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9장 질병과 늙음 (2) 수잔 발라동의 늙은 자화상
르누아르 ‘머리를 땋는 소녀’의 모델이자 화가인 수잔 발라동
자신의 첫 ‘자화상’서 날카로운 눈매·각지고 뾰족한 얼굴 묘사
그녀의 삶과 그림, 도덕의 장벽과 미술 전통 문법 깨뜨린 파격
1931년 作 ‘자화상’ 66세 자신의 가슴 드러낸 반신 누드 눈길
늙어가는 모습 미화시키지 않고 솔직하고 정직하게 그려내

왼쪽부터 르누아르 ‘머리를 땋는 소녀’ 1886~1887, 수잔 발라동 ‘자화상’, 1883, 수잔 발라동 ‘자화상’ 1931.
왼쪽부터 르누아르 ‘머리를 땋는 소녀’ 1886~1887, 수잔 발라동 ‘자화상’, 1883, 수잔 발라동 ‘자화상’ 1931.

[이윤희 수원시립미술관 학예과장]역대로 그림 속에 등장하는 여성 인물상들은 대체로 젊은 여성들이다. 여성 신상들이건 종교적 의미를 담은 여성들이건 역사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이건, 여성의 노년이 상징적 ‘추악함’ 이외의 의미를 담지 않고 등장하는 경우는 손에 꼽아볼 정도로 많지 않다. 물론 렘브란트의 노모(老母)를 대상으로 한 그림처럼, 화가에게 의미가 있는 인물을 있는 그대로 그린 초상의 경우는 예외적이라 볼 수 있고, 여성 화가들의 자화상들에서 자신이 늙어가는 모습을 있는 그대로 묘사한 그림들도 있지만 길고 긴 미술사에서 당대를 휩쓸었던 작품들 가운데 늙은 여성은 쉽게 발견하기 어렵다.

여성 화가들의 자화상은 그 자체로 연구 대상이다. 남성이 바라보고 그리는 대상으로서의 여성을 주로 보았던 여성화가가 여성인 자신의 모습을 그리고자 할 때, 남성이 마련한 이미지의 문법으로부터 벗어나는 것이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많은 여성 화가들의 자화상이 남성 화가의 앞에 선 모델처럼 자신을 그리는 딜레마에 봉착하는 경우가 많았다.

이 대목에서 여성화가 수잔 발라동(Suzanne Valadon)의 자화상을 살펴보고자 하는 것은, 발라동이 실제 남성 화가들이 모델로 일을 했다가 화가가 된 흔치 않은 경우이기 때문이다. 수잔 발라동이라는 화가의 이름이 낯설어도, 르누아르(Pierre-Auguste Renoir)의 그림 속에서 쉽게 발견할 수 있는 그녀의 모습을 보면, 단박에 이 여성의 얼굴을 친숙하게 구분해낼 수 있을 것이다. ‘부디발에서의 춤’을 비롯해 각종 무도회에서 즐겁게 춤을 추고 있는 키가 작은 미모의 여성이 바로 수잔 발라동이다.

르누아르의 ‘머리를 땋는 소녀’는 수잔 발라동의 모습을 비교적 자세하게 초상으로 그려내고 있는 경우이다. 윤기 나는 긴 갈색 머리칼을 땋고 있는 풍만하고 아름다운 여성, 생각에 잠긴 듯이 눈을 아래로 향하고 있고 발그레한 볼과 붉은 입술을 가진 이 여성이 바로 이후 화가로 자신의 이름을 남긴 수잔 발라동인 것이다.

수잔 발라동은 가난한 미혼모의 딸로 태어나 세탁부였던 어머니를 따라 파리로 이주한 후 여러 가지 직업을 전전하게 된다. 주로 각종 허드렛일을 하다가 서커스단에 입단하게 되어 그곳에서 재능을 발휘하게 됐지만, 다리를 다치게 되어 서커스일을 더 이상 계속하지 못하게 되고 만다. 그 이후 화가들의 눈에 띄어 모델 일을 전업으로 하게 되는 인생의 전기를 맞게 된다. 퓌비 드 샤반느(Pierre Puvis de Chavannes)의 그림 속에, 툴루즈-로트렉(Henri de Toulouse-Lautrec)의 그림 속에, 그리고 르누아르의 그림 속에 수잔 발라동은 모델로서 등장하게 되고, 어깨 너머로 화가들이 그림을 그리는 방법을 배우게 된다.

그 사이에 18세의 나이로 수잔 발라동은 미혼모로 아이를 낳게 되었고, 그녀가 결코 아버지가 누군지를 공개하지 않았던 그 아이는 나중에 화가로 성장한 모리스 위트릴로(Maurice Utrillo)이다. 모리스 위트릴로를 낳은 1883년에 수잔 발라동은 자신의 첫 ‘자화상’을 남겼다. 이 작품은 앞서 보았던 르누아르의 ‘머리를 땋는 소녀’보다 3~4년 전에 그려진 것이다. 이때만 하더라도 수잔 발라동은 자신이 화가로 크게 성공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전혀 하지 못했을 것이다.

몇 년의 간격이 있는 그림이지만 르누아르의 그림 속에 등장하는 모델로서의 수잔 발라동과 스스로를 바라보는 모습은 전혀 다르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르누아르의 그림 속에 등장하는 소녀는 순진무구한 아름다움 그 자체를 보여주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거울에 자신을 비추어보며 그린 수잔 발라동의 자화상은 눈매가 날카롭고 창백하며 할 말이 많은 얼굴이다. 동그랗고 귀여운 르누아르의 소녀와는 달리 자신의 얼굴을 각지고 뾰족하게 묘사하고 있으며, 입을 꽉 다문 나머지 턱에 주름이 보일 정도이다.

물론 르누아르는 여성들을 아름답게 묘사하기로 유명한 화가이다. 여성의 아름다운 피부 결을 묘사하기 위해 흰 장미의 표면을 관찰하고, 자신은 ‘성기로 그림을 그린다’라고 말할 정도로 남성 화가가 바라본 여성의 매력을 더 아름답게 과장하여 그리기도 했다. 아마도 르누아르는 수잔 발라동의 모습 속에서 화가들 앞에 서서 모델 일을 하는 고단함이나 어린 나이에 아버지를 밝힐 수 없는 미혼모가 되어버린 고난 같은 것은 지워버리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늘 즐겁고 산뜻한 모습으로 르누아르의 그림 속에 등장했던 수잔 발라동의 자아상(自我像)은 르누아르의 그림과는 달리 매섭고 비장하다. 그래서 르누아르의 속 모델로서의 그녀와 수잔 발라동자화상은 전혀 다른 사람으로 보일 정도이다.

그림의 모델을 서는 일은 긴 시간을 필요로 하는 것이었을 것이다. 수잔 발라동은 여러 화가들의 그림을 그리는 모습에서, 팔레트 위에 색채를 구성하는 방법에서, 붓질을 하는 방법에서 화가들마다 다른 테크닉을 배우게 되었고, 그녀가 그린 그림을 본 화가들은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툴루즈-로트렉은 그녀를 드가(Edgar Degas)에게 소개했고, 드가는 그 자리에서 그녀의 드로잉을 구매했다. 드가는 수잔 발라동의 그림을 처음으로 구매한 사람이면서 그녀가 자기 확신을 가지고 계속 그림을 그리며 정진할 수 있게 도와준 후원자가 됐다. 남성으로서 여성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고 알려진 드가는 여성화가들의 능력을 알아보고 지원하는 데는 늘 앞장서는 특이한 인물이었다. 드가는 그녀의 작품을 당대의 명망 있는 미술평론가들에게 소개했을 뿐 아니라, 1894년에는 프랑스의 국립예술원인 보자르(Societe Nationale des Beaux-Arts)의 전시에 그녀의 그림을 추천하여 프랑스의 대표적인 화가들과 함께 전시하는 영예를 누렸다. 여성 화가가 이 전시에 참여하는 것은 최초의 일이었다.

수잔 발라동이 화가로서 명성을 쌓아가는 일과는 별개로 그녀의 인생은 또 다른 파격 그 자체였다. 귀족 출신도, 재산이 있는 명망가 출신도 아닌, 화가 앞에서 옷을 벗는 모델 출신이었고, 당시만 해도 모델은 화가들과 잠자리까지 하는 천한 직업으로 여겨졌으며, 그러한 소문을 증명이라도 하듯이 미혼모가 되어 버린 수잔 발라동은, 이후 성장한 아들 위트릴로의 친구를 애인으로 삼고 결혼까지 하였다. 21세 연하 남성과의 결혼, 게다가 아들의 친구와 결혼하여 아들과 더불어 세 식구가 함께 살아가는 그녀의 삶은 백년 후인 지금에 와서도 놀라울 뿐이다.

수잔 발라동의 삶과 그림은 도덕의 장벽과 미술 전통의 문법을 깨뜨리며 파격에 파격을 더하였고, 그 끝에 볼 수 있는 작품이 1931년의 ‘자화상’이다. 66세의 반신 누드 자화상, 여기에 르누아르의 아름답던 소녀는 어디로 갔는가, 창백한 얼굴의 18세 자화상 속 소녀는 어디로 갔는가. 얼굴이 쳐지고 코도 펑퍼짐하게 보이며, 뒷목의 주름과 굵어진 목, 몸에 군살이 붙어 더 이상은 아름답다고 여겨지지 않는 이 나이든 화가는 왜 자신의 모습을 이렇게까지 직설적으로 남기고자 했을까.

수잔 발라동의 늙은 자화상에서 소녀 시절의 그녀와 동일하게 보이는 것은 푸르게 빛나는 눈빛이다. 많은 남성 화가들 앞에 누드로, 혹은 화가들이 요구하는 매력적인 포즈로 모델을 섰던 그녀는 그들이 자신에게 보고자 했던 모든 요소들을 깨뜨려 버렸고, 날카롭게 빛나는 눈빛 하나만을 살려놓았다. 어느 한 군데도 미화시키지 않은 모습으로, 오히려 늙어가는 자신의 모습을 똑바로 바라보고 정직하게 그려낸 누드의 자화상, 모델이자 화가로 살았던, 자신을 둘러싼 온갖 경계들을 깨부수면서 살아왔던 한 인간 여성의 형형한 눈빛 앞에서 남성과 여성을 떠나 인간의 아름다움이란 무엇인가 하는 근본적인 질문이 떠오를 수밖에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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