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매일]  “그렇소! 반이오!”

“그게 말이나 됩니까? 나무의 반이면 돈이 얼마나 되는지는 알고나 하는 말씀이오?”

“그럼, 그렇게 못하겠단 말이오?”

김주태가 으름장을 놓듯 협박조로 말했다.

“나무를 사고, 벌목을 하고, 동발꾼들이 강가까지 옮기고 하는데 얼마나 들어갔는지 아오? 아직도 한양까지 뗏꾼들이 나르는 공가까지 있고, 그런데 나무에 반값을 달라면 차라리 썩어 문드러지도록 거기 쌓아두는 게 낫겠소이다!”

우갑 노인도 그렇게는 못하겠다며 거절했다.

“그럼 없던 일로 합시다!”

김주태도 단호하게 흥정을 깼다.

김주태가 칼로 무 자르듯 그렇게 행동하는 것은 자신이 동강 일대 뗏목꾼들을 통제할 수 있다는 자신감에서였다. 동강이든 서강이든 이곳에서 뗏목을 옮기려면 자신의 허락 없이는 나무토막 하나 강 하류로 보낼 수 없었다. 이 일대 뗏꾼들을 도도고지산 막골 깊숙이 가둬놓았으니 목상들이 아무리 떼 부릴 뗏꾼을 구하려 해도 구할 수 없을 것이었다. 김주태는 자신이 뗏목쟁이들을 수중에 넣고 있다고 생각하기에 맘껏 배짱을 부렸다. 그것을 무기 삼아 다른 목상들과도 말도 안 되는 계약을 성사시켰다. 목상들은 너무나 억울하고 울화통이 터졌지만 김주태가 요구하는 대로 따르는 수밖에 다른 도리가 없었다. 김주태는 이 일만 잘 마무리돼도 지금 겪고 있는 모든 곤경이 한꺼번에 해결될 것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생각지도 못한 사람이 찾아와 허섭스레기나 다름없는 곡물을 세 배나 높은 값을 주고 사가고, 오만 주나 되는 막대한 나무까지 흥정을 하고 있는 것이었다. 이번 일만 잘 성사된다면 청풍 관내 장사꾼들 중에서는 그 누구도 김주태를 넘볼 수 없을 정도로 탄탄대로를 걸을 것이었다. 김주태는 자신에게 생기는 일련의 모든 일이 자신의 뛰어난 수완 덕분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지금 자신의 눈앞에 있는 우갑 노인도 곧 자신의 뜻대로 움직이지 않고는 배길 수 없을 것이라고 맹신했다.

“아무리 장사가 이문을 남기는 것이라 해도 반은 너무 과한 것 아니오이까? 더구나 곤경에 처한 약점을 잡아 그렇게 무리한 요구를 한다면 그건 상도덕을 떠나 인간적으로도 무치한 일이 아니겠소이까? 그러니 다시 한 번 생각해 주시오. 제발!”

우갑 노인이 통사정을 했다.

“장사판이라는 것이 약한 놈은 죽고 힘 센 놈만 살아남는 것 아니겠소? 당신도 내게 뭐라도 얻을 것이 있으니 날 찾아온 것이 아니겠소. 만약 내가 당신에게 해줄 것이 없다면 날 찾아왔겠소? 그러니 서로 주고받는 것 아니겠소이까. 다만 내가 더 당신에게 줄 것이 많으니 내가 좀 더 먹자는 것인데 그걸 약점이니 상도덕이니 무치니 하며 내 심사를 건드리니 흥정이 되겠소이까?”

“내가 심사를 불편하게 하려고 그런 것이 아니라 그렇다는 얘기니 너무 마음 상하지 말고 제 사정을 좀 헤아려 달라 이 말씀입니다요!”

우갑 노인이 두 손을 빌다시피 하며 김주태에게 매달렸다.

김주태는 속으로 쾌재를 부르고 있었다. 이제 좀만 더 뜸을 들이며 조이면 통나무 오만 주 중 반이 넘어올 수도 있겠단 생각이 들었다. 사람이 죽으란 법은 없었다. 한양의 대권에 공납할 물산과 청풍도가 환곡을 채워 넣어야 할 일이 한꺼번에 몰아닥쳐 정신을 차릴 수 없을 때는 당장 도망이라도 쳐 어디론가 꽁꽁 숨어버리고 싶었는데, 지금처럼 큰 힘 들이지 않고 막대한 거금이 굴러들어 오게 되니 힘들었던 그때 생각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반이오!”

김주태는 인정사정 없었다. 이미 상대의 약한 구석을 보았으니 자기 마음대로 물어뜯고 있었다.

“하는 수 없지요!”

우갑 노인이 굴복했다.

“그럼 내 뜻대로 한단 말이시오?”

김주태도 믿어지지 않는 눈치였다. 눈앞에서는 돈자루가 둥둥 떠다니고 있었다.

“그런데 나도 조건이 있소이다!”

“뭐요?”

“나무 반을 넘겨주는 대신 그쪽에서도 약속을 지키지 못하면 그 배를 벌금으로 물어주시오. 그리고 곡물 대금으로 주기로 한 저 돈도 일이 마무리되면 나무 값과 함께 주겠소. 그러면 나도 그쪽 요구를 들어주겠소이다!”

우갑 노인도 김주태에게 조건을 걸었다.

“알겠소이다! 그깟 것이야 못 들어 주겠소?”

김주태가 우갑 노인의 조건을 수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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