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진명
온깍지활쏘기학교 교두

[충청매일] 상황이 이렇다면 활쏘기의 전통을 제대로 알려면 시대를 거슬러 가야 한다는 결론에 이릅니다. 얼마나 거슬러 가야 할까요? 한 세대인 30년 전으로 가면 될까요? 시간을 다투는 이런 질문에는 답이 저절로 확정됩니다. 오래전으로 갈수록 좋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현재 가장 오래전으로 거슬러가자면 얼마나 갈 수 있을까요? 그것은 원로 궁사들의 집궁 무렵으로 가면 됩니다. 가장 오래 활을 쏜 분들의 시대를 찾아가면 된다는 말입니다.

2020년 현재 가장 오래 거슬러 갈 수 있는 시대는 1960년대입니다. 온깍지궁사회가 활동하던 2000년을 기점으로 둔다면 1940년대까지 거슬러 갈 수 있었습니다. 실제로 온깍지궁사회에서 답사하고 채록한 기록들은 모두 1940년대의 풍속을 기준으로 했습니다. 그렇다면 이런 자료들을 토대로 전통의 기준 시대를 재구성한다면 1940년대일 것입니다. 그것은 한국 전쟁(1950년)이 일어나기 전인, 해방 전후의 시기를 말합니다.

1940년에서 한 세대인 30년을 거슬러 가면 1910년입니다. 이때의 활쏘기는 무과가 폐지되고 나라가 망하면서 그전의 전통이 모두 무너진 시대입니다. 일제강점기로 접어들면서 전통은 새롭게 정비되는 계기를 맞습니다. 그 중대한 시기에 전통 활쏘기에서도 중요한 작업이 이루어집니다.

즉 조선 시대 내내 활의 나라였으면서도 활에 관한 기록을 하지 않던 한량 당사자들이 처음으로 활에 관한 책을 만든 것입니다. 1929년에 나온 ‘조선의 궁술’이 그것입니다. 이것은 조선궁술연구회에서 만든 책인데, 책 출간과 동시에 전국체육조직으로 확대되면서 전 조선 궁술대회를 개최합니다. 그리고 명실상부 활쏘기를 대표하는 조직으로 자리 잡으며 일제강점기 내내 활쏘기의 형식과 내용을 새 시대에 맞게 적용하고 정비합니다. 이때 결성된 활쏘기 조직은 1932년 ‘조선궁도회’로 이름을 바꾸는데, 이것이 해방 후 대한궁도협회로 자리 잡아 현재에 이릅니다.

20년 전 우리가 가장 멀리 거슬러 갈 수 있는 1940년대는 『조선의 궁술』이 그대로 실현되던 때였습니다. 그런 시대에 집궁하여 활을 쏘던 분들이 서기 2000년까지 많이 살아계셨고, 우리가 그분들에게 물어서 자료를 많이 정리했습니다. 이후의 세대는 이 시대의 반복이다가 1970년대 접어들면서 개량궁의 등장과 함께 갑자기 변화가 찾아오게 됩니다. 그 변화는 ‘발전’이나 ‘전진’이 아니라, ‘뒷걸음질’이었습니다. 국궁이 양궁을 닮게 된 것입니다. 이것이 오늘날의 활터 모습을 전통의 기준으로 세울 수 없는 이유입니다.

우리 활의 전통이 가장 잘 간직된 시대는 1940년대이고, 그 시대의 기준은 ‘조선의 궁술’입니다. 우리가 ‘조선의 궁술’을 기준으로 삼지 않을 이유가 없습니다. 이 점 대한궁도협회에서도 인정할 수밖에 없었는지 1986년에 ‘한국의 궁도’를 냅니다. 이 책은 ‘조선의 궁술’을 현대어로 풀어서 낸 협회의 유일한 공식 문서입니다. 이런 공식 견해와는 달리 활터는 지금 엉뚱한 곳으로 흘러가는 중입니다.

우리 활에서 전통의 기준은 ‘조선의 궁술’입니다. 이 책에 없는 것이 지금 활터에 있다면 그것은 사이비입니다. 사이비(似而非)는 묘하게 닮았지만, 원판은 아니라는 뜻입니다. 전통을 구별할 때 가장 중요한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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