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매일] 후하고 박한 것은 심성에 달려있었다. 풍족하게 자랐다고 후한 것도 아니고 궁핍하게 자랐다고 박한 것도 아니었다. 있다고 후한 것도 없다고 야박한 것도 아니었다. 그저 타고난 천성이었다. 조금이라도 더 벌려고 아등바등 욕심내는 것도, 그깟 것 조금 덜 먹지하고 남을 배려하는 것도 천성이었다. 임구학은 타고난 성품이 착했다. 그런 성품은 장사를 하면서도 그대로 나타났다. 다른 장사꾼들보다 값도 후하게 쳐주고, 뭐라도 더 주려고 애쓰는 것을 물건을 팔러오는 사람이라고 모를 리 없었다. 그렇게 몇 해 동안 인심을 쌓자 그 다음부터는 장꾼들이 많이 몰리는 번성한 장터를 두고 사람 발걸음도 뜸한 장회까지 발걸음을 했다. 장꾼들은 자기가 가지고나온 물건 값을 더 받기 위함도 있었지만 그간 임구학에게 받았던 고마운 마음을 갚고 싶어서였다. 그렇게 되자 임구학은 벽지에 있으면서도 찾아오는 사람이 많으니 앉은장사를 무난히 할 수 있었다.

“저도 그리 생각은 하지만…….”

봉화수가 선뜻 결정을 하지 못했다.

“내가 후에 대행수께 잘 말씀을 올릴테니 내 말대로 건조장을 지어주게!”

“그러시다면 저도 객주님 말씀대로 하겠습니다.”

임구학이 책임지겠다는 말에 봉화수도 쾌히 그리 따르겠다고 승낙했다.

“하루 종일 걸어 힘들 테니 오늘 저녁은 고기로 속을 채워보세!”

“가죽 뜨는 집에 고기가 없겠는가? 자네들 오는 줄 알았는지, 며칠 전 산에 갔더니 신령님이 돼지를 주더라구! 그러니 잔뜩 먹고 힘내서 내일부터 건조장이나 하나 번뜻하게 지어주게나, 핫핫핫!”

임구학 웃음소리가 강가 바위 절벽에 부딪치며 쩌렁쩌렁 울렸다.

임구학의 장회임방 마당에서는 밤늦도록 잔치가 벌어졌다. 잔치라고 해봐야 임구학이 잡아온 돼지고기를 피워놓은 장작불 위에 굽고 산채에 술동이가 전부였지만 부자 생일상이 부럽지 않았다.

“심 객주가 하는 말을 들어 대강은 알고 있지만, 여각 대행수께서 이번에 대차게 밀어 부칠 모양인 게여?”

임구학이가 곁에 있는 봉화수에게 물었다.

“그래서 이렇게 다니고 있는 것 아닙니까? 일단 바깥으로 임방을 돌며 단단히 채비를 시키고 청풍도가로 흘러들어가는 물산들을 끊어 숨통을 죌 작정인가 봅니다.”

“그건 나도 들어 아는 얘기고, 청풍도가가 그 정도로 쓰러지겠는가?”

임구학은 다른 새로운 이야기가 없는가 궁금해서 물었다.

“물론 금방 쓰러지지야 않겠지요! 그렇지만 지금 청풍도가는 이래저래 사면초가에 몰려있습니다요. 이럴 때 청풍도가를 둘러싸고 있는 우리 임방들이 각기 사방에서 물산들 흐름을 끊고 목을 죄면 더더욱 정신을 차리지 못하겠지요.”

“그건 화수 자네 얘기가 맞다네. 우리도 사냥을 나가보면 알지. 힘이 등천해 날뛰는 짐승은 절대 혼자 당해내지 못허지! 그럴 때는 개도 풀고 몰이꾼도 풀어 사방에서 혼을 빼놓고 허둥지둥 할 때 공격을 하지. 짐승이나 사람이나 잡는 방법은 매한가지여!”

“임방들이 똘똘 뭉쳐 목줄을 죄면 그 다음에 대행수께서도 무슨 복안을 가지고 있겠지요!”

봉화수가 임구학에게 최풍원의 의도를 넌지시 전했다.

“아무리 혼이 빠져있어도 큰 짐승은 큰 짐승이여! 큰 짐승을 잡으려면 노련한 사냥꾼이 단번에 급소를 찔러야 혀! 실수를 해서 잘못 건드려놓으면 그땐 낭패지. 대행수께서 어련히 잘 알아서 하시겠는가? 우린 주변에서 대행수 하시는 일을 도와주기만 하면 될 일 아니겠는가?”

덩치는 산만 하고 겉으로는 허허실실 하는 임구학이었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었다. 봉화수가 무슨 의도를 가지고 각지의 임방을 돌고 있는지 간파한 임구학이가 입맛에 딱 맞는 답을 했다.

“이제 곧 청풍도가의 날개가 크게 꺾일 것입니다!”

“여부가 있겠는가!”

임구학이가 맞장구를 쳤다.

“저게 다 보석이면 좋겠지?”

갑자기 봉화수가 하늘을 가리키며 뜬금없는 소리를 했다. 하늘에는 비취 같은 별들이 형형한 빛을 내며 총총하게도 박혀있었다.

“보석이 귀해야 보석이지. 저리 많으면 보석 대접을 받겠는가? 돌만도 못허지!”

임구학의 말처럼 별도 참 많았다.

그믐이 깊어졌는지 하늘에는 달빛 한 점 보이지 않았다. 산도 검고 강물도 검었다. 강 건너 가은산도, 지척의 구담봉도 어둠에 묻혀 윤곽조차 구분할 수 없엇다. 장회임방에서 빠꼼하게 올려다 보이는 하늘에서만 무수한 별들이 파랗게 빛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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