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진명
온깍지활쏘기학교 교두

[충청매일] 그런데 장혜진에게서 뚜렷하게 나타난 이 깍짓손 떼임의 특성이 사실은 양궁이 아니라 국궁의 유산이라는 점이 중요합니다. 앞서 살펴보았듯이 양궁에서는 깍짓손을 거칠게 뺀다는 발상을 할 수가 없는 구조입니다. 뒷손이 거칠게 물러서는 순간 시위가 뺨을 때리기 때문이죠. 그런데 최근에 양궁에서 그런 방법이 대세로 자리 잡아가고 있습니다.

이것은 양궁 초기 궁사들과 비교하면 금세 드러납니다. 양궁을 세계 정상으로 올려놓은 첫 번째 명궁은 김진호 선수인데, 그 당시의 사법과 요즘의 양궁 사법을 비교하면 뚜렷하게 차이나는 것이 바로 이 릴리이즈 동작입니다. 요즘이 훨씬 강렬합니다. 이것은 국궁 사법이 양궁으로 넘어간 것입니다. 결국 우리나라 양궁이 세계를 제패한 수많은 이유 중의 하나가 사법에 있고, 그 사법은 국궁에서 흘러간 것이라는 결론을 낼 수 있습니다.(『활쏘기 왜 하는가』)

국궁이 양궁에 영향을 미친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1983년 국궁과 양궁이 분리될 때까지 초기 양궁 선수를 관리 감독한 것은 대한궁도협회였습니다. 당연히 양궁 지도가가 육성되기 전까지 국궁인들이 양궁 선수들을 지도했습니다. 대부분 초기 양궁 선수들은 국궁장에서 활을 배웠습니다. 국궁과 양궁의 영향 관계는 자연스러워집니다. 특이한 것은 김진호 선수가 경북 예천 출신인데, 예천은 각궁 산지로 유명하고 무학정이라는 활터가 있으며, 김 선수의 아버지도 이곳에서 활을 쏘는 활량이었습니다. 이 얘기는 제가 궁시장 조사위원으로 예천을 방문했을 때 들은 이야기입니다.

이렇게 양궁의 초기 지도자들은 대부분 국궁을 하는 사람들이었고, 실제로 국궁장에서 연습을 시작했습니다. 그러던 것이 1983년에 대한궁도협회가 대한국궁협회와 대한양궁협회로 분리됩니다.(『온깍지궁사회 카페』) 적어도 1983년까지는 양궁이 국궁의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없는 구조였다는 것입니다.

우리나라 양궁 선수들의 우수한 성적을 두고 우리 민족의 디엔에이에 활 인자가 있어서 그런 것이 아니냐고 말하는데, 저는 그럴 리가 없다고 단언합니다. 한국인이라고 해서 유달리 활을 잘 쏠 능력이 있는 것이 아니라, 활쏘기에 대한 경험이 많기 때문에 우수한 인재가 나오는 것이라고 봅니다. 양궁의 세계 제패는 그럴 만한 기술상의 우위 때문에 그런 것이고, 그런 원인에는 양궁에 미친 국궁 사법의 영향 때문이라고 확신합니다. 그 증거가 바로 리우 올림픽에서 또렷이 나타났던 것이고, 그 상황이 깍짓손의 변수라고 지금까지 설명 드린 것입니다.

양궁은 자신들이 그런지 잘 모르는 것 같지만, 사법을 들여다보면 국궁의 영향을 분명히 볼 수 있습니다. 릴리이즈의 잽싼 동작은, 국궁 특유의 사법에서 영향을 받은 것입니다. 시위 잡은 손이 뒤로 많이 물러나는 동작이 양궁선수들에게 대세가 되어가는 중입니다. 이유는 간단합니다. 그렇게 하면 화살이 힘차게 날아가기 때문입니다. 바람의 영향을 확실히 덜 받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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