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매일] “우리 고향에도 그런 얘기가 있어. 그런데 마을사람들은 그 할멈이 마을을 지키는 산신이래요.”

“할망구가 무슨 산신이여. 수염 허연 할배도 아니고!”

“그건 그려! 여자가 무슨 산신이여. 그리고 무슨 도술을 부려, 할배 도사 얘기는 들어봤어도 할망구 도사 얘기는 금시초문이구먼!”

“너 그러다 도둑바위 아래서 그 할멈 만나면 빼도 못 추린다.”

“암만 그래야 할멈 하나 못 이기겠냐?

동몽회 녀석들이 섬뜩함을 날려버리기 위해 그러는 것인지 저들끼리 나오는 대로 지껄이고 있었다. 녀석들은 할머니 산신보다도 점점 깊어지고 음습해지는 계곡이 더 무서워 자꾸 딴소리를 해댔다.

“화수 아재, 이런 골은 소를 잡아먹어도 모르겠어요.”

“그래 골이 깊기는 깊구나. 이러다 어두워지면 낭패겠구나. 해 넘어가기 전에 어서 빠져나가자. 서두르거라!”

봉화수가 잡담을 하며 시시닥거리는 동몽회원들을 재촉했다.

이녀골을 지나 점골을 지나자 골은 더욱 깊어지고 줄바우골이 나타났다. 몇 백 질도 넘는 사람 형상을 한 바위들이 계곡 양편으로 열을 지어 하늘을 찌를 듯 솟구쳐 있었다. 그래서 사람들은 여기를 줄바우골이라 했다. 기기묘묘한 바위들을 쳐다보니 금방이라도 와르르 무너져 내릴 것만 같아 현기증이 일었다. 그리고도 굴고개를 지나고 밋골을 지나고 부르실을 지나자 도둑바위가 나타났다. 도둑바위는 계곡 가장자리 너럭바위 위쪽 층층이 쌓인 절벽위에 올라앉은 듯 얹혀있었다. 대여섯 채의 집을 뭉쳐놓은 듯 커다란 바위가 두꺼비처럼 웅크리고 앉아 바소쿠리 같은 입을 떠억 벌리고 있는 형상이었다. 꺼멓게 보이는 굴 입구의 크기만 봐도 그 안에 수십 명의 도둑이 은거하기에 부족함이 없어보였다. 그 옆에는 할미바위가 도둑을 징치하는 듯한 모양새로 굴 입구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봉화수는 도둑굴 주변을 눈으로 살펴보며 사람들이 이름도 찬 잘 붙인다는 생각을 했다.

“아제, 증말루 저기에 도둑이 살았을까유?”

“이 녀석아, 도둑은 물만 먹고도 산다더냐? 사람들도 안 다니는 이런 깊은 골에 뭘 먹고 살겠느냐. 사람들이 공중 지어낸 말이지.”

“하기야, 뭐라도 지나댕기길 해야 도둑놈도 빼앗아 먹을 게 있지 이렇게 댕기기 힘든 곳에 사람이나 오겠어유?”

동몽회 녀석도 실제로 도둑바위를 눈앞에서 보고나니 전해져 내려오는 이야기가 허무맹랑하다는 것을 알겠다는 표정이었다.

도둑바위를 지나 집골을 지나고 가래골을 지났다. 다시 뇟골과 뒤싯골을 지나 임간이 쯤 오자 골이 열리며 적곡천과 수산천이 모아지는 원대리가 눈앞에 보였다. 원대리는 죽령을 넘은 경상도 사람들이나 강원도 사람들, 그리고 충청도 북부에 사는 사람들이 충주나 한양으로 가는 육로의 길목이었다. 위쪽으로 가까이에는 단양과 꽃거리가 있었고, 아래쪽으로 봉화재를 넘으면 서창과 한수, 황강이 있었다. 그래서 원대리에는 원터가 있고, 여기에서는 계란재를 올라서서 정상에서 잔대미재로 방향을 틀어 그 고개를 넘어서면 두항이 나오고 두항 마을만 지나면 장회나루가 지척이었다.

봉화수가 이끄는 동몽회원들은 원평리가 바라보이는 합수머리 못미처에서 오른쪽으로 방향을 틀어 계란재로 올라섰다. 오른쪽으로 계란 형상의 산으로 사방이 둘러싸인 마을이 나타났다. 밋밋한 산줄기를 타고 삼십여 호는 됨직한 집들이 총총하게 박혀있었다. 가는실, 조풀막, 아랫말, 웃말이었다. 이제 계란재 정상에서 잔대미재를 넘어 두항을 지나면 구담봉 아래 장회나루였다. 두항이나 장회는 단양 땅이었다. 계란재와 잔대비 고개를 경계로 서쪽은 청풍관내, 동쪽은 단양관내였다. 그래서 이곳 사람들은 단양장과 청풍장 두 곳을 보러 다녔다. 두 장의 거리가 반반이었기 때문이었다.

“이게 무슨 일들인가!”

봉화수 일행이 장회나루에 당도하자 임구학 객주가 반색을 하며 맞았다.

“객주님, 그간 별고 없으신지요?”

“나야 무슨 별고가 있겠는가? 그래 이게 무슨 일인가?”

봉화수의 물음에도 임구학은 영문을 몰라 연유만 거푸 물었다.

“객주님, 오늘 먼 길을 왔습니다요. 숨 좀 돌리고 말씀을 올리겠습니다요!”

봉화수가 임방 마루 끝에 털썩 주저앉으며 말했다.

“어허 내 정신 좀 보게. 먼 길 온 사람들에게 내가 뭘 하는 겐가!”

임구학 객주가 임방 바로 옆에 붙어있는 삽작문을 통해 집 안으로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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