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圖·始·樂(도시락)-손에 관한 기억]이야기꾼의 섬세한 감정묘사를 즐기다
[圖·始·樂(도시락)-손에 관한 기억]이야기꾼의 섬세한 감정묘사를 즐기다
  • 충청매일
  • 승인 2020.06.23 1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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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현욱 청주시립도서관 사서]초등학생 때 책상에 엎드려 얼굴을 손에 파묻고 울고 있으면 친구들이 흔들며 ‘너 또 울어?’ 라고 물었던 기억이 떠오른다. ‘손’하면 떠오르는 부끄러운 기억이다.

그 시절 나는 아이들의 작은 놀림에도 쉽게 울음을 터트렸다. 남자는 쉽게 우는 게 아니라는 부모님의 다그침에도, 작은 좌절 앞에서도 속절없이 울음을 터트리곤 했다.

이것은 나의 숨기고픈 흑 역사이고, 유년 시절의 아픈 상처이다.

오늘 소개하고자 하는 책은 그런 우리들 유년의 상처, 무자비한 개발, 자본과의 싸움, 구조적 폭력 등 다양한 주제를 다룬 7편의 단편소설이 담긴 김정애 작가의 ‘손에 관한 기억’(고두미)이다.

김정애 작가는 2000년 단편소설 ‘개미 죽이기’로 허난설헌문학상을 받았으며, 2006년부터 청주시립도서관서 지속적으로 추진해 오고 있는 ‘책읽는 청주’시민독서운동의 2020년 아동부문 대표도서로 선정된 ‘안녕, 나야 미호종개’를 쓴 우리 지역의 소중한 작가이다.

이 단편집에서 제일 먼저 만난 작품은 ‘손에 관한 기억’이다. 소설은 주인공(話者)의 어린시절 아버지를 매개로 한 상처를 다룬 이야기이다.

아직 해가 뜨지 않은 이른 새벽, 아버지는 장작불에 소죽을 끓이고 계셨다. 화자는 아버지 곁으로 다가가 아궁이 속에서 타고 있는 불꽃을 보면서 쥐불놀이를 떠올렸고 얼떨결에 아궁이 속의 장작개비를 만지게 된다. 그로인해 화자는 오른손 바닥에 심한 화상을 입는다. 아버지는 화자의 손바닥을 볼 때마다 계집아이의 손이 못쓰게 됐다며 한숨을 짓곤 한다. 그런 아버지로 인해 화자는 늘 손을 감추며 살아야 했다. 흉측한 손이지만 당당하게 내놓고 살라고 말해주기를 바랐던 화자와 아버지 간의 암묵적인 갈등과 상처가 자리 잡게 된 원인이 됐다. 그 영향으로 주인공은 사람을 만날 때마다 가장 먼저 상대방의 손을 세밀하게 관찰하는 습관이 있다.

훗날 화자는 우연한 기회에 다기(茶器)를 만드는 도공을 만나게 된다. 역시 도공의 손을 관찰하고 밤새 도자기를 굽는 불구경을 하면서 자신의 어린 시절 아버지에 대한 나쁜 기억을 추억으로 변환시키는 기회를 갖게 된다. 특히 이 작품에 주목한 이유는 등장인물들의 섬세한 감정 변화와 도자기 제작과정의 디테일한 묘사로 소설 읽는 재미를 키워줬다는 점이다.

이와 함께 이 단편집에서 가장 재미있게 읽은 작품은 ‘개털’이다. 국가의 개발 사업으로 삶의 터전을 잃는 어려움을 직접 체감해보진 않았지만, ‘개털’에 묘사된 여러 가지 에피소드들이 고향을 잃은 사람들의 상처를 얼마든지 짐작할 수 있게 해주었다. 이밖에도 어린 시절 어렴풋하게 기억하고 있는 IMF에 대한 이야기를 배경으로 자본권력의 병폐를 지적한 작품들은 현재의 시점에 적용되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김정애 작가가 쓴 소설의 매력은 사실 빤한 방향으로 흘러가기 쉬운 이야기를 빤한 듯하면서도, 빤하지 않게 쓴 작가의 뛰어난 필력이다. 올해 아동부문 대표도서로 선정된 ‘안녕, 나야 미호종개’도 참 재밌게 읽었다.

많은 독자들이 우리 청주의 대단한 이야기꾼인 김정애 작가의 작품을 읽으며, 각자의 추억을 떠 올려보고, 코로나 19로 인해 집에서 머무는 시간을 제대로 힐링해 보는 것은 어떨까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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