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진명
온깍지활쏘기학교 교두

[충청매일] 2016년 브라질 리우 올림픽 양궁에서 우리나라 두 선수가 결승전에 올랐습니다. 장혜진과 기보배. 그런데 결승전이 치러지기 전에 저는 우승자를 알아봤습니다. 리우 올림픽 양궁장은 바람이 많이 부는 곳으로, 활쏘기 하는 사람들에게는 굉장히 어려운 조건이었습니다.

국궁에는 활쏘기의 기본 원칙이 몇 가지 있습니다. 그 중에 ‘선관지형 후찰풍세’라는 말이 있는데, 활을 쏠 때 지형을 먼저 보고 바람을 살피라는 말입니다. 따라서 바람이 많이 부는 리우 경기장의 특성상, 바람의 영향을 덜 받는 사법으로 쏘는 선수가 이길 것이라는 점을 저로서는 아주 쉽게 판단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활쏘기의 원리를 알면 이것을 판단하는 것은 어렵지 않습니다.

활쏘기에서 바람의 영향을 덜 받는 방법은 시위 잡은 손을 얼마나 더 세게 채느냐 하는 데 달렸습니다. 가득 당긴 시위를 놓는 것을, 양궁에서는 릴리이즈라고 하고, 국궁에서는 발시라고 합니다. 이 릴리이즈에서 기보배보다 장혜진의 동작이 훨씬 더 컸습니다. 그래서 저는 장혜진의 우승을 예단한 것입니다. 예상대로 금메달은 장혜진의 목에 걸렸습니다.

국궁에서는 시위 당기는 손을 ‘깍짓손’이라고 합니다. 엄지손가락에 쇠뿔로 만든 깍지를 끼기 때문입니다. 이 깍짓손을 발시 순간에 뒤로 크게 뽑습니다. 손이 쫙 펼쳐집니다. 마치 범의 꼬리 같기 때문에 구결로 이런 동작을 발여호미(發如虎尾)라고 했습니다.

이런 사법은 양궁 과녁 거리의 곱절이나 되는 145m라는 워낙 먼 거리를 보내야 하기 때문에 생긴 발상입니다. 깍짓손을 살짝 놓기만 하는 사람과 깍짓손을 야물게 채는 사람의 화살은 바람 속에서 완전히 다른 반응을 보입니다. 깍짓손을 야물게 뒤로 젖혀 떼면 화살이 바람을 뚫고 갑니다.(‘한국의 활쏘기’)

그런데 양궁에서는 이것이 쉽지 않습니다. 양궁의 특성 때문입니다. 양궁은 시위를 자신의 입까지만 당길 수 있습니다. 더 당겨서 만약에 뺨까지 들어오면 발시(릴리이즈) 순간에 시위가 뺨을 치고 맙니다. 따라서 최대한 당길수록 릴리이즈는 얌전하게 해야 합니다. 만약에 양궁에서 릴리이즈를 뒤로 잡아채며 하려면 잡아채는 그 만큼 미리 덜 당겨야 한다는 결론입니다. 다 당겨서 얌전한 릴리이즈로 하는 것과 덜 당겨서 발시 순간에 더 당기면서 하는 방법을 선택해야 합니다. 그렇지만 궁사들의 오랜 경험 상 얌전한 발시보다 야문 발시가 바람을 더 잘 이긴다는 결론이 난 것입니다.

장단점도 있습니다. 야물고 거친 발시는 흔들림이 많아서 화살이 흩어질 수 있고, 얌전한 발시는 그런 염려가 없습니다.

이 두 가지 발시 방법 중에 어느 것이 더 좋다고 말할 수는 없어 결국 궁사가 선택할 몫인데, 리우 경기장의 바람 많은 조건은 기보배보다 장혜진에게 더 유리했던 것일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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