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9장 질병과 늙음 (4) 여성 화가들의 늙은 자화상
스페인 궁정화가 소포니스바 안귀솔라가 실명 전 그린 자화상
이 작품에서 세속적인 과시나 권위적 제스처 찾아볼 수 없고
자신이 걸어온 삶 담담하고 솔직하게 그린 진중한 품격 드러나
또다른 실명 화가 ‘로살바 카리에라’ 71세에 그린 자화상에서
단단하게 굳어진 입매 등 앞으로 다가올 운명 예견하는 듯해
한쪽 눈에 외알 안경 쓴 안나 도로테아 테르부쉬 자화상에선
그녀가 독서광이고 대단히 지적인 인물이었다는 점 기술
나이가 들어 돋보기를 걸치고 안정되게 책 읽는 모습 묘사

왼쪽부터 소포니스바 안귀솔라 ‘자화상’ 1610. 로살바 카리에라 ‘비극으로서의 자화상’ 1746년경. 안나 도로테아 테르부쉬 ‘자화상’ 1777.
왼쪽부터 소포니스바 안귀솔라 ‘자화상’ 1610. 로살바 카리에라 ‘비극으로서의 자화상’ 1746년경. 안나 도로테아 테르부쉬 ‘자화상’ 1777.

[이윤희 수원시립미술관 학예과장]르네상스 시대 자신의 이름을 걸고 화가로 활동했으며 이탈리아 크레모나 출신이지만 스페인의 궁정화가로 활동했던 여성화가 소포니스바 안귀솔라(Sofonisba Anguisola)는 수많은 자화상을 남겼던 뒤러(Albrecht Durer)와 렘브란트(Rembrandt Harmenszoon van Rijn) 사이의 시기, 그러니까 16세기와 17세기 사이에 자화상을 가장 많이 남긴 화가로 기록되고 있다. 스페인의 궁정화가로 가기 전에 남겼던 여러 자화상들과 가족초상화를 통해 후대의 감상자들은 영화의 스틸사진을 보듯 그녀의 인생여정을 상상해볼 수 있다. 초롱초롱하고 지적인 눈매를 가졌던 젊은 날의 모습이 모두 사라진 78세의 화가는 마지막 자화상에서 붉은 벨벳 의자에 앉아 책과 편지를 들고 있다.

이 그림에서 안귀솔라는 자화상에 등장할 때 늘 그랬듯이 어두운 색의 옷을 입고 별다른 장식을 하지 않은 머리를 단정하게 뒤로 넘기고 앉아 있다. 자신이 쓴 편지를 한 손에 들고 다른 손에는 읽던 책의 페이지를 표시하기 위해 검지를 책 안에 끼운 모습이다. 자신이 초상화가로서 그렸던 다른 왕족이나 귀족 여성들처럼 화려한 장신구로 몸을 치장한 구석은 보이지 않는다. 다만 귀족의 정장이라는 것을 목 부분의 러프 칼라만이 유일한 장식물처럼 보인다.

이 그림을 그릴 때만 해도 편지를 쓰고 책을 읽을 수 있고 자신의 자화상을 꼼꼼히 그릴 수 있었지만, 몇 년 지나지 않아 안귀솔라는 실명을 하고 만다. 이 마지막 자화상이 스스로의 눈으로 자신을 바라볼 수 있었던 마지막 그림으로 남은 것도 그 때문이다. 이 그림 속에서는 젊은 시절의 푸르고 밝은 눈빛이 사라지고 있는 과정, 이가 빠져 합죽하게 변한 입모양, 빽빽하던 머리칼이 듬성해진 모습이 미화되지 않고 그대로 드러나 있다. 젊은 시절 고향을 떠나 스페인 궁정에서 활동했고, 이탈리아 귀족과 결혼해 본국으로 돌아와서도 초상화가로 활동을 했으며, 남편이 사망한 후 다른 남성과 결혼하여 제노아로 이동하고, 후에는 팔레르모에서 생을 마감한 소포니스바 안귀솔라. 이 화가의 생애는 당시 여성들에게 일반적으로 장려되었던 관습을 깨고 스스로 개척한 것이었다. 치열했던 인생의 마지막에 화가로서 치명적인 시력의 손실을 앞에 두고 그린 이 자화상에는 세속적인 과시나 권위적 제스처가 보이지 않는다. 다만 그러한 세월을 지나 온 자신의 삶을 담담하고 솔직하게 드러내 보이는 진중한 품격이 온 몸을 감싸고 있는 것이다.

시력을 잃어가는 노년의 자화상을 남긴 또 다른 여성화가로는 베니스의 로살바 카리에라(Rosalba Carriera)가 있다. 파스텔을 매체로 순식간에 인물의 특성을 화사하게 그려내는 초상화가로 알려져 살아생전에는 ‘베니스의 로살바’로 불리웠던, 베니스라는 매력적인 도시를 들르는 왕족이나 귀족들이 앞 다투어 그녀의 앞에 앉아 초상화를 그렸던, 당대의 화가 로살바 카리에라도 시력의 노화를 피해가지는 못했다.

그녀는 젊은 시절, 그림은 좋지만 외모가 아름답지 않은 여성으로도 널리 회자되었다. 로살바 카리에라와 직접 만났던 여러 유명인사들이 그녀의 외모에 대해 여러 평가들을 남기면서, 남성화가라면 전혀 지장이 없었을 비아냥어린 외모비하의 주인공이 되었던 것이다. 미켈란젤로가 그의 못생긴 외양으로 회자될 일은 없었으나, 많은 여성 화가들은 외모에 대한 평가가 끊임없이 따라다녔다. 미모가 그들의 발목을 잡기도 하고, 미모가 아닐 때도 비하의 대상이 되었던 것이다. 하지만 로살바 카리에라는 이러한 세간의 소문들에 별달리 신경쓰지 않았고, 자신의 자리에서 끊임없이 자신의 화업을 쌓아나갔다. 로살바 카리에라를 절망시킨 것은 그녀의 외모가 아니라 시력이었다. 70세가 가까워졌을 때 그녀는 눈의 초점이 심각하게 흐려지는 것을 알았고, 그것을 죽음보다 심각하게 받아들였다. 두 번의 수술을 감행했지만 결국은 완전한 실명에 이르게 되었고 그녀의 화가로서의 이력은 이로써 끝을 맞게 되었다. 로살바 카리에라의 마지막 자화상은 실명에 이르기 직전에 그린 것이다.

71세에 그린 로살바 카리에라의 이 자화상에는 사물의 경계를 흐리면서 환상적인 화면을 만드는 원래의 기량이 그대로 드러나 있지만, 이전의 자화상에서 볼 수 있었던 낙관적인 자신감이 더 이상 보이지 않는다. 굵어진 목과 듬성한 머리, 그리고 늘어진 뺨이 파스텔화의 특성으로 어느 정도 가려져 있지만, 단단하게 굳어진 입매와 시선을 비껴 앞을 쳐다보지 않는 눈빛은 곧 다가올 운명을 예견하는 듯하다.

그러나 화가로서 더 이상 활동할 수 없을 비극적인 예감을 가지고 그린 이 자화상에는, 자신의 삶에 대한 스스로의 평가와 기록이 남겨져 있다. 머리 장식으로 보이는 월계수 잎은 고대로부터 명예와 영광의 상징으로 사용되었던 것으로, 로살바 카리에라는 앞으로 다가올 운명이 어떤 것이라 하더라도 지나온 삶이 스스로 최선을 다해온 것이었노라 말하고 있는 것이다.

나이든 여성화가의 자화상 가운데 빼놓을 수 없는 작품으로 안나 도로테아 테르부쉬(Anna Dorothea Therbusch)의 작품이 있다. 테르부쉬도 로살바 카리에라처럼 외모에 대한 비하에 시달렸던 인물이다. 베를린 태생의 테르부쉬는 어린 시절 여동생과 더불어 그림에 있어서의 영재로 일컬어졌지만 숙박업을 하는 남편과의 결혼 이후 십팔년 동안이나 활동을 접게 되었다. 숙박업소에 있는 레스토랑의 일을 직접 도와야 했기 때문이다. 결혼을 접고 다시 활동을 재개하게 된 나이는 삼십구세로, 재능 하나로 새로이 시작하기에는 늦은 나이였지만 그녀는 다시 붓을 손에 잡았다.

테르부쉬의 활동이 본격적으로 재개된 것은 사십세가 되던 해 슈투트가르트에 있는 공작으로부터 주문을 받기 시작하면서부터였다. 뛰어남과 성실함으로 그녀는 곧바로 슈투트가르트 아카데미의 명예회원이 되었고, 이후 독일 지역(당시 프러시아)에서 활동을 계속하다가 파리에 잠시 정착하게 된다. 프랑스의 여러 화가들은 그녀의 그림에 매료되었고, 프랑스 왕립아카데미의 전시에 그녀의 그림이 포함되었을 뿐 아니라 아카데미의 회원이 되었다. 그러나 별로 아름답지 않은 외국 여성화가와 그녀의 작품에 대한 폄하는 도를 지나치고 있었다. 디드로(Denis Diderot)는 테르부쉬가 재능이 부족하다는 것에 더하여, “젊음과 아름다움, 단정함, 그리고 애교가 결여되었다”라고 평했다.

프랑스 사교계에서 이름을 얻어 그림을 수주받아야 했던 당시에, 테르부쉬는 이러한 평가들 때문에 파리에서는 더 이상 성장할 수 없다는 판단을 했던 것 같다. 그녀는 해외체류생활에서 얻은 빚만을 안고 다시 베를린으로 돌아왔다. 다시 고국으로 돌아와서는 프러시아 왕가의 초상화가로 활동하며 명성을 얻었지만 61세의 나이로 삶을 마감했다.

몇 점 남겨진 그녀의 자화상 가운데 외알안경을 쓴 자화상이 가장 마지막으로 그린 작품이다. 어느 정도 화가로서의 안정을 찾은 그녀의 모습은 평온해 보인다. 한쪽 눈에 외알 돋보기를 걸치고 몸을 숙여 책을 보다가 잠시 눈을 돌린 것처럼 보이는 그녀의 자화상은 ‘안경을 쓴 여자’로 자신을 그렸다는 점에서 대단히 놀랍다. 테르부쉬에 대한 여러 사료들에서는 그녀가 독서광이고 대단히 지적인 인물이었다는 점이 빼놓지 않고 기술되고 있다. 이 포즈가 단지 그림의 구도를 위한 것이 아니라 안정되게 책을 읽는 모습이라는 것은 그녀의 한쪽 발이 자연스럽게 걸쳐져 있는 발받침에서도 드러나고 있다. 여성의 초상이 안경과 더불어 그려지는 일은 거의 없으며, 안경은 예나 지금이나 자신의 제대로 된 용모를 드러내기 위해서는 방해가 되는 물건으로 여겨진다.

그러나 테르부쉬는 실제의 자신, 나이가 들어 돋보기를 걸치고 책을 읽는 자신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고 있다. 그녀에게 젊음과 아름다움이 부족하다는 디드로의 부박한 언사를 이 그림 앞에서 다시 떠올리게 된다. 여성의 아름다움, 인간의 아름다움이 이목구비에서 나오는 것이라면 그런 아름다움이야말로 부질없는 것이 아닌가. 오히려 부질없는 아름다움을 극복한 나이든 여성 화가들의 자화상을 바라보며 그들의 작품과 삶에 존경을 표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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