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매일] “어딜 말하는 거요?”

“저어기 건너 둔덕에 붉은 소나무 안 보이드래유. 거기 뭐가 어른거리는 걸 본 것 같구먼유”

길잡이가 가리키는 곳은 강수와 동몽회원들이 몸을 숨기고 있는 숲 건너편 언덕이었다. 거기에는 아주 오랜 묵은 붉은 노송이 하늘을 찌르며 서있었다. 길잡이는 그 언저리에서 사람을 본 것 같다고 말했다. 강수도 길잡이가 말하는 그곳을 유심히 살폈다. 나뭇가지들 때문에 확연하지는 않았지만 분명 뭔가 희끗희끗하게 움직이는 것이 보였다. 어디로 사라지지 않고 같은 장소에서 반복된 움직임을 계속해서 하는 것을 보니 짐승은 아니고 분명 사람 모습이었다.

“사람이 맞는 것 같소. 가봅시다!”

강수가 길잡이와 함께 동몽회원들을 끌고 노송을 향해 조심스럽게 접근했다. 노송이 가까워질수록 움직이던 물체는 사람이 분명해졌다. 그런데 한 사람이 아니라 여럿이었다. 그런데 그들은 비바람을 겨우 막을 수 있는 허술한 움막 주변을 어슬렁거리며 돌고 있었다. 강수 일행은 숨을 죽이며 움막 주변의 동태를 유심히 살폈다.

“대방, 저놈 부식이 놈입니다요.”

순라를 돌 듯 움막 주변을 돌던 어떤 녀석을 보고 동몽회원이 속삭였다.

“나도 봤다.”

강수도 부식이란 놈을 본 모양이었다.

“대방, 부식이가 저기 있는 것을 보니 청풍도가 놈들이 맞구먼유.”

부식이는 청풍도가 무뢰배들의 부두목 격이었다. 이미 한참 전 일이 되었지만 도식이를 왕초 삼아 청풍도가 김주태가 던져주는 낙전을 주워 먹으며 무뢰배 짓을 하고 돌아다닐 때 같이 행패를 부리며 살던 놈이었다. 도식이가 최풍원과의 싸움에서 무참하게 깨진 다음 최풍원의 호탕함에 반해 휘하로 들어갈 때 부식이는 반발을 하고 청풍도가 김주태 밑에 남아있었던 놈이었다. 부식이는 지금도 김주태 밑에서 온갖 지저분한 일을 도맡으며 청풍도가 무뢰배의 왕초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놈이었다. 그런 부식이가 있는 것을 보니 청풍도가 놈들이 확실했다. 게다가 왕초인 도식이를 영월까지 그것도 동강 깊숙한 한 도도고지 산중까지 보낸 것을 보니 북진여각에서 생각한 것보다도 훨씬 더 큰 음모를 꾸미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부식이가 왔다면 휘하 졸개들도 만만치 않게 따라 왔겠지유? 우리는 대여섯도 안 되는데…….”

아까는 당장이라도 쳐들어가 박살을 내자고 방방 뜨던 놈이 부식이를 보고는 개 꼬랑지 감추듯 주눅이 들었다.

“대방, 어떻게 하지유?”

다른 녀석들도 겁을 먹고 강수의 입만 쳐다보았다.

“저놈들도 그렇지만, 움막 안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그 사정이 더 궁금하다. 그러니 그것부터 알아봐야겠다.”

“저놈들이 저렇게 순라를 돌고 있는데, 무슨 수로 움막 안 일을 알아낼 수 있단 말이유?”

대방인 강수가 말도 되지 않는 소리를 한다며 동몽회 녀석이 펄쩍 뛰었다.

“여기서 해가 넘어가기를 기다렸다가 어두워지면 아무래도 저놈들도 느슨해지지 않겠느냐? 그러거든 저 놈들 눈을 피해 움막으로 숨어들어가 움막 안 사람들 얘기를 염탐해보도록 하자.”

“그러다 들통 나면 어쩌시려고 그러시우?”

“그러면 네 말대로 싸우면 되지 않겠냐?”

“중과부적이유. 도가 놈들과 움막 안 사람들에게 들키면 빼도 못 추릴거유.”

“밤이고 움막 안은 어두워 서로 얼굴을 알아보기도 힘들고, 슬쩍 숨어들어 그들 사이에 끼어 있다가 그들 하는 얘기만 듣고 빠져나오면 될 텐데 뭐가 두려워 그러느냐?”

강수가 녀석을 슬슬 놀렸다.

“난, 가슴이 참새만해서 그런 짓은 못합니다. 차라리 붙어 싸우는 게 더 맘이 편하겄습니다유.”

녀석이 꽁무니를 잔뜩 뺐다.

“저 안에 우리 동네에서 온 사람들도 많이 있을 것이데, 그이들을 볼 수만 있다면 저 안 사정 알아보는 건 일도 아닐 텐데…….”

길잡이도 움막 쪽을 바라보며 나직하게 중얼거렸다. 모두들 뾰족한 방법이 없으니 바라는 속내만 비칠 뿐이었다.

“일단 어두워지기를 기다려 봅시다. 그러면 훤한 대낮보다는 뭔 방법이 생겨도 지금보다야 낫겠지요.”

달리 방법이 있을 리 없자 모두들 강수 말에 따라 어두워지는 밤까지 기다려보기로 했다. 오뉴월 해가 길다고 해도 마냥 길지는 않았다. 산중에는 해가 일찍 떨어지는 법이었다. 더구나 높은 봉우리들이 병풍처럼 둘러싼 막골은 산그림자가 드리워져 저녁 어스름처럼 어둑어둑하게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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