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의 눈으로 읽는 열 가지 미술 키워드]남성 노인과 여성 노인이 그려지는 방식의 차이
[여성의 눈으로 읽는 열 가지 미술 키워드]남성 노인과 여성 노인이 그려지는 방식의 차이
  • 충청매일
  • 승인 2020.05.17 16: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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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장 질병과 늙음 (1) 늙은 여성과 여성혐오
기를란다이요 ‘노인과 손자’ 손자를 보듬는 할아버지 모습
마치 피부병에 걸린 듯한 코, 추함 아닌 세월의 흔적 느껴져
소년이 노인 가슴에 얹어 놓은 손, 두사람의 친밀함 전해줘
쿠엔틴 마시스·알브레히트 뒤러 작품 속 등장한 노년 여성
과장된 머리 장식·베일에도 늙고 추한 모습 상쇄되지 않아
여성 노인, 아름다움에 대한 집착 버리지 못한 노파로 묘사
왼쪽부터 도메니코 기를란다이요 ‘노인과 손자’ 1490년경. 쿠엔틴 마시스 ‘늙은 여인’ 1513. 알브레히트 뒤러 ‘탐욕’ 1507.
왼쪽부터 도메니코 기를란다이요 ‘노인과 손자’ 1490년경. 쿠엔틴 마시스 ‘늙은 여인’ 1513. 알브레히트 뒤러 ‘탐욕’ 1507.

[이윤희 수원시립미술관 학예과장]남성이든 여성이든 인간은 나이가 들어가면서 젊을 때와 다른 몸과 마음을 가지게 된다. 팔다리를 비롯해 몸 전체가 예전처럼 활발하게 움직여지지 않는 체험과 더불어 집중력과 지구력도 떨어지고 젊은 날의 치기에 대한 후회가 마음을 사로잡는다. 성장이 멈추고 어느 순간부터 늙어가기 시작하여 더 이상 옛날 같은 몸과 마음이 돌아오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을 때, 바로 그때가 노년의 입구로 들어가게 되고 그 문을 다시 돌아 나올 수 없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다. 하지만 노인에게는 각자에게 주어진 세파를 겪고 난 후에 얻은 무엇이 있다. 노인들은 지나온 시간을 되돌아보면서 죽을 것 같았던 큰일도 사실은 별 일 아니었고, 인생의 여러 가지 선택들에 임해서는 더 고심해야 했으며, 육체는 일회용이라 아껴 써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래서 노인들은 젊은이들에게 자신이 겪어온 일에 비추어 충고를 하고자 하지만 대개는 시대의 변화를 따라잡지 못하는 잔소리로 들려 무시되기 십상이다. 괴테는 이러한 인간의 인생 패턴에 대한 안타까움에, 자신이 신이었다면 20대를 인생의 맨 마지막에 붙여 놓았을 것이라고 한탄했다. 노년의 지혜와 청년의 생생한 체력은 서로 비껴갈 수밖에 없는 운명이기 때문이다.

미술의 세계에서는 노인을 어떤 방식으로 그려냈을까. 화가와 조각가들은 어떤 이유에서건 젊고 근육이 팽팽한 남성과 가장 아름다운 시절의 여성을 그리고 싶어 했다. 하지만 재력이 있는 노년 주문자들의 요구는 거절할 수 없는 법, 나이든 인물들의 초상화도 간간이 볼 수 있다. 기를란다이요(Domenico Ghirlandaio)의 ‘노인과 손자’에는 손자를 보듬어 안고 있는 할아버지의 모습이 등장한다. 어린 손자는 할아버지 품에 안겨 눈을 바라보고 있는데, 그 모습이 간절한 것으로 보아 뭔가를 가지게 해 달라고 부탁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상상을 하게 된다. 부모님에게는 통하지 않는 부탁이 조부모에게는 종종 쉽게 허락되기 마련이니 말이다. 희끗희끗한 머리칼을 뒤로 넘겼지만 앞머리가 훤하게 벗겨져 가는 이 노인은 손자를 바라보며 할아버지다운 좋은 이야기를 해줄 것만 같다.

하지만 기를란다이요의 이 그림에서 사실 가장 먼저 눈에 띠는 것은 할아버지의 피부 상태이다. 노인은 아마도 피부병을 알고 있는 것만 같다. 코의 원래 형태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종기로 뒤덮었고 이마에도 같은 종류일 것으로 보이는 종기가 나 있다. 이 노인도 손자의 얼굴과 같은 어리고 사랑스러운 시절을 거쳤겠지만 지금의 모습은 치료가 불가능해 보이고 평생 이 모습으로 살아야 할 것 같은 기괴한 얼굴만이 남았다. 눈썹조차 하얗게 세고 푹 꺼진 눈 주위에는 주름이 가득하다. 아름다움과 추함의 단순한 기준으로 나누어보자면, 이 노인의 얼굴은 추함에 더 가깝다고 말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이 그림에서 보여주고자 하는 것은 노인의 추함이 전부가 아니다.

세월의 흔적과 어쩔 수 없는 질병으로 변형된 얼굴을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이 노인은 손자를 사랑하고 손자의 투정에 지혜로운 조언을 건넬 것이며, 가족들의 존경을 받을 것 같다. 화가가 이 노인을 그리는 방식에서, 그의 솔직한 성품과 기품을 함께 담아내고 있다. 그는 얼굴을 뒤덮은 피부병에도 불구하고, 아니 그 얼굴이 있는 그대로 추하게 그려짐으로써 오히려  그의 살아온 삶이 부정되지 않는 묘한 역설을 느낄 수가 있는 것이다.

노인이 되는 인생의 경험은 남성과 여성이 별반 다르지 않을 것이다. 남성이건 여성이건 나이가 들어 몸은 쇠약해지고 각종 질병에 쉽게 노출되어 젊은 날의 아름다움을 잃을 수밖에 없지만 각자의 인생 속에서 얻어진 삶의 방식이 얼굴에 묻어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하지만 여성이 늙는다는 것은 남성과는 다른 의미가 종종 부여되어 왔다. 플랑드르의 화가 쿠엔틴 마시스(Quentin Massys)가 그린 ‘나이든 여인’은 충격적으로 추한 모습이다. 균형이 맞지 않는 이목구비와 툭 튀어나온 이마, 그리고 원숭이처럼 벌어져 있는 귀, 얼굴부터 늘어져 내린 살이 목 부위에 자글자글하게 잡혀 있는 사실적 묘사는 숨길 수 없는 노년의 추함을 숨김없이 보여주고 있다. 이 늙은 여인을 더욱 추하게 만드는 요소는 얼굴보다 가슴이다. 코르셋으로 몸을 죄고 가슴을 끌어 모아 위로 한껏 올렸지만 이미 탄력을 잃은 가슴은 주름 잡히고 물렁한 지방덩어리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과장된 머리의 장식과 베일에도 불구하고 늙고 추한 모습은 한 부분도 상쇄되지 않았고, 여성의 노년이 얼마나 끔찍한가를 보여주기만 할 뿐이다.

이 초상은 티롤의 공작부인 마가렛 마울타시의 초상으로 추정되기도 하지만, 초상의 주문자를 이렇게까지 추하게 그릴 수는 없기에 이 얼굴의 주인공이 누구인가에 대한 미술사가들의 의견은 분분한 편이다. 그래서 이 그림을 부르는 또 다른 제목은 ‘그로테스크한 노파’이다. 못생긴 여성 노인도 자신의 초상화를 남기고 싶을 수 있다. 하지만 그 그림을 그린 화가의 시선은 그녀의 인격에 가 닿지 않는다. 오히려 그녀를 얼굴 뿐 아니라 마음까지도 추한 인물로 그려내고자 했다면 화가는 성공한 것이라 볼 수 있겠다.

이 그림에서 아름답지 않은 얼굴 이외에도 역겨운 감상을 초래하는 또 하나의 중요한 요소는, 그림 속 여성이 아직도 여성이고자 하는 징후들 때문이다. 이 노인은 지나치게 화려한 머리 장식과 더불어 여성성을 강조하고자 하는 억지스러운 가슴 노출, 그리고 요란한 장식의 반지를 세 개나 손가락에 끼고 있으며 한 손에는 붉은 꽃봉오리를 손에 들고 있다. 이 노파가 어떠한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 어떤 어머니이며 할머니인지에 대해서 이 그림을 말해주고 있지 않다. 다만 여성 노인이 여성답게 보이고자 할 때 그것이 얼마나 추한 몰골인지를 악의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알브레히트 뒤러가 그린 ‘탐욕’ 역시 노년의 여성을 상징적으로 그린 것이다. 긴 머리칼이나 얼굴의 형태로 볼 때 젊었을 때는 아름다웠지도 모르는 여인이 참담한 몰골의 노인이 되어 돈주머니를 들고 빠진 이를 드러내며 기괴한 미소를 짓고 있는 모습으로 그려지고 있다. 적색 로브를 어깨에 늘어뜨렸지만 한쪽이 노출되어 축 늘어지고 주름진 가슴을 생생하게 보여주는 것도 빠뜨리지 않았다. 이 그림은 나무 패널에 그려진 것으로 뒷면에는 젊은 남성이 그려져 있다. 따라서 젊음과 늙음의 대조를 통해 인생의 덧없음을 주제로 했음을 알 수 있다. 늙었지만 여전히 여성이라는 것을 강조하고 있는, 그러나 결코 아름답다고 보기 어려운 이 노인의 인격수준을 보여주는 것은 돈주머니일 것이다. 가득 찬 돈주머니는 노인의 위안이 될 수는 있겠지만 젊음을 되돌려주지는 못할 것이고, 이 돈을 남기고 곧 죽음을 맞게 될 것이다. 그렇다면 이 살아생전의 탐욕은 무슨 의미가 있단 말인가. 이 그림은 특정인의 초상처럼 보이지만 인생무상이라는 교훈적인 알레고리를 담고 있다.

하지만 여기서 다시 생각해볼 일이다. 청년시절의 아름다움을 잃은 남성 노인과 여성 노인은 왜 이렇게 다르게 그려져 있을까. 남성 노인의 묘사가 미추에 관계없이 나이만큼의 지혜와 경륜을 보여주는 것처럼 보이는 반면, 여성 노인은 왜 젊은 날의 아름다움에 대한 집착을 떨구지 못하는 기괴한 늙은이로 묘사되는 것인가. 그리고 인생의 허무함을 깨달으라고 가르치는 알레고리로 내내 소비되어 왔던 것일까. 남성이건 여성이건 인간으로 태어나 살아가다보면 늙게 마련이고, 인생은 허무를 향해 달려간다. 하지만 왜 유독 여성 노인에 대해서는 볼품없는 몸을 드러내면서까지 여성이고자 하는 모습으로, 이토록 잔인하리만치 추함을 강조하고 있는 것인가. 늙음이 인간 보편의 문제이건데, 이러한 대비를 이루는 이유는 여성의 존재에 대한 혐오가 은연중에 짙게 깔려 있기 때문이라고 보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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