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매일] 여울을 건너 하미굴이 있다는 강가 절벽 아래 강수 일행이 도착했다. 급살물에 떠내려가지 않으려고 서로 부둥켜안고 용을 쓴 까닭에 무사히 강을 건너기는 했지만 모두들 진이 빠져 바지는 뒷전이고 맨몸 그대로 털썩 모래바닥에 주저앉았다. 벌건 대낮에 시커먼 사내놈들이 알몸으로 모래밭에 널부러져 있는데도 워낙에 깊은 산중인데다 주변 경관이 압도하니 하나도 흉하지 않았다. 산과 물과 사람이 그저 하나로 어우러져 그게 그것처럼 보일 뿐이었다.

“형씨, 이제부턴 어떻게 해야 하오?”

“산으로 들어가야지유. 산판을 벌인다고 하니 나무야 날망에서 베더라도 자고 먹는 움막은 산 아래 골탱이에 있지 않겠드래유. 아마도 도도고지산과 떡갈고댕이산 사이 어디쯤 있을 성 싶구먼유. 그러니 저기 골을 타고 일단 들어가 보드래유. 시방부턴 너무 떠들지 말드래유. 저 눔들이 알아채면 수포가 되지 않겠드래유?”

“얘들아, 지금부터는 주변을 살펴가며 각별히 조심해서 가야한다!”

강수가 길라잡이 당부 말을 듣고 동몽회원들을 단속시켰다.

“이런 깊은 골에 누가 듣는다구 괭이마냥 간다우?”

강수 말에 동몽회원 하나가 비웃듯 지꺼렸다.

“산중에서는 토끼 재채기도 십리를 간대유! 까불다 동티나는 것보다 조심해서 탈 날 거 없지 않겠드래유?”

길잡이도 긴장이 되는지 까불거리는 동몽회원을 향해 지청구를 주었다.

“그 양반, 말은 느릿느릿해도 할 말은 다 하는구먼.”

머쓱해진 동몽회원이 뒷통수를 긁적거렸다.

산으로 들수록 우거진 숲 때문에 한 치 앞도 분간하기 어려웠다. 그런대로 순하다는 골짜기를 타고 오르는데도 비탈이 심해 코가 땅에 닿을 듯 했다. 사람 몸 하나 건사하기도 힘든 이런 곳에서 산판을 한다는 자체가 이해할 수 없었다. 아무리 산판이 험지에서 벌어지는 일이라 해도 궁댕이 하나 붙일 평평한 곳은 있어야 벌채한 나무를 모으고 동발꾼들이 짝을 맞춰 강가까지 옮길 터였다. 그런데 지금 가고 있는 골짜기는 삼짐승도 다니기 힘들 정도로 거칠었다.

“형씨, 이 넓은 산을 다 뒤질 수는 없지 않겠소. 어딘지는 대충 알고나 가는 것이오?”

강수가 점점 깊어지고 거칠어지는 길이 불안해 물었다.

“걱정 말드래유. 낸들 이 넓은 산중 어디에서 산판이 벌어지고 있는지 우째 알겠슈. 우리 마을에서도 여럿 떼쟁이들이 이 산으로 갔는데 그들이 어디로 갈 거라는 위치를 대충 이야기했으니 그걸 감 잡아 가는 것이래유.”

“그럼 지금 가는 길이 확실한 것도 아니잖소?”

길잡이 이야기를 들은 강수는 더욱 불안해졌다.

“그렇긴 하지만 산에서 산을 뜯어먹으며 살아가는 사람들은 감이라는 게 있드래유. 무당이 신장대도 없이 굿을 벌이드래유?”

강수와는 달리 길잡이는 느긋했다.

한동안 코가 땅바닥에 닿도록 기어올라 비탈길을 올라서자 눈앞이 좀 터졌다. 거기에는 서너 두락 쯤 되는 시커먼 공지가 나타났다.

“화전이구먼유!”

길잡이가 말했다.

“이런 깊은 산중에서 뭘 먹고 산답디까?”

“살라면 뭐라도 먹겠지유? 오죽하면 이런 데까지 숨어들어와 살겠슈?”

“하기야 이런데 살면 부자 놈들이나 관아 놈들 갈굼은 없겠습니다.”

“그러지요. 그놈들 등쌀이 어지간 하드래유? 여까지 쫓겨 들어왔을 때는 죽을 지경까지 갔지 않겠드래유?”

“어딜 가나 산지사방 떠돌이들이고, 편한 사람 하나 찾기 힘들군요.”

“그런 떠돌이 화전민들이 하 많으니 산지가 남아나지 않는다고 영월관아에서 화전 금지를 시켜 이것도 몰래몰래 도둑질 농사를 지어먹고는 또 다른 곳으로 떠버린다는구려.”

“화전도 뱃속 편한 일은 아니군요,”

“세상에 포스라운 일이 어디 있드래유. 더군다나 못 사는 사람들은 어딜 가나 몸뚱이에 힘 남아있으면 꿈적거려야 목숨이라도 잇지 그러지 못해 드러누우면 그날로 황천길에 드는 거 아니드래유?”

말은 어눌하게 하면서도 길잡이 말 속에는 뼈가 잔뜩 들어있었다.

강수와 길잡이가 시절 이야기를 하다 보니 등성이에서 보이던 화전에 다다랐다. 불이 꺼진지 얼마 되지 않았는지 화전에서는 잡목 탄 숯가지와 검불 탄 재가 풀풀 날아다녔다. 멀리에서 보던 것과 달리 가까이에서 화전을 보니 훨씬 을씨년스럽게 보였다. 화전에는 땅인지 사람인지 구분도 어려운 농군이 재를 잔뜩 뒤집어 쓴 채 일을 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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