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솔문학작가회
수필가

 

[충청매일] 요즘 코로나19가 창궐한 탓인지 식당을 가보아도 한가하기 만하다. 그래도 추어탕 집, 갈비탕 집에는 돌솥밥이 인기가 높은지 식객들이 많이 몰려든다. 식탁 의자에 앉아 먹으니 신발 벗을 일도 없어 편해서 좋다. 특히 돌솥밥은 밥을 그릇에 퍼내고 물을 부어 덕덕 긁어 뚜껑을 덮어놓고 추어탕 한 그릇 먹고 나서 돌솥밥 누룽지 퍼먹는 맛이 일품이다. 집에서도 아내가 못다 먹은 밥을 프라이팬에 펴 넣고 누룽지를 만들어 두었다가 푹푹 삶아 먹으면 그 맛이 좋아서 자주 먹는 것이 우리집 식습관이 되었다.

시골에서 태어나 고등학교를 다니던 시절 겨울이면 하숙을 하고 봄부터 가을까지는 학교 앞에 방 하나를 얻어서 자취를 했다. 어떤 때는 밥 지을 시간이 없으면 학교 앞 할머니 보리밥집에 들려 사 먹는 일이 많았다. 할머니 보리밥집에는 언제나 시커먼 가마솥에 보리밥 누룽지가 부글부글 끓고 있었다. 우리가 가면 할머니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오늘도 밥을 태워 누룽지가 많네, 밥 먹고 배가 덜 차면 실컷 퍼다 먹으레이. 보리밥 누룽지 맛이 좋다. 이놈의 밥은 왜 이리도 잘 타는지.” 가마솥 보리밥 누룽지 숭늉맛은 언제 먹어도 구수했다.

돈을 아끼기 위해서 보리밥 한 그릇 달랑 시켜놓고 보리밥 누룽지 두 그릇을 거뜬히 비웠다. 그때는 그렇게 먹고 잠시 뒤돌아서면 또 배가 고픈 때 이었으니까요, 그런데 하루는 깜짝 놀랬다. 할머니가 너무 늙은 탓인지 거스름돈을 원래 드린 밥값보다 더 많이 주시는 것이었다. 나는 돈도 없는데 잘 됐다 싶어 이번 한번만은 그냥 넘어가자. 그렇게 한두 번은 미루고 했지만 할머니의 서툰 셈이 계속되자 밥하기 싫고 시간이 바쁠 때는 할머니집 보리밥을 사먹고 거스름돈은 당연한 것처럼 주머니에 받아 넣고 나서지만 늘 마음이 괴로웠다.

그렇게 몇 달을 지나서 어느 날 할머니 보리밥집이 생각나 찾아 갔더니 할머니 보리밥집 출입문은 철문으로 잠겼고 몇 번을 찾아갔지만 좀처럼 문이 열리지 않았다. 며칠 후 조회 시간이었다. 학생주임 선생님이 심각한 얼굴로 조회단에 오르더니 “모두 눈을 감아라.”하고는 “학교 앞 보리밥집 할머니 집에서 음식 먹고 거스름돈 잘못 받은 사람 양심껏 손들어라.” 순간 가슴이 뜨끔 했다. 나는 서로를 바라보다 손을 들었다. 손을 든 학생은 많기도 했다. 반이 훨씬 넘었다. 선생님은 침울한 목소리로 말씀 하셨다.

“보리밥집 할머니가 돌아가셨다. 할머니께서 아들에게 남기신 유언장에 의하면 할머니 전 재산을 학교 장학금에 쓰시겠다고 하셨다.” 그리고 선생님은 잠시 뜸을 들이다가 “아들한테 들은 얘기인데, 거스름돈은 자취를 하거나 돈이 없어 보이는 학생에게는 일부러 더 주셨다 하더라. 그리고 새벽부터 일어나 그날 쓰일 누룽지를 위해 밥을 일부러 태우셨다는 구나.”

그날 학교를 마치고 나오는데 보리밥 할매 집 간판이 크게 보였고 굳게 닫힌 철문 앞에서 엉엉 울고 말았다. “할머니 죄송해요, 정말 죄송해요.”하고 몇 번이고 마음속으로 빌었고 지금 내 인생이 노경에 이르러서도 그때의 보리밥집 할머니에 대한 고마운 마음은 잊지를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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