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솔문학작가회
수필가

[충청매일] 녹음이 검푸른 6월이 되면 우리국민은 누구나 슬프게 생각하는 것은 6·25 사변! 동족상전의 처참한 비극을 잊을 길이 없다. 분단 70년을 넘었지만 통일은커녕 북핵을 이고 살아야 되는 오늘의 현실을 개탄한다. 6·25 전쟁은 북한의 기습 남침으로 일어난 비극이 이었다. 6·25를 경험하지 못한 전후 세대와 청소년들에게 남침을 한 엄연한 사실을 누가 북침이라 왜곡 하고 있는가.

당시의 군사력은 북한이 우위에 있었다. 소련의 지원을 받아 소련제 탱크 240대, 전투기 170대 병력20만이 넘었지만 남한은 탱크, 전투기는 전무했고 훈련기 20대, 병력 10만에 불과해 주한 미군에 의지해왔다. 남한사회는 북한의 지하조직을 통한 좌익 세력이 곳곳에서 분란을 일으켰다. 1947년 6월 어찌된 일인지 남한의 버팀목인 주한미군이 철수를 했다. 그해 9월에는 북한에 주둔한 소련군도 철수를 발표했다. 더욱 놀라운 일은 1950년 6월 24일 국군은 그동안 유지해 오던 비상 경계령을 해제하면서 군 장병들은 농촌모내기 일손을 도우라 지시했다. 그날은 주말 휴일로 군부대 병력이 대부분 외출 상태였다. 남침의 기회만을 노리던 북한은 남한의 허술한 경계를 놓치지 않았다. 그날(6월 25일) 새벽 4시 북한은 ‘폭풍’이란 공격명령과 함께 38선 전역에서 준비해온 T-34 소제탱크를 앞세우고 물밀 듯 기습 남침을 하였다. 전 세계, UN이 알고 겪은 이 엄연한 사실을 세월이 지났다고 북침이라고 오리발을 내미는 집단이 북한이다.

이로 인해 한국군은 UN군이 이 땅에 올때까지 버티던 낙동강 전투에서 얼마나 많은 젊은 피를 흘려야 했던가. 맥아더 장군의 인천상륙작전이 성공을 거두고 압록강까지 진격을 했지만 중공군의 참전으로 후퇴해 지금의 휴전선에서 정전협정을 한 것이다. 북한의 남침으로 우리 민족이 겪은 재앙은 상상을 뛰어 넘었다. 3년간 피비린내 나는 전쟁으로 조국의 아름다운 산하와 국민의 삶의 보금자리는 폭격, 포격으로 황폐화 됐고, 한국군, UN군, 중공군 등 군 장병 270만명의 인명피해와 이재민 370만, 전쟁미망인 30만, 전쟁고아 10만, 이산가족 1천만명 등 이 엄청난 상처가 북한 남침으로 일어나 것이다. 이것을 이제와서 북침이라고 우겨되고 기회만 있으면 수많은 도발을 해온 집단이 북한이다. 휴전이후 도끼만행, 프애불로호 납북, 아웅산 폭파,  동해안 간첩침투, 연평도 해전, 천안함 폭침 등 헤아릴 수 없이 수많은 도발을 일삼아왔다. 세계 동계올림픽을 계기로 남북회담과 북미회담으로 이어지던 평화 공존과 비핵화 약속은 어디로 갔는가. 북한은 2020년 6월 16일 남북화해의 상징인 남북공동연락 사무소를 폭파하는 만행을 일으켰다. 그동안 북한을 신뢰하고 평화를 추구해 온 공든 탑이 모두 물거품이 되고 만 것 아닌가. 이제는 북한의 무력 도발을 막으려면 북한에 구애할게 아니라 도발을 격파할 수 있는 강력한 군사력을 갖추고 군 기강을 튼튼히 해야 한다. 또 한미동맹을 보다 굳건히 하며 국론을 통일 해야한다. 북한에 매달릴수록 군사도발을 부추긴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북한의 적화야욕은 70년 전 6·25남침 때와 하나도 변한 것이 없다. 아무리 정권이 바뀌고 이념이 역사를 우롱한 다해도 변하지 않은 것은 6·25가 발생한 그날의 남침 야욕이다. 호국보훈의 달을 보내면서 우리는 결코 이점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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