 공론을 종합해 정리해 버면 첫 번째 덕목은 도덕적 의무의 이행. 두 번째 덕목은 절제.

세 번째 양보. 네 번째 덕목은 희생. 다섯 번 째 덕목은 국가와 사회에 대한 봉사 그리고 여섯 번째로 기부이며 마지막 덕목으로 사회적 책임의식을 꼽는다. 우리들이 익히 알고 있고 흔히 말하는 사회지도층에 속하는 인사들이 의무, 절제, 양보, 희생, 봉사, 기여, 책임과 같은 덕목을 이행해야 다른 사람들의 존경과 인정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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