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매일] “지가 종거치 부리던 뗏꾼들한테 손이 발이 되도록 빌고 꽁지가 빠지게 영춘에서 도망질을 쳤지!”

심봉수가 파리가 앞다리 빌 듯 시늉을 내며 말했다.

“지가 부리던 뗏꾼한테 그리 빌었단 말이드래유?”

성두봉이가 고소한 표정을 지으며 심 객주에게 물었다.

“어데? 그놈이 그걸 알면 가만히 있었겠는가. 캄캄한 밤에 방에 들어와 갈꼬챙이를 모가지에 들이대고 돈을 내놓으라하니 도적인줄 알았겠지.”

“그런데 그 정도 일로 김주태가 겁을 먹고 도망쳤다는 게 미껴지지가 않는구먼유?”

“그놈이 그리 겁을 먹었을 때는 밤새 얼마나 시달렸으면 그리 했겠는가?”

“하기야!”

성두봉도 그날 밤 김주태가 밤손님들에게 어떻게 당했을는지는 상상만 해도 알겠다는 듯 수긍을 했다.

산판에서 일하는 사람들이나 뗏꾼들이나 반쯤 목숨을 내놓고 하는 일이 그 일이었다. 그런 거친 일을 하다 보니 사람들 또한 억세어지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목숨을 내놓고 하는 그 일보다 더 무서운 것은 굶주림이었다. 더구나 죽도록 일을 하면서도 받을 돈을 제대로 받지 못해 가솔들이 배를 곯고 있다면 쳐죽여도 시원찮을 일이었다. 견디다 견디다 못해 남의 집을 넘었을 때는 여차하면 죽을 작정으로 김주태의 방을 침입했을 것이었다. 독이 바짝 오르고 악이 바친 그런 사람들에게 당했을 터이니 그날 밤 김주태가 당한 공포가 어떠했으리라는 것은 짐작만으로도 충분했다.

“그놈 그날 밤 저승 문턱을 숩시 넘나들었을 거구먼!”

“그러고도 김주태가 정을 못 다시고 또 일루 들어와 그 짓을 벌인단 말이드래유?”

성두봉이는 도통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이었다.

“그 놈이라고 그 일을 잊었겠는가. 그리고 지 놈 모가지 날아갈까봐 겁나지 않겠는가. 그런데도 여기로 들어와 그럴진대는 지금 엄청나게 다급하다는 게 아닐까?”

“그건 제가 객주님들께 말씀을 올리지요.”

두 사람의 대화 끝에 봉화수가 끼어들었다.

“화수, 뭐가 있는 게구먼!”

성두봉이 자세를 고쳐 봉화수 앞으로 당겨 앉으며 말했다.

“성 객주님, 실은 청풍도가가 엄청 곤경에 처해 있습니다. 한양에 공납해야 할 물산도 채우지 못하고 있고, 청풍관아에서 빼다가 고을민들한테 장리를 나먹던 관곡도 현감 이현로로부터 당장 채워놓으라고 독촉 받고 있습니다. 그래서 대행수께서도 이번 기회에 도가 김주태 날개를 꺾어놓으려고 여러 일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아직 우리 북진도중이 청풍도가와 맞잡이 하기에는 힘이 부족합니다. 그래서 겉으로 드러내지 않고 서서히 청풍도기 목을 조이다 기회가 왔을 때 아주 밟아버리려고 합니다. 우선은 표 나지 않게 해야 합니다. 그 중 하나가 청풍관아와 청풍도가의 관계에 흠집을 내는 것입니다. 청풍도가가 관아를 팔고 이용해 챙기는 돈이 실로 상당합니다. 그래서 한참 전부터 부사와 아전들에게 다리를 놓고 있고, 관아와 김주태가 짝짜꿍되어 주고받는 관계를 끊어버리려고 대행수께서 일전에 청풍부사를 만나 약을 쳐놨습니다. 이제 곧 좋은 소식이 올 것입니다. 그건 안에서 하는 일이고, 바깥에서는 우리 객주님들께서 임방을 잘 관리하여 외지 물산들이 청풍도가로 흘러들어가지 않도록 단단히 해주셔야 하겠습니다. 그렇게 되면 가뜩이나 어려운 처지에 안과 바깥에서 동시에 목줄을 조이니 청풍도가는 상당함 타격을 받을 것이 뻔합니다. 그래서 저와 동몽회원들이 각 임방들을 돌며 객주님들께서 이 일을 하는데 필요한 것들을 도와주고 있던 중입니다.”

“그러다 내가 여각에 기별한 것을 듣고 영월로 올라온 게로구먼.”

“성 객주님, 그렇습니다요. 그런데 김주태가 지금 도가 일만 해도 코가 석자일 텐데, 여까지 올라와 산판을 벌이는 건지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요. 혹시 여기 영월에 떠도는 얘기를 들은 것은 없습니까?”

“그놈이 아무 매가리 없이 여까지 올라오지는 않았을 터이고, 분명 뭔가 상당히 득이 될 일이 있으니 여까지 온 게 분명하구먼! 그러니 죽다 살아난 여길 또 올 생각을 하지 않았겠는가?”

심봉수가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뭔가 미심쩍은 표정을 지었다.

“그러고 보니 강물이 풀리고 한양에 갔다가 올라온 뗏꾼들이 하던 말을 들은 게 있드래유.”

심봉수 객주의 알쏭달쏭한 표정을 보면, 성 객주가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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