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범의 시시콜콜한 이야기]양주에서 백두까지
[김영범의 시시콜콜한 이야기]양주에서 백두까지
  • 충청매일
  • 승인 2020.06.23 16: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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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청주민예총 사무국장

[충청매일] 양주 사는 임꺽정은 묘향산 구경도 하고 백두산에 이르러 운총을 만나 아내로 삼는다. 홍명희의 소설 ‘임꺽정’의 이야기다. 소설의 배경은 한라산에서 백두산에 이르기까지 현재 남과 북으로 나뉜 국토 전체다. 6·25전쟁 후 미국과 구소련에 의해 나라가 둘로 나뉘고 우리는 우리의 의지와 상관없이 섬이 된 나라에서 질곡의 역사를 살아오고 있다.

남과 북의 화해 모드가 조성되면서 임꺽정이 운총을 만나러 가던 길을 따라 문학기행을 떠나는 꿈을 꾸었다. 임진강 나루터에서 배를 타고 청석골도 가고 금강산도 가고 평양에서 냉면을 먹는 꿈같은 일이 일어나길 바랐다.

그러나 평화의 분위기는 오래가지 못했다. 삐라(벽에 붙이는 선전 광고지나 돌리는 광고지의 뜻을 가진 말인데, 우리나라에서는 북한에서 날려 보내는 대남 선전용 인쇄물이나 반정부 모임에서 몰래 돌려보는 격문 등의 불온 문서만을 가리키는 말로 한정되어 쓰이고 있다)는 남풍을 타고 북으로 날아갔고 이에 분노한 북은 강력한 대응을 실천했다. 북은 남북공동연락사무소를 폭파했다. 민간인으로서 북한 내부의 정치적 상황이야 모르겠지만, 평화를 노래하고 통일을 꿈꾸던 많은 이에게는 안타까운 일이었다.

어릴 적 삐라를 주워가면 공책이나 연필을 주곤 했다. 삐라는 야산에 지천으로 있었다. 북에서 날아온 불온선전물을 발견하면 반드시 신고해야 하고 신고한 자에게 대가를 준 것이었다. 가난한 농부의 아이들에게 공짜 연필은 구미가 당기는 선물이었다. 돼지로 변한 북한 괴수를 무찌르던 똘이장군의 반공정신을 이어받은 우리는 산으로 들로 삐라를 주우러 다녔고 평화의 댐 건설에 기꺼이 금반지를 바쳤다. 선거 때마다 북에선 간첩이 내려왔고 언론에서는 금방이라도 전쟁이 날 것처럼 분위기를 몰아갔다.

언제부터인지 모르지만, 어느 교정에나 있던 이승복 동상도 플라타너스도 보기 힘들어지면서 삐라도 구경하기 어려워졌다. 이념의 차이로 인한 한반도의 긴장은 계속되었지만, 6·25를 경험하지 못한 세대에게 전쟁은 남의 나라 일이었고 남북 정상이 만나 손을 잡았을 때는 통일을 꿈꾸기도 했다.

북으로 날아간 삐라는 탈북민 단체가 뿌렸다는 이야기도 있고 심지어 돈을 받고 삐라를 보낸다는 이야기도 있다. 옛날이야기에서나 나올 법한 이야기가 현실에서 재현되고 있으니 분단의 역사는 아직 진행중임이 분명하다. 

탈북민들이 늘어나면서 나름의 생존 전략이 필요할 것이다. 정부의 지원 정책만으로는 팍팍한 자본주의에서 살아남기 어렵기 때문이다. 자연스럽게 단체나 협회가 결성되고 자신들의 이익을 위한 사업들을 강구해야 할 것이다. 탈북민이 출연하는 TV프로도 여럿 생겼다. 안타깝게도 탈북민의 입을 통해 전해지는 북한의 이야기에는 이질감을 부추기는 내용이 대다수여서 애써 보지는 않는다.

임꺽정의 처남 황청왕동이처럼 걸음이 빠르다면, 양주에서 개성이야 한나절이면 당도할 터이다. 걸음을 재촉하여 평양에서 하룻밤 묵고 내처 백두산으로 내달리면 며칠이면 고향에도 다녀올 것이다. 통일은 둘째 치고 남북을 연결하는 기찻길이 열리는 꿈같은 일이 현실이 되면 창밖으로라도 그리운 풍경을 담아 볼 수 있을 텐데, 말 그대로 꿈같은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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