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매일] 김주태가 처음 영춘 용진나루에 나타나 한 일은 사람들의 환심을 사는 일이었다. 특히나 나무를 만지는 사람들 중에서도 뗏꾼들에게 공력을 쏟았다. 나물 일을 하는 사람들 중 가장 밑바닥의 천대받는 일이 뗏꾼이었다. 그런 뗏꾼들에게 김주태가 정성을 들인 것은 그들이 측은해서가 아니었다. 김주태가 뗏꾼들의 비위를 맞추며 그들의 환심을 사려고 한 것은 다른 꿍꿍이가 있었다. 뗏꾼들이 나무와 관련된 일을 하는 사람들 중 가장 위험하면서도 제대로 대우받지 못하고 천대를 받기는 했지만 이들이 없으면 산판이고 목상이고 무용지물이었다. 이들이 떼를 몰고 목상들이 원하는 장소까지 통나무를 운반해주지 않으면 아무리 궁궐떼라도 장작만도 못했다. 김주태가 용진나루에 올라와 맨 먼저 한 일은 뗏꾼들을 불러 모아 술을 받아주고 밥을 사주며 환심을 사서 자기 쪽으로 끌어들이는 일이었다. 그리고는 갖은 감언이설로 사람들을 꼬드기는 일이었다. 뿐만 아니라 뗏꾼들의 대소사라면 누구든 가리지 않고 뒤를 돌봐주었다. 이제껏 살아오면서 천대란 천대는 다 받아봤지만 다른 사람들로부터 대접이라고는 푸대접도 받아보지 못했던 뗏군들은 김주태의 정성에 감복해서 그를 위해서라면 목숨을 내놓아도 조금도 아까울 것이 없다고 다짐했다. 김주태의 명이라면 불구덩이 속이라도 망설이지 않고 뛰어겠다는 생각들을 했다. 그러다보니 목상들이 뗏꾼을 부리려면 김주태의 허락을 받아야 할 지경이 되었다. 김주태의 눈 밖에 나면 아무리 좋은 나무를 사놓았어도 영춘 밖으로는 단 한 발짝도 나갈 수 없었다. 그러니 어지간한 목상들도 김주태 눈치를 살피며 비위를 맞췄다. 그건 산판의 벌목공도 산주도 마찬가지였다. 영춘에서 나무로 밥을 먹으려면 김주태의 입김이 절대적이었다. 김주태는 자신의 영향력이 이에 미치자 이전부터 장사를 하고 있던 토박이 목상들의 상권을 빼앗기 위해 수작을 시작했다. 목상들은 뗏꾼들을 현혹할 때처럼 단순하지 않았다. 목상들도 세상으로부터 천대를 받는 장사꾼에 불과하기는 했지만 예전과 달리 이들에게는 돈이 있어 누구든 이들을 호락호락하게 보지는 못했다. 이들 중에는 재력을 이용해 상당한 뒷배를 가진 자들도 있었다. 김주태는 이런 목상 아닌 목상을 만나면 태도가 완전히 달라졌다. 제 놈이 불리하거나 강한 상대를 만나면 비위를 맞추며 간까지 빼줄 것처럼 알랑거렸다. 이들 앞에서는 그리 하며 뒤에서는 야비한 술수를 부려 이간질을 했다. 산판 벌목장에 가서는 다른 벌목장과 비교하며 남의 물건에 흠을 내거나 값을 후리고, 목상들을 만나서는 당사자가 하지도 않은 말을 공중 지어내 상대 목상에게 속닥거려 평생 다져온 친분에 금을 가게 하는 수작을 숨 쉬듯 했다. 제 놈의 힘에 부치니 서로 반목하게 만들어 힘을 빼는 수작이었다. 사람의 귀라는 것이 처음에는 반신반의하다가도 거푸 똑같은 소리가 그것도 나쁜 소리가 들려오면 자꾸 그 말에 쏠리기 마련이었다. 그러다보면 점점 상대방에게 불신이 쌓이고 반목하게 되어 오랫동안 동무처럼 함께 장사해오던 관계에 금이 가고 종당에는 서로 갈라서 적이 되었다. 그 다음부터는 이 쪽 저쪽을 오가며 김주태 의도대로 목상들을 떡 주무르듯 했다. 산주나 목상들에게만 그런 것이 아니었다. 힘없는 산판의 벌목꾼이나 강가로 통나무를 옮기는 동발꾼, 떼를 모는 뗏꾼들에게도 마찬가지였다. 처음 이들의 환심을 살 때는 입에 혀처럼 굴었다. 같은 배에서 나온 형제자매라도 김주태처럼 살갑게 보살피기는 힘들었을 것이다. 그러나 김주태의 그런 행위는 먹이를 삼키기 위한 뱀 혀였다. 일단 먹잇감이 제 수중에 들어오면 그때부터는 돌변했다. 제 놈이 유리하거나 약한 상대를 만나면 그들의 등가죽까지 벗겨먹으려 들었다. 팔이 빠지게 도끼질을 하고, 어깨가 빠지도록 통나무를 옮기고, 목숨 걸고 그레질해서 버는 피 같은 돈도 주기 아까워 이 핑계 저 핑계를 대며 미루고, 이런 저런 벌점을 매겨 임금을 깎고, 돈을 주면서는 다음에 또 일을 하려면 선세를 내야 한다며 선돈을 떼고 주었다. 걸뱅이나 으드박지 동냥바가지를 뺐고, 애 볼태기에 붙은 밥풀을 떼어먹는 추잡한 짓거리였다. 그제야 사람들은 구관이 명관이라며 예전 산주나 목상 밑으로 돌아가려했지만 그러기에는 이미 때늦은 후회였다. 김주태의 협작과 모사로 산주와 목상과 막일꾼들 사이 관계는 돌이킬 수 없는 상태였다. 오도 가지도 못하는 처지에 놓인 사람들이 그래도 목구멍에 풀칠을 하려면 김주태의 악랄한 처사도 참아내며 그가 시키는 대로 마소처럼 일할 수밖에 없었다. 날이 갈수록 김주태의 횡포는 그 정도가 심해졌고 그만큼 사람들 불만은 깊어졌다. 곪으면 터지는 법이었다. 부자가 더 먹으려고 불만을 토로하는 것과 먹을 것이 없어 불만을 토해내는 사람들은 달랐다. 없는 사람들이 더는 견딜 수 없어 굶어죽으니 맞아죽으나 이판사판으로 들고일어날 때는 창 맞은 호랑이나 마찬가지였다. 결국 더는 견딜 수 없게 된 뗏꾼 몇이 통나무를 찍는 갈고챙이를 움켜쥐고 김주태가 잠자는 방으로 뛰어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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