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매일] “그럼 객주님이 굴이 사람을 어떻게 구했나 말씀이나 한 번 해보셔요?”

그렇게 말하면서도 강수는 심봉수 이야기에 별반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하기야 둥글둥글 세상 구르는 이야기든 오다가다 듣는 흘러 다니는 별 쓸다리 없는 이야기도 모 닳은 장년들에게나 심심풀이가 될 뿐 혈기 왕성한 강수나 동몽회원들에게는 늙은이 이 앓는 소리에 불과했다. 게다가 보통 사람들이 이틀이나 사흘은 걸어야 할 거리를 하루에 걸어온 까닭에 녹초가 된 이들에게 심봉수의 생뚱맞은 이야기는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나 한가지였다.

“그럼 객주님께서 굴이 어떻게 사람을 살렸나 한 번 말씀 좀 해보셔요!”

아예 관심조차 없는 다른 동몽회원들과는 달리 그래도 강수는 심봉수의 이야기에 대꾸는 해주었다.

“다 들어두면 살면서 얼마나 요긴하게 쓰이는 줄도 모르고 요새 젊은 것들은 옛날 얘기에는 통 관심이 없어!”

심봉수가 아무 생각 없이 터벅터벅 발걸음만 옮겨놓고 있는 동몽회원들을 보며 혀를 끌끌 찼다. 남한강물이 붉게 물 들며 깊은 협곡에는 이미 어스름이 진하게 내려 깔리고 있었다. 심봉수가 고씨굴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놓기 시작했다.

임진년 왜란 때 영월 역시 무사하지 못했다. 그때 영월 진별리에 고종원·종길·종경 삼형제가 부모님을 모시며 살고 있었다. 왜구가 부산에 상륙하여 승승장구하며 한양을 향해 쳐들어오자 고 씨 삼형제도 강원도 각 읍에 통문을 돌리며 창의를 알렸다. 고 씨 형제는 본래 횡성 세족으로 영월에 이거하여 살고 있었는데, 왜변이 일어나자 아우 종경이 고향 마을에 이를 알려 군사를 모으니 그를 추앙하여 모인 의병이 수백이었다. 이때 강원도에서는 홍천과 영춘 사이 험한 곳을 거점 삼아 왜구의 진격을 막을 준비를 하고 있었는데 강원 도백이 찾아와 종경을 격려하고 흥원진이 약하니 의병 오백으로 그곳을 도우라고 지시했다. 흥원진은 남한강과 섬강이 만나는 지점으로 왜군이 원주를 거쳐 한양으로 진격하는 것을 막을 수 있는 군사적 요충지였다. 그러나 거느리고 가던 의병이 중도에서 일부 도망을 치고 흩어지자 제때 흥원진에 도착하지 못해 때를 놓치게 되었다. 흥원진을 지키던 장수가 이를 보고하자 감영에서는 종경이 군율을 어겼다며 포박하여 평창으로 압송한 후 사형을 집행하라고 명을 내렸다. 이 소식을 들은 평창의 많은 백성들이 관청 뜰에 모여 ‘종경의 가상한 의는 있을지언정 죽을 정도의 죄는 없다. 의병이라는 것이 군사와 달라 모였다 흩어진다 한들 종경의 통솔이 부진해 그런 것도 아니고 신망을 잃어 그런 것도 아니니 나라가 위급할 때 석방하여 이롭게 씀이 옳다’사면을 읍소하였다. 평창군수 권두문은 이러한 뜻을 감영에 보고했지만 길이 막혀 오랫동안 답이 없자 형을 집행하고 말았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종형을 무죄 석방하라는 첩문이 도백으로부터 내려왔으나 이미 사형이 집행된 후였다. 종경의 부당한 죽음을 목격한 고을 백성들은 나라의 처사에 불만을 품고 의병에 참여하기를 꺼려하며 모두 흩어졌다. 결국 영월 일대는 싸움 한 번 해보지도 못한 채 왜병의 수중에 떨어졌고, 남은 고 씨 두 형제는 가족을 이끌고 노리곡 석굴 안으로 피난했다. 그러나 두 형제의 고초는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영월을 점령한 왜군은 사람들은 협박하여 의병을 일으켰던 고 씨 형제의 은신처를 알아냈다. 그리고는 뗏목을 타고 강을 건너 노리곡굴에 당도하여 입구에 섶을 쌓아놓고 불을 질렀다. 이 와중에 고종원 부인 조 씨는 왜군에게 잡혀 당할 능욕을 피하기 위해 굴안 연못에 투신하여 자결하고, 고 씨 두 형제는 훗날을 도모하기 위해 굴 밖으로 나와 포로가 되었다. 두 형제는 왜군의 모진 고문에도 끝내 투항하지 않고 버티다 원주로 압송되었다. 이곳에서 고종원·종길, 두 형제는 종경의 형을 집행했던 평창군수 권두문을 만나 서로를 위로하며 어떻게 하든 이곳을 탈출하여 왜군을 이 땅에서 몰아내자고 결의하였다. 마침내 폭우가 심한 밤을 틈타 미리 준비해두었던 탈출구를 통해 적지를 벗어나 권 군수는 평창으로 돌아가고 두 형제는 영월로 향하던 중 다시 왜병에게 잡혀 종길은 그 자리에서 죽고, 요행이도 종원만 방면되어 집으로 돌아왔다.

“그래서 뭐가 어떻게 됐다는 이야기입니까?”

“본래는 노리곡 굴이었는데, 그 일 이후 고 씨들이 피난했던 굴이라 해서 고씨굴이라고 사람들이 불렀다는 얘기여!”

“그게 뭐유? 아무것도 아니네!”

“왜 아무것도 아니냐. 저 굴이 그냥 굴이 아니라 수백 년 전 저 굴에서 있었던 일을 전해주며 우리한테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려주니 사람 살리는 굴이 아니고 뭐더냐?”

심봉수가 애써 설명했지만 다른 사람들은 별반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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