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매일] 길잡이가 수풀을 뚫으며 앞장서 걸어갔다. 한동안 숲을 헤치고 나아가자 눈앞에 촛대처럼 솟은 봉우리가 나타났다. 우뚝 솟은 촛대봉과 벽을 이루며 수십 길 절벽이 가로막혀 더 이상 앞으로 갈수 없는 막다른 곳이었다.

“잘 안다니 어떻게 된 거유?”

“아무것도 없잖슈! 잘못 온 것 아니유?”

동몽회원들이 길잡이를 질책했다.

길잡이는 대꾸도 하지 않고 촛대봉을 향해 걸어갔다. 잠시 절벽 앞에서 머뭇거리던 길잡이가 순간 일행들의 눈앞에서 사라졌다. 바로 앞에서 벌어진 일에 모두들 당황하며 우왕좌왕했다. 혹시라도 헛것을 본 게 아닌가 싶어 눈을 까뒤집으며 앞을 살펴봐도 길잡이는 바위 속으로 사라지고 없었다. 강수와 동몽회원들이 길잡이가 사라진 촛대바위 앞으로 다가갔다.

“저기 있다!”

눈앞에 버티고 서있는 촛대바위를 오른쪽으로 돌자 절벽과 절벽 사이로 뻥 뚫린 석문이 나타났다. 석문은 암릉을 따라 통천문처럼 하늘을 향해 비스듬하게 뚫어져 있었다. 길잡이는 암릉 위 아가리처럼 벌어진 굴 입구에 서있었다. 모두들 길잡이가 서있는 곳을 향해 바위를 기어올랐다.

“야아! 이런 곳이 이런 곳이 숨어 있네!”

“이런 곳에 숨으면 귀신도 못 찾겄네!”

“누가 이런 곳에 이런 곳이 숨어 있을 거라 생각이나 했겠냐?”

굴 입구에 서서 안쪽을 바라보던 강수와 동몽회원들이 눈앞에 펼쳐진 광경에 감탄만 자아냈다.

“저가 막골이래유!”

길잡이가 말했다.

막골은 그 이름처럼 막다른 곳이었다. 막골로 들어가는 입구도 촛대봉이 가로막혀 있고 촛대봉을 돌아선다 해도 암릉 중간쯤에 석문처럼 입구가 뚫려있어 초행자는 보고도 그곳이 입구인지 알 수 없었다. 입구인 석문을 들어서자 막골이 한눈에 보였다. 사방은 높고 낮은 봉우리들로 둘러쳐져 있고 안쪽은 분지처럼 오망하게 평지를 이루고 있었다. 마치 물이 빠져 말라버린 늪지대처럼 보였다. 그곳에 수목들이 울창하게 우거져 있었다.

“아주 옛날 난리 때는 수십 호 사람들이 숨어 살던 피난곳이래유.”

피난곳이라는 길잡이 말이 아니더라도 이런 곳에 숨으면 아무도 찾지 못할 것 같았다.

“형씨, 뗏꾼들은 어디 있는 것이오?”

“저 숲 어딘가에 있지 않겠드래유?”

강수의 물음에 길잡이가 되물었다.

“저 안 어딘가에는 분명 있을 테니, 돌아다니다 보면 들킬 수도 있으니 어두워질 때까지 여기 숨어서 동태를 살피도록 하자.”

강수가 동몽회원들에게 일렀다.

“대방, 그놈들 은거지를 발견하면 쳐들어가 때려 부술 건가유?”

동몽회원 중에서 한 녀석이 물었다.

“사정을 알아봐야겠지만 청풍도가 놈들과 동강 일대 뗏꾼들이 모여 있다면 우리보다 훨씬 많은 놈들이 있지 않겠느냐? 그러니 일단 그놈들 은거지를 알아내고 동태부터 살펴보자구나.”

“뭘 그리 겁을 내슈! 이렇게 숨어서 동태를 살핀다고 뭘 알아낼 수 있겠슈? 확 쳐들어가서 절단을 냅시다!”

동몽회 젊은 녀석이 당장이라도 찾아서 요절을 내자며 울근불근했다.

“그렇게 앞뒤 재지 않고 힘만 쓴다고 되는 일이 아니다. 지금 내가 무슨 일을 하려고 그러는지, 그리고 어떻게 행동하는 것이 일을 해결하는데 득이 될 것인지 곰곰이 생각하고 힘을 쓰든지 어쩌든지 해야 할 것 아니냐? 짐승도 사냥을 할 때는 여러 여건을 봐가며 공격을 하는데 네 놈은 어찌 사람이라는 것이 힘부터 쓸 생각을 하느냐. 싸우지 않고도 문제를 해결할 수 있거나 이길 수 있다면 그게 고수니라. 미련한 놈!”

강수가 동몽회 젊은 녀석에게 핀잔을 주며 주저앉혔다.

“그럼, 이렇게 계속 숨어서 동태만 살필 건가유?”

이번에는 다른 녀석이 강수의 의도를 물었다.

“일단 날이 어둑어둑해지며 놈들의 은거지를 찾고, 그 다음에는 은거지 주변에 숨어 놈들의 사정을 살펴보고 그 다음 어찌 할 것인 지를 상의하자!”

“맞아죽더라도 붙어서 끝장을 봐야지 이렇게 언제까지 숨어서 동태나 살핀단 말이유!”

강수의 핀잔에도 동몽회 녀석들은 숨어서 바깥 동정을 살피는 것이 못마땅했다.

산중의 산중인지라 막골은 고요하기 그지없었다. 새소리는 고사하고 바람 스쳐 지나가는 소리도 나지 않았다. 세상에서 막골만 홀로 동떨어져 있는 듯 조용했다. 모든 게 정지한 듯 어떤 움직임도 없었다.

“저기 아름드리 소나무 보이드래유?”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길잡이가 강수를 건드리며 소근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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