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방주 수필가

[충청매일] 진동문 가까이에 동암문이 있다. 생각 없이 걸으면 그냥 지나칠 수도 있다. 암문이라 숨어 있다. 서남암문이 것대산 봉수대로 간다면, 동암문은 구라산성으로 통할 것 같다. 동암문으로 살그머니 빠져나가 한남금북정맥 등마루를 밟으면 이티재를 만나고 30분만 올라가면 구라산성이다. 동암문은 서남암문과 달리 안에서 보면 내옹성처럼 진입로가 직각으로 구부러졌다. 그러나 밖에서 보면 치성도 없다.

동암문을 지나 진동문으로 내려가는 길에 뚜렷한 토축 내벽을 발견할 수 있다. 외벽은 돌로 튼튼하게 쌓고 내벽은 흙으로 비스듬하게 쌓았는데 분명 성벽이다. 여기에 소나무가 멋지게 자라고 있다. 이쯤에서 최근에 복원한 진동문의 위용이 보인다.

보화루는 동장대이다. 말하자면 지휘소이다. 서쪽에서 적이 온다는 것을 가정하면 동장대는 매우 안전한 곳이다. 장수가 적진을 바로 보고 작전을 세우고 명령을 내릴 만한 위치는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서쪽 날망에 서장대지가 있다. 평화시에는 먹고 마시기 좋은 위치이다. 전시에도 장수들이 모여 작전회의를 하기도 편리한 위치이다.

동장대에서 되돌아보면 상당산성은 참으로 기묘하다. 포곡식 산성이라고 하지만 뚜렷하게 정상이라고 할 만큼 높지 않은 상당산과 함께 산줄기 자체가 크게 원을 그려 하나의 포곡식 산성이다. 산의 형국이 이마에 머리띠를 두른 것처럼 골짜기를 감싸 안은 테뫼식 산성처럼 보인다. 한국전쟁 때 알려진 강원도 양구군 해안면 펀치볼(Punch Bowl)과 비슷하다. 산당산성은 작은 펀치볼이다.

동장대에서 내려와 발굴조사를 하는 연못 아래에 가 보았다. 성석을 찾아 정연하게 쌓아 놓았다. 다듬은 돌도 있고 자연석 그대로도 있다. 궁금한 것은 연못의 둑에 해당되는 부분에 성벽이 있었을까, 그냥 댐처럼 둑만 있었을까 하는 것이다. 지금 형태로 보면 그냥 둑만 있었는데 둑을 성벽처럼 쌓았을 것이라 추정한다.

마을 안에는 민가도 있고 관아도 있고 남쪽 기슭에 사찰 3곳이 있었다고 한다. 관아는 청주병마우후가 거처하는 곳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대대적으로 토속음식점을 지으면서 관아를 짓지 않았을까 궁금하다. 사찰도 복원하면 안 될까? 백제의 산성을 답사하면서 느낀 것은 천오백년 고성(古城)이 있으면 천오백년 고찰(古刹)이 있었다.

상당산성의 특징은 우선 보민 산성의 원형이면서 청주읍성, 당산토성, 와암산토성과 연결되어 하나의 나성구조를 이루었다는 점이다. 청주읍성의 충실한 배후 산성이다. 둘째는 산성의 양식을 제대로 갖춘 훌륭한 건축예술이다. 안으로 관아와 사찰, 연못 등이 있고 성에도 치성, 내옹성, 문지, 암문, 수구, 포루를 모두 갖추고 정상에 치소까지 있다. 또 평화시에는 군사들의 훈련을 할 수 있는 충분한 터전이 되고 승병들이 수도와 수련을 할 수 있도록 사찰이 3개나 있었다는 점이다. 과거에는 적으로부터 백성의 생명을 보호하는 보민이었다면 현대는 시민의 몸과 마음을 지켜 치유하는 참살이의 쉼터이다. 다만 찾아오는 이들이 역사와 문화에도 관심을 가지면 한결 선진적인 참살이가 될 것이라는 생각이다. 다시 공남문으로 나왔다. 잔디밭에 매월당 김시습의 시비가 있다. ‘유산성(遊山城)’이라 한 것을 보면 자연을 아는 매월당이니 그냥 놀기만 한 것이 아니라 깨닫고 느낀 것이 많은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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