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책테라피 강사

[충청매일] 아름다운 것일수록 인간의 가장 추악한 욕심에 쉽사리 동원된다. 추악함을 상쇄할 외양으로 본질을 가릴 수 있기 때문일까.  

일본어로 ‘사쿠라’라고 부르는 꽃은 한 때 제국주의 침략을 떠올리게 했다. 일본의 국화(國花)이며 그네들 민족성을 상징한다고, 그들이 우리 땅을 점령한 동안 여기저기 많이도 심었다고. 그래서 캐내버려야 한다고도 하고, 그럴 무렵에 그 꽃나무를 마음 놓고 좋아하자면 배알도 없다는 죄책감을 일으키는 무엇이기도 했다. 알고 보면 벚나무는 우리가 원조라고, 이 땅에서 일본으로 건너갔다는 말이 그 뒤에 나오면서 벚꽃은 순전히 꽃이 되었다고 할지. 

다바타 세이이치의 그림책 ‘사쿠라’는 일본이 벚꽃을 어떻게 일본에서 애국의 상징으로 내세웠는지를 이야기한다. 침략전쟁을 미화하면서 애국심을 조장하고 전쟁참여를 독려하는 수단으로 사용해서 많은 이들의 삶과 가족을 잔혹하게 파괴하는 이야기를 그려내고 있다. 침략의 광기에 싸여 그럴듯한 명분을 내걸고는 죽이고 죽는 일을 예사로 하도록 잔혹한 전쟁에 여린 꽃잎을 상징으로 사용하는 허탈하기까지 하게 교활한 그 일을 일본이 했다.

‘나’의 이야기에 ‘사쿠라’는 늘 등장한다. 사쿠라가 피는 삼월, 눈부시게 아름다운 아침 ‘나’는 세상에 나온다. 온 가족이 축하해 주고, 그해 구월에는 중국과 전쟁이 시작된다. ‘나’는 그것이 침략전쟁인 줄 모르고 훨씬 전부터 조선이라는 이웃 나라를 식민지로 만들어 반대하는 사람들을 학대하고 죽이기도 했다는 것도 모른다. 소학교 1학년 되던 해도 운동장에는 사쿠라 꽃이 가득했고 모자와 뱃지에도 사쿠라 꽃이 있었다. 국어 시간 첫 장 역시 ‘피었다 피었다 사쿠라가 피었다.’이고 그 다음 장은 ‘앞으로 앞으로 우리 군대 앞으로’이다. 동네 이발사 아저씨가 빨간 엽서를 받고 전쟁터로 떠나고 학생들은 만세를 외친다. 선생님도, 라디오도, 책도, 신문도 온통 성전(聖戰)만세를 외친다. ‘나’는 마음도 몸도 군국소년으로 길러지고 진심으로 나라를 위해 죽으리라 결심한다.

봄이 되어 벚꽃이 피면 꽃놀이하는 사람은 사라지고 사쿠라는 군가가 되어 거리에 넘친다. 사쿠라 처럼 아름답게 지고, 또 지고, 나라를 위해 죽어라, 죽어라 한다. 사쿠라는 전쟁을 미화시키는 온갖 수단이 된다. 얼마 뒤 미국 비행기에 마을도 공장도 사쿠라도 날아간다. 전쟁이 끝나던 해 아버지는 강제노동에 약도 쓰지 못하고 죽고, 어머니의 통곡소리가 밤새 나를 울린다.
숨막히는 가난이 일곱 명의 대가족을 덮치고 엄마는 아버지를 원망하며 운다. 일본, 아시아, 세계의 좀 더 오래 행복하게 살고 싶었던 수많은 사람들은 원혼이 되어 시커먼 하늘에 떠돌고 가족들의 슬픔이 눈물이 되어 쏟아진다. “전쟁이란 도대체 뭐지?” 마침내 ‘나’는 전쟁을 의심하기 시작한다. 65년이란 세월이 흐르고 난 뒤에 공원의 사쿠라는 나에게 말을 건넨다.

“젊은이들을 꽃에 비유해 죽음으로 몰아넣어 젊은이들이 죽으며 남긴 것은 원망과 슬픔 뿐이었네. 전쟁은 있어서는 안 돼! 전쟁만은 절대로 안돼!”

사쿠라 꽃잎이 아기가 곱게 잠들어 있는 유모차 위로 떨어진다. 꽃과 아이는 아무 죄가 없다. 아기는 꽃을 아름다운 것으로만 그렇게 알면서 자라야 한다. 전쟁은 미친 짓이다. 우리 역사도 민족끼리 한 전쟁의 참혹함을 아직도 겪는 중이다. 이산가족이라는 신산한 이름으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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