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의 눈으로 읽는 열 가지 미술 키워드]포르노와 미술작품의 경계에 서 있는 소녀들
[여성의 눈으로 읽는 열 가지 미술 키워드]포르노와 미술작품의 경계에 서 있는 소녀들
  • 충청매일
  • 승인 2020.04.19 16: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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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장 소녀: 소아성애의 정당화와 그에 맞서기
(2) 로코코시대의 소녀들
부셰 作 ‘블론드 오달리스크’ 한눈에도 앳돼보이는 소녀 모델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고 헝클어진 침구 위에 엎드려 있어
14살 소녀 오뮈르피, 성적인 도구로 사용될 수 있도록 묘사
이 그림을 그리는 남성의 시선에 자신의 신체 무방비로 노출
프라고나르 作 ‘개와 함께 있는 소녀’ 관심사는 노출된 엉덩이
절묘한 위치의 개 꼬리, 보는 이에 또다른 상상 불러 일으켜
그림 속 소녀들 욕망의 객체이자 포르노적 관심의 대상 전락
프랑수아 부셰 ‘블론드 오달리스크’ 1751년(왼쪽). 장 오노레 프라고나르 ‘개와 함께 있는 소녀’ 1770~1775년.
프랑수아 부셰 ‘블론드 오달리스크’ 1751년(왼쪽). 장 오노레 프라고나르 ‘개와 함께 있는 소녀’ 1770~1775년.

[이윤희 수원시립미술관 학예과장]서구 세계에서 문명이 발생한 이래 인간을 누드로 그리는 것은 남성과 여성을 가리지 않았다. 고대에는 오히려 남성의 나신이 인간의 기본형으로 그려졌고 여성은 옷을 입은 모습으로 등장했다. 신상의 경우 여성이 누드 조각으로 만들어지는 경우가 있었지만 압도적으로 남성 누드가 수적으로 많았던 것은, 남성의 신체가 여성의 신체보다 더욱 완전한 인간상이라고 여겨졌기 때문이다. 아폴로, 포세이돈, 제우스를 비롯해 완벽한 신체를 가진 인간형 신상들이 제작됐고, 수많은 운동경기자상들이 만들어져 거리에 놓여졌다. 중세를 지나 고대문화의 부활을 꿈꾸던 르네상스 시대에는 고대에 구현되었던 완벽한 남성 신체가 성경에 등장하는 인물로 부활됐다.

세계에서 가장 잘 알려진 조각인 미켈란젤로의 다비드상은 대단히 아름답고 그에 더하여 기능적으로도 완벽해 보이는 남성 누드상이다. 거인 골리앗을 노려보며 한 손에 돌을 감추고 온 몸의 근육이 긴장되어 있는 미켈란젤로의 다비드는 이 조각상을 둘러싼 공기까지도 제압하는 느낌이 들 정도로 매우 강렬하다. 바로 다음 순간 이 미남 다비드는 손에 쥔 돌멩이를 휘둘러 거인 골리앗을 쓰러뜨릴 것 같다. 다비드는 아름답고 강한 남성이며, 왕위에 올라 남의 부인을 탐하는 죄를 지었지만 곧 신의 용서를 받고 성군으로 추대되는 성경 속 인물이다.

여성의 누드는 남성상과는 좀 다른 길을 걸어 왔다. 신상이라 하더라도 인간 여성들이 세상에 나와 겪게 되는 성적 대상화를 피할 수 없었다. 음부를 손으로 살짝 가리고 벌거벗은 채 잠들어 있거나, 거울을 보느라 다가오는 시선의 위험을 인지하지 못한 채 전신을 드러내고 있는 신화 속, 성경 속 여성 인물들이 수없이 그려졌다. 그러나 이들은 신화와 종교라는 튼튼한 방패막이, 즉 가장된 객관성이 있기에 신성이나 종교성을 떠나 음험한 시선을 받게 되더라도 그것은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다.

하지만 사적인 누드(private nude)가 주문에 의해, 혹은 화가의 취향에 의해 자유로이 그려지는 시대에 접어들면서 신화와 종교 따위의 탈을 걷어버린 여성 누드들이 그려지기 시작했다. 물론 이러한 변화는 미술 소재에 있어서 일종의 현대화라고 일컬어 질만 하다. 인간의 원초적 욕망이 미술작품에 적극적으로 깃들기 시작했다는 것은 앞으로 올 시대의 변화를 예고하는 것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미술사의 구분으로 보자면 로코코시대, 인간이 가진 가장 강력한 본능 중의 하나인 성적 욕망이 목가적인 풍경 속에서, 때로는 침실의 모습으로 그려지는 것이 허용됐던 시대에 그려진 사적인 누드 작품들은 귀족과 왕족들의 손에 쥐어져 그들에게 특별한 즐거움을 선사했다. 그리고 그러한 작품들은 압도적으로 여성의 누드가 주를 이루었다.

에로티시즘 자체는 죄가 없다. 이성을 사랑하고 그에 대한 에로틱한 욕망을 갖는다는 것, 그리고 그러한 감정이 작품에 드러난다는 것은 대단히 하지만 자연스럽고 인간적인 변화이다. 하지만 프랑수아 부셰(Francois Boucher)의 작품 ‘블론드 오달리스크’를 보면 어쩐지 멈칫, 미술작품을 볼 때 별로 꺼내들지 않았던 일종의 도덕감이 발동하는 것을 느끼게 된다. ‘오달리스크(odalisque)’는 하렘이라는 밀실에서 대기하며 왕인 술탄의 관능적 욕구를 충족시키는 여성을 총칭하는 말이다.

하지만 이 여성은 마리-루이스 오뮈르피(Marie-Louise O'Murphy)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는, 부셰를 위해 모델을 섰던 구체적인 인물이다. 가난한 집에서 태어나 재봉사로 일하다가 화가의 눈에 띄어 그가 원하는 포즈를 취해주었던 이 때 오뮈르피의 나이는 겨우 14세였다.

오뮈르피는 황금빛 긴 의자에 엎드린 채 상반신을 의자 등에 기대어 약간 일으키고 손에 파란 끈을 들고 만지작거리고 있다. 아마도 화가는 펑퍼짐하게 엎드려 있는 오뮈르피에게 섬세하게 자세를 주문했던 것 같다. 한쪽 팔을 의자 등에 올려 옆모습이지만 양팔이 다 보이도록 하고, 다리를 벌리되 그것이 하반신이 약간 화면 앞쪽으로 기울어 보이게 하기 위해 커다란 쿠션을 한 다리에 받쳐 주었으며, 다른 쪽 다리는 소파 쿠션 밑으로 내려 걸치게 했다. 이제야 포동포동한 엉덩이가 잘 드러나 보이고 한쪽 팔 아래 감추어진 가슴이 살짝 드러나 보인다. 언뜻 보면 무방비상태로 아무렇게나 누워있는 모습인 것 같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엎드린 신체의 구석구석을 조정하여 어떤 상상을 불러일으키게끔 섬세하게 배치했다는 것을 알 수 있는 것이다.

부셰는 이 그림이 너무도 마음에 들었는지 똑같은 그림 두 점을 남겨 현재는 독일 쾰른의 미술관과 뮌헨의 미술관에 흘러들어가 소장 중이다. 프랑스에서 이 그림이 처음 그려졌을 때는 절대권력이 하늘을 찌를 듯했던 루이 15세 시절이었다. 루이 15세의 애첩 퐁파두르 부인의 남동생이 이 그림을 소유하게 되었고, 루이 15세도 이 그림을 보게 되었다. 그림 속에 그려진 어린 여자아이가 어찌나 궁금했던지 왕은 자신의 앞에 이 소녀를 데려오라 하였고, 그 길로 오뮈르피는 어린 나이에 왕의 정부(情婦)가 되었다. 오뮈르피는 왕의 아이를 임신하게 되었고, 아이를 낳기도 전에 궁에서 쫓겨나 왕이 맺어준 다른 남성과 결혼을 하게 되었고 일생동안 세 번의 결혼을 했다.

이 작품 속에서 오뮈르피는 어떤 개성을 가진 소녀인지 전혀 알 수 없게끔 그려져 있다. 입술을 벌리고 화면 밖을 응시하며, 연분홍색 살결과 대비되는 파란 리본을 만지작거리면서 다리를 벌리고 있는 이 소녀의 ‘용도’는 명백해 보인다. 이 어린 소녀는 이 그림에서 성적인 도구로 사용될 수 있도록 그려져 있는 것이다. 이 그림을 그리는, 그리고 소유하는 남성의 시선에 자신의 신체를 무방비로 노출하고 있을 뿐 아니라 이 그림 속에 누가 침범하더라도 순응할 수밖에 없을 것 같은 유약하고 비자발적인 모습이기 때문이다.

비슷한 시기 장 오노레 프라고나르(Jean-Honore Fragonard)가 그린 ‘개와 함께 있는 소녀’는 여기서 한층 더 나아간다. 수동적인 포즈를 취하는 오뮈르피의 누드와는 달리 프라고나르의 소녀는 개와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는 듯하다. 잠에서 방금 깬 듯 머리보가 벗겨져 베개에 놓여 있고, 발그레한 얼굴에 미소를 머금고 어린아이답게 개와 발랄하게 장난을 치는 모습이 무척 즐거워 보이는 것에 반해, 다리 위로 강아지를 들어 올리는 포즈 때문에 하얀 엉덩이가 그대로 노출되어 있다.

이 그림에서 가장 공을 들인 부분은 소녀의 들어 올린 다리와 노출된 허벅지, 그리고 엉덩이이다. 얼굴에 시선이 가지 않을 정도로 허벅지에 공을 들여 마치 기름칠을 한 것처럼 살결이 반짝이기까지 한다. 이러한 자세일 경우 당연히 보여야 할 소녀의 성기 부분을 개의 꼬리가 가려주고 있지만, 이것은 또 다른 상상을 불러일으킨다. 이 그림은 아침에 눈을 떠 자신의 개와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는 어린 소녀의 한 때를 담아내고 있는 것처럼 그려져 있지만, 사실 보는 이들의 관심사는 소녀의 노출된 엉덩이와 가슴이 될 것이 자명하다.

이 그림들은 어쩌면 그 시대의 포르노가 아니었을까? 아이와 성인 여성의 경계에 있는 사춘기 소녀들의 앳되고 탄력 있는 몸이 취하고 있는 특정한 포즈를 바라보면서 도대체 무슨 감상이 들어야 마땅할 것인가 말이다. 이 그림 속 소녀들이 욕망의 객체가 되면서, 다시 말해 포르노적 관심의 대상이 되면서, 칸트적 예술의 조건 ‘무사심적 관심(disinterested interest)’은 일시 정지된다. 이 작품들은 미술사에 커다란 족적을 남긴 유명한 화가들의 작품이기는 하지만 값싼 포르노와 예술작품의 경계에 서 있는 것들이 아닌가하는 근본적이면서 복잡한 문제가 제기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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