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매일] 그날부터 북진여각은 바쁘지만 물밑에서 은밀하게 소리 없이 청풍도가 김주태를 고랑탱이로 몰아넣을 준비를 시작했다. 대행수 최풍원은 충주 윤왕구 객주를 찾아가 무언가를 부탁하고, 영춘 심봉수 객주와 영월 맏밭 성두봉 객주에게도 사람을 보내 무언가 조처를 취하기 시작했다. 예상하고 있었던 대로 청풍도가에서는 이번에 대궐을 짓는데 쓰일 목재를 자신들이 공급하기로 했다며 사방팔방 소문을 퍼뜨렸다. 남한강 상류 벌목장 언저리의 소규모 나무장사는 물론 한양의 뚝섬이나 마포의 목상들까지 청풍도가를 찾아와 이번 기회에 자신들의 목재를 팔기위해 김주태에게 머리를 조아렸다. 김주태는 막대한 수량의 목재와 탄호 대감과의 유착관계를 과대포장하며 찾아오는 목상들에게 무리한 요구를 서슴지 않았다. 하지만 목상들은 부당한 요구임을 알면서도 싫은 표정은커녕 한마디 거부의사도 내색하지 못했다. 혹시라도 청풍도가 눈 밖에 나면 나무장사는 물 건너가기 때문이었다. 장사라는 것이 내 물건은 쌓여있는데 팔려나갈 기미는 없고 남의 물건은 불티나게 나간다면 그것만큼 울화통 터지는 일도 없었다. 그것은 집안에 있는 과년한 딸을 보며 답답해하는 어미 심정 같은 것일 수도 있었다. 설령 밑지고 파는 한이 있더라도 팔려나가는 것이 후련한 일이었다. 그러나 그것보다는 더럽고 억울해도 조금만 참으면 목돈을 만질 수 있다는 기대감이 더 컸기 때문이었다. 그래도 속에서 끓어오르는 화증은 감출 수 없어 말이 새나가지 않을 친분이 있는 목상들끼리 몇 몇 모이면 청풍도가 김주태에 대한 분노를 주저리주저리 풀어놓았다.

“내가 평생 나무장사를 했지만, 번연히 눈 뜨고 내 것 빼앗기기는 첨이구만!”

“말해 뭐 하는감. 나한테는 대궐에 나무를 넣게 해줄 테니 받는 돈에 반을 내놓으라는 거여! 받는 돈에 반이면 나무 값 제하고 공가 제하고, 다듬는 값 제하고 나면 뭐가 떨어지냔 말이여!”

“그런데도 어떤 놈은 뒷돈까지 찔러주는 놈도 있다는구만.”

“저만 살겠다는 거지 뭐. 그런 지랄을 하니까 저 놈들은 나무장사해서 떼돈 버는 줄 알고 더 요구를 하는 거여!”

“먹을수록 양양거리는 놈도 그렇지만, 지 살자고 그러는 놈도 문제여!”

어딜 가나 그런 놈은 있는 법이었다. 제 수중으로 돈만 들어온다면 남이야 죽든 살든 아무런 관심도 없었다. 그런 놈은 돈만 벌 수 있다면 제 마누라 꼬쟁이라도 벗겨 뒷돈을 바칠 놈들이었다. 이러거나 저러거나 청풍도가 김주태는 이번 기회에 봉이라도 잡은 듯 목상들을 상대로 알뜰하게도 등을 쳤다. 충주 윤왕구 상전의 우갑 노인이 북진여각으로 올라온 것도 그 무렵이었다.

“이보시게 최 대행수, 북진도 이젠 번듯해졌네 그려! 이게 다 최 대행수의 북진여각 덕분 아니겠는가?”

우갑 노인이 이전과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달라진 북진의 상전거리와 여각을 둘러보고 찬사를 금치 못했다.

“이게 다 쥐뿔도 모르는 절 거두어 주신 어른 덕분입니다.”

최풍원이 공을 우갑 노인에게 돌렸다.

“그건 그렇고, 지난번 충주에 와 상론했던 그 일로 올라왔네. 일은 계획대로 돌아가고 있겠지?”

“여부가 있겠습니까요. 지금 청풍도가에서는 대궐 공사를 미끼로 목상들을 아귀처럼 뜯고 있습니다.”

“불만들이 대단하겠구먼!”

“그러니 어쩌겠습니까? 김주태 놈이 칼 잡은 놈이니 그놈이 휘두르는 대로 따라가야지 별 수 있겠습니까?”

“내가 내일 충주에서 데리고 온 우리 상전 사람들을 대동하고 청풍도가로 들어갈 걸세. 그리고 김주태를 만나 그놈이 혹하고 달려들 조건을 제시할걸세!”

“이미 복안을 다 짜셨습니까?”

“물론이지!”

“어떤 복안이십니까?”

“특별한 복안이랄 게 뭐 있겠는가. 욕심 많은 놈에게는 욕심보를 그득하게 채워주면 그게 복안이지. 더구나 지금 김주태는 매우 곤경에 처해있다고 하지 않았는가? 욕심도 철철 넘치는데다가 다급한 처지까지 겹쳤으니 약발이 금방 들을 것 아니겠는가?”

우갑 노인이 대수롭지도 않게 말했다.

“우갑 어른, 그래도 청풍도가를 주무르고 있는 대가리입니다. 술수가 여간 능한 놈이 아니니 각별히 유념해야 합니다!”

너무나 일상사처럼 말하는지라 최풍원은 걱정이 되어 조언을 했다.

“잘 알고 있네! 늙은 호랑이도 호랑이는 호랑이니 어찌 이빨이 없겠는가. 각별히 조심할 테니 너무 걱정하지는 말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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