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매일] 밤이 늦도록 영월 맏밭나루 임방 사랑에서는 심봉수·성두봉·봉화수·강수가 청풍도가에서 벌이고 있는 일에 대해 어찌 대처할 것인지 숙의하고 있었다. 사랑뿐 아니라 임방 툇마루나 마당 들마루 여기저기에도 동몽회원들이 드르렁드르렁 코를 골며 깊은 잠에 빠져있었다.

“강수야, 너는 내일 길잡이를 따라 청풍도가에서 벌이고 있다는 도도고지산으로 가서 그놈들 동태를 염탐해 오거라. 그리고 가능하면 거기 있는 뗏꾼을 하나 붙잡아 그곳 사정을 족쳐 보거라!”

심봉수가 동몽회 대방 강수에게 날이 새면 산판으로 숨어들어가 할 일을 일러주었다.

“뗏꾼은 왜요?”

“뭔가 집히는 것이 있어 그런다.”

“성님 뭐가 집힌단 말이오?”

성두봉이가 물었다.

“거기가 정선 땅이기는 하지만 산판에서 일할 벌목꾼이나 동발꾼을 모으려면 여기 영월 땅도 들썩들썩 하지 않았겠는가?”

“그건 그렇지요, 거기서 일하려면 정선보다 영월서 일꾼을 구하는 게 수월하지요.”

“그러니까 하는 말일세. 영월에서 품팔이꾼들이 많이 팔려갔는가?”

“아니래유. 산판을 벌인다는 소문은 파다하게 돌았지만 팔려간 막일꾼은 없구먼유. 그 대신 뗏꾼들만 몽땅 모아 그리루 들어간 건 분명혀유.”

“그러니까 이상허지 않은가? 산판을 벌이는데 막일꾼은 사지 않고 왜 뗏목꾼들만 데리고 그리루 들어 갔는냐 이거지. 더구나 지금은 벌목을 하기도 힘든 여름 아닌가?”

“그렇긴 하지만 뭐가 집힌단 말이드래유?”

“청풍도가가 지금 산판을 벌일만한 형편도 안 되는데 산판을 벌인다 하고, 나무가 무성해져 벌목을 할 수도 없는 철에 벌목을 한다 하고, 산판을 벌이면서 벌목꾼이 아닌 뗏꾼들을 끌어 모아 산으로 들어갔다면 뭐가 이상하지 않은가?”

“듣고 보니 요상시럽구만유!”

“청풍도가에서 분명 뭔 모사를 꾸미고 있는 것이 분명 혀! 몰래 산판에 가서 그것부터 알아보는 게 순서일 듯 싶으이.”

“그럼 객주님, 나머지는 무얼 하지요?”

“일단 강수가 산판에 갔다 온 후에 할 일을 정하고, 우선은 성 객주네 임방에서 필요한 일을 하는 게 좋지 않겠는가?”

봉화수의 물음에 심 객주가 대답했다.

“강수야, 내가 함께 가지 않아도 되겠는가?”

“객주님 말씀대로 형님은 여기서 임방이나 돕고 계세요, 제가 날랜 몇 놈 데리고 가서 귀신도 모르게 해치오고 오겠습니다!”

“내 생각에도 그 일은 강수에게 맡기고, 화수 자네는 여기 성 객주 임방에서 필요한 일을 돕는 게 좋을 듯 싶으이.”

네 사람이 모여앉아 상의하는 사이에도 밤은 점점 깊어져만 갔다. 강수와 동몽회 몇이 길잡이를 따라 도도고지산으로 떠난 것은 이틀 뒤였다. 아무리 힘이 넘쳐흐르는 젊은 아이들이라 해도 장회나루를 떠나 영월로 올라오던 날 과하게 힘을 쏟아 무리했기 때문이었다.

“저기 보이드래유?”

식전부터 채비를 차려 성두봉 객주의 맏밭 임방을 떠났다. 모두들 하루를 푹 쉬어 그런지 발걸음이 가벼웠다. 강가 자갈밭을 걷는 발자국 소리가 경쾌했다. 맏밭나루를 떠난 지 얼마 되지 않아 남한강이 갈라졌다. 길잡이는 왼쪽이 평창에서 흘러오는 서강이라 했고, 오른쪽은 정선에서 흘러오는 동강이라 했다. 길잡이가 강수 일행들에게 손가락으로 강줄기 왼쪽을 가리켰다.

“어디요?”

“저어기 휘돌아 치는 강물에 둘러싸여 섬처럼 뽈쏙 튀어나와 있는 곳 말이래유. 좀만 더 올라가면 환하게 보일거래유.”

그러나 길잡이 눈에만 보일 뿐 강수 일행은 산과 하늘과 물만 보일 뿐이었다.

강가를 벗어나 봉래산 자락으로 들어서자 길잡이 말처럼 점차 두 줄기 강물이 확연하게 드러나며 멀리까지 강줄기가 한 눈에 들어왔다.

“저기유! 강물에 둘러싸여 뱀대가리처럼 뽈쏙 튀어나왔지유?”

그리고 길잡이가 다시 손짓을 했다.

강수 일행이 길잡이 손짓에 따라 발아래 펼쳐진 강줄기를 따라 서강 상류 쪽으로 눈길을 돌렸다. 길잡이의 손끝이 멈추자 과연 거기에는 뱀처럼 꿈틀대며 휘돌아 치는 강물에 휩싸여 대가리를 쳐든 듯한 섬이 보였다. 그러나 섬은 아니었다. 삼면은 깊은 강물로 둘러싸이고 한 면의 뒤는 큰 산이 벽처럼 막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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