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매일] “객주님은 언제적 얘기를 허시는 거유? 지금 당장 살기도 힘든데 수백 년 전 왜놈한테 누가 죽었든 말든 그런 얘기가 지금 뭔 소용이란 말유?”

“그렇구 말구여! 지금 세상이 어떤 세상인데 그런 고리타분한 얘기를 헌단 말이유?”

동몽회 아이들이 듣기도 싫다는 듯 심봉수 이야기에 짜증을 냈다.

요즘 아이들이 그랬다. 아이들만 그런 것이 아니라 세태가 그랬다. 애어른 할 것 없이 남의 일에는 도통 마음을 쓰지 않았다. 오로지 자기 자신뿐이었다. 모두들 살기가 힘들어서 그런 것이라고 치부하기에는 사람들 인심이 너무 이상하게 바뀌었다. 뭇 백성들 살기가 어려운 것은 예전이나 지금이나 매한가지였다. 아무리 살기가 버겁다해도 예전에는 그러지 않았다. 내 이웃이 힘들거나 곤경에 처해있으면 우선 마음이라도 나눠주는 것이 우리네 인정이었다. 그러나 근자에는 담을 붙이고 사는 이웃이 죽어나가도 개머루 보듯 시큰둥했다. 어른들도 제 자식들에게 남이야 팥으로 메주를 쑨다 해도 너는 네 일이나 잘하라며 그것이 세상을 살아가는 가장 좋은 방편인 것처럼 말했다. 그러다보니 요즘 사람들에게는 과거도 미래도 없고, 오로지 자신의 눈앞에 보이는 이득만 쫓을 뿐 주변 다른 사람들의 일에는 관심조차 없었다.

“요새 것들은 인총 귀한 줄을 몰러! 세상이 사람 없으면 뭔 소용이여. 서로서로 기대며 뜯어먹고 사는 게 세상인데 지들만 잘난 줄 알지, 그렇게 사람 천시하다간 종당엔 큰코 닥칠 거여!”

심봉수가 관심도 없는 동몽회원들을 향해 핀잔을 늘어놓았다. 그러나 누구하나 그 소리에 귀 기울이는 녀석은 없었다.

이미 날은 어둑해졌다. 달도 아직은 뜨기 전이어서 강가를 따라 나있는 길만 희미하게 보일 뿐이었다. 아직도 영월 성두봉 객주가 있는 맏밭나루까지는 한참 길이 남아있었다. 대낮이라도 힘든 길인데, 해가 떨어지고 달도 뜨기 전 어둑어둑한 길을 걷자니 아무리 젊은 아이들이라 해도 힘이 곱절은 들었다.

“화수야, 저어기 히끗히끗하게 뭐가 보이냐?”

“객주님, 어디를 말입니까?”

“저어-기 강심에 모래톱이 보이지 않느냐?”

“저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데, 객주님은 뭐가 보인다고 그러십니까?”

어둠 속에서 심봉수가 가리키는 앞쪽을 아무리 살펴보아도 봉화수 눈에는 모래톱은커녕 검은 산과 검은 물만 보일 뿐 모래톱 따위는 보이지 않았다.

“이제 좀만 더 가면 보일게다. 거가 맏밭이다!”

심봉수는 좀만 더 가면 목적지라도 말했지만, 어둠 속에서는 그 거리가 얼마나 되는지 봉화수는 땅찜도 할 수 없었다. 심 객주 역시 영춘과 영월 사이를 평생 오르내렸으니 이젠 느낌으로 짐작하는 것이지 눈에 보여 하는 말이 아니었다.

“청풍도가 김주태 놈이 그런 무리수를 두는 걸 보니 몸이 달기는 엄청 달았는가 보구나. 나무장사라는 것이 뗏꾼만 어찌한다고 되는 일이 아닌데…….”

어둠 속에서 심봉수의 혀 차는 소리가 들렸다.

“객주님도 알고계시겠지만, 지금 청풍도가는 이 일 저 일이 실타래처럼 얽혀있습니다요. 그래서 대행수께서도 이번 기회에 청풍도가를 꺼꾸러뜨릴 작정을 하고 있습니다요.”

“나도 들어서 알고 있다네. 그렇지만 짐승몰이를 할 때도 궁지에 몰린 놈은 봐가며 모는 법일세!”

“그래서 김주태가 눈치 채지 못하도록 청풍도가 숨통을 서서히 끊으려고 우리 임방들부터 단속을 하는 중입니다. 우리 임방들이 도가로 흘러들어가는 물산들을 중도에서 막아 서서히 말려버리고 기회가 왔을 때 단방에 칠 생각이신 것 같습니다요. 그래서 저도 각 임방을 돌며 그 준비를 하던 중이었는데 갑자기 이 일이 생긴 것입니다.”

“청풍도가에서도 한때는 나무장사에 손을 댔었지.”

“그런데 왜 그만 둔 것인지요?”

“그만 둔 것이 아니라 밀려난 것이지!”

“밀려났다는 것이 무슨 말인지요?”

“목상이라는 것이 위험부담도 크고 일 년 중 반은 장사를 할 수 없으니 김주태처럼 욕심 많은 놈이 안전한 장사로 돌아선 거지. 그런데 그런 위험부담을 감수하고 다시 이 판에 들어왔다면 어지간히도 급한 일이 생긴 것 아니겠는가?”

봉화수의 물음에 심봉수가 딴소리를 했다.

“한참 전 김주태가 우리 영춘 용진나루에서 나무장사를 했었지. 그때까지만 해도 청풍도가가 지금처럼 떵떵거릴 정도는 아니었지. 그런데 지금이나 그때나 김주태가 남의 등치고 남 뼛골 빼먹는 대는 명수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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