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천군의원

[충청매일] 어느날 노나라 애공이 공자와 문답을 나눈 일이있다.

애공; “세상에 굉장한 건망증 환자가 있다더군요.”

공자; “어떤 사람이던가요?”

애공; “이삿짐 싣고 가면서 아내를 잊어버리고 간 놈이 있다더군요.”

공자; “아니 그보다 더 심한 자가 있는데요.”

에공; “원, 세상에 그보다 더 심하다니!”

공자; “세상 사람들이 모두들, 자기 자신을 잊어버리고 다닙니다.”

우스운 얘기지만 오늘의 우리에게 잘 맞는 비유이기도 하다. ‘억’이라는 돈을 잔돈 취급하는 사람, 쥐뿔만 한 권력이라도 쥐었다 하면 마구 흔드는 사람, 별것도 아니면서 소리소리 광내는 사람, 하나하나 들춰 보면 모두가 제 정신이 아니다. 명동에서 한 젊은이가 뛰어가는 것을 보고 어느 노신사가 붙잡았다.

노신사; “도대체 어딜 그렇게 달려가시오?”

젊은이; “나도 그걸 몰라 뛰고 있는 중이오.”

무턱대고 뛰는 사람들이 많다. 불쌍한 친구들이다. 목표가 없고 방향을 잃었으니 그 불안한 마음은 이해가 간다. 도대체 세상은 누구에 의해서 어디로 끌려가고 있는가?

바보학교에서 선생님이 학생들에게 물었다.

“8을 2로 나누면 얼마냐?”

“4입니다.”

멍청이가 제법 대답했다.

그러자 뚱딴지가 일어서더니 “틀렸습니다. 3입니다”하고 눈을 크게 떴다.

선생님이 물었다.

“왜 3이냐?”

“8을 위에서 아래로 나누면 오른쪽 절반이나 왼쪽 절반이 다 3자가 됩니다.”

옆에 있던 어처구니가 또 끼어들었다.

“모두 틀렸습니다. 답은 0입니다.”

“어째서 또 0이 되느냐?”

선생은 아예 신음 소리를 냈다.

“8을 옆으로 나누면 위도 0이 되고 아래도 0이 됩니다.”

어찌 보면, 바보들의 얘기가 바로 ‘내 현실’, ‘우리 현실’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도대체 어느 것이 옳고 어느 것이 틀린 것인지 사람들의 판단 기준이 흐려져 버렸다.

탈무드에 나오는 얘기다. 깜깜한 데를 어떤 사람이 걷고 있었다. 그런데 저쪽에서 눈 먼 소경이 초롱불을 들고 걸어왔다. 그래서 그는 “당신은 소경인데 왜 초롱불이 필요합니까?”하고 물었다. 소경은 “내가 이것을 가지고 걸으면 내가 걷고 있는 것을 눈 밝은 사람들이 알 수 있기 때문입니다”라고 대답했다.

오늘 이 시대에 초롱불을 들고 다닐 눈먼 소경은 누구인가? 오늘 너도 평화를 가져다주는 것이 무엇인지 알았더라면…! 세상은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 것인가? 아니 나 자신은 지금 무엇을 향하여 어디를 걷고 있는가?

일찍이 소크라테스는 “너 자신을 알라”고 외쳤다. 무엇을 제법 안다고 소리소리 지르지만, 사실 아무것도 모르는 소피스트들에게 “네가 얼마나 무식하냐?”를 알아차리라는 주장이었다. 오늘 우리가 백 번 들어 마땅한 외침이다. 우리가 과연 어디로부터 와서 어디로 가고 있는지를 한번쯤 생각하면서, 인생의 진정한 의미는 무엇이고, 참삶의 길은 어떤 것인지도 생각해 봐야겠다.

거듭 우리 자신에게 물어보자. 오늘 바로 이 순간에 나는 무엇인가. 나는 무엇을 추구하며, 어디로 가려고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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