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매일] “이 사람아, 어찌 남의 말을 허투루 듣는가?”

“뻥도 어지간히 쳐야지, 가당치도 않는 말을 하면 누가 믿겠어요?”

“그 사람이 한 말이지 내가 한 말인가. 얘기를 다 들어보지도 않구 뻥이니 나발이니 하는가. 그럼 상처 하나 없이 호랑이를 어떻게 잡았다는 말인가? 그렇게 잘 알면 자네가 한 번 말해보게!”

임구학이가 시뜩하며 봉화수에게 물었다.

“아이고, 지가 잘못했습니다요! 어서 말씀이나 해보시지요, 객주님!”

봉화수가 얼렁뚱땅 설레발을 쳤다.

“동로에서 온 사냥꾼 얘기여!”

임구학이가 자신도 들은 이야기라는 것을 강조했다.

“알았습니다요, 객주님! 어떻게 상처 하나 내지 않고 잡았는지 그 얘기나 들어보십시다!”

“그 사람 하는 말이 자기 마을에서는 호랭이를 잡을 때 큰 버리기에다 술을 잔뜩 담아 지고 호랑이가 있는 곳에 가 놔둔디야. 그럼 호랑이거 술을 잔뜩 먹고 취해 잠에 떨어져 사람이 가도 모른댜. 그럴 때 살살 가서 호랑이 코빼기에 칼로 열십자를 쫙 그려놓고는 호랭이 뒤로 가 꼬랑지를 발로 콱 밟고는 고함을 치면서 방맹이로 호랭이 궁댕이를 후려친디야. 그럼 자다 놀란 호랭이가 깜짝 놀라 도망을 치려고 튀어나가려다 칼로 그어놓은 금을 뚫고 대가리부터 알몸만 쏘옥 빠져나간디야. 그러면 호랭이 가죽만 말끔하게 남는디야. 그렇게 호랭이 가죽을 빗긴디야. 그래서 호랭이 가죽이 말끔한 거리야.”

“그럼 알몸만 남은 호랭이한테서 어떻게 또 가죽을 벴긴대요?”

“알몸으로 도망간 호랭이는 일 년 쯤 지나면 가죽이 새로 생긴디야. 그러면 또 술을 마이 멕여가지구 열십자를 긋구 호랭이를 놀래서 뛰쳐나가게 해서 한 바리에서 몇 번이구 가죽을 벳긴다는 겨!”

임구학이가 두 손을 모아 머리 위로 쭈욱 뻗으며 호랑이가 가죽을 빠져나가는 시늉을 했다. 그 모양이 마치 여름날 강가에서 물놀이 하는 아이들이 높은 바위 위에서 물속으로 뛰어내리는 것과 흡사했다.

“객주님이 턱에 붙은 수염하며 호랭이 같네요!”

“털 없는 호랑이 좀 구경해봤으면 좋겠네!”

“객주님이 벗으면 가죽 없는 호랭이 같겠는걸!”

“호랑이 사냥군이라는 경상도 동로 사람도 어지간히 뻥을 치는군요. 그래 객주님은 그 말을 믿었단 말씀이우?”

동몽회원들이 실실거리며 내던지는 말끝에 봉화수가 임구학을 깐히 보는 말투로 물었다.

“그럼, 그 날랜 호랭이를 상처 하나 없이 어떻게 잡느냔 말여. 화수 자네 잡을 수 있어. 동로에는 그런 호랑이가 숫하디야!”

임구학이가 능청을 떨었지만, 누구도 그 말을 믿는 사람은 없었다.

술을 먹여 호랑이를 잡든, 기름챙이 강아지를 풀어 호랭이를 줄줄이 잡든 예전에 비해 어지간한 큰 산에서도 호랑이 보기가 몹시 힘들어졌다. 이전만 해도 나라에서는 팔도 군현에 명을 내려 매해 호랑이 가죽 석 장씩을 공납하라했다. 그 무렵만 해도 민가 인근에서 호랑이를 보는 일이 그리 어렵지 않았다. 민가만 조금 벗어나면 우거진 숲이 있고 냇가가 있었다. 그리고 그 숲에는 호랑이 먹이가 되는 고라니와 노루, 사슴이 득실거렸다. 작은 짐승들도 숲 속에 먹을 풀이 많으니 사람들이 경작하는 농작물에 손을 대지 않았다. 숲속에 먹이가 넘쳐나니 호랑이도 사람들에게 피해를 입히지 않았다. 오히려 호랑이는 작은 짐승들을 잡아먹으며 사람들의 농작물을 지켜주었다. 사람들도 공납품이나 약재로 쓰는 일이 아니면 굳이 호랑이를 잡지 않았다. 사람과 호랑이가 서로 공생을 한 셈이었다. 그러다 점점 부딪치게 된 것도 사람들이 그리 만든 것이었다. 인구가 늘어나고 경작지가 모자라게 되자 농민들은 먹고살기 위해 짐승이 살던 숱을 개간해 경작지로 만들기 시작했다. 게다가 양반과 부자의 가렴주구로 삶의 터전을 잃어버린 팔도 농민들이 고향을 떠나 산속으로 숨어들며 곳곳이 화전으로 황폐해졌다. 그러자 호랑이 역시 살아갈 터전을 잃고 먹이가 줄어들자 사람들에게 해를 입히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들판에는 도적이요, 산에는 호랑이라며 어딜 가나 힘겨운 농민들의 삶을 토로했다. 그렇지만 호환보다도 더 무서운 것이 양반과 부자였다. 그러다보니 농민들은 자꾸자꾸 산으로 들어갔고, 그만큼 호랑이가 살던 숲은 나날이 줄어들었다. 호랑이 역시 자꾸자꾸 더 깊은 산속으로 들어가 버렸다. 호랑이 구경조차 힘든 지경이 되다보니 나라에 호피를 공납하던 일은 이미 오래전 없어졌다. 호랑이가 귀하니 호피를 구경하는 것도 당연히 힘들었다. 이제는 백두대간이 뻗어내려 사람 발길이 닿기 힘든 험준한 동로같은 마을서나 가끔 호랑이를 잡아 호피를 구경할 수 있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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