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매일] 곤경에 처해있는 청풍도가 김주태가 대전리 인삼을 손에 넣게 된다면 청풍도가는 기사회생하는 약이 되는 것이고, 역으로 북진여각 최풍원에게는 독약이 될 터였다. 무슨 일이 있어도 그런 일은 막아야 했다. 그러나 봉화수가 대전에 와 언구로부터 이곳 사정을 듣고 보니 그런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되겠다는 확신이 들었다. 사람을 믿는 것이 가장 중하기는 하지만 일을 하는데 직접 만나 네 눈으로 확인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했다. 봉화수가 언구를 만나 직접 이야기를 나누고 직접 사정을 듣고 나니 대전 인삼이 청풍도가로 흘러들어갈 일은 걱정하지 않아도 될 성 싶었다.

“염려마시게! 장회로 갈 참이라 했지?”

언구가 길 떠날 행장을 차리는 봉화수 일행을 보고 물었다.

“장회임방 임구학 객주를 만나고, 오늘은 거기에 묵을 것입니다.”

봉화수가 오늘 자신의 일정을 임구학에게 알려주었다.

“여기서 수리를 지나 두어 마장 가면 가마티에서 내려오는 적곡천이 있어. 그 도랑을 타고 두어 마장 더 가면 수산에서 내려오는 도랑과 적곡천이 합수하는 데가 나와. 거가 원대여. 거기서 도랑을 타고 계속해 내려가면 옥순봉과 구담봉이 나오는데 장회나루는 구담봉 쪽으로 틀어야 해. 구담봉 아래가 나루여! 구학이네 장회임방은 거기여!”

언구가 길 떠나는 봉화수 일행에게 손금을 보듯 자세하게 길을 일러주었다.

“거가 도둑바위로 가는 길 아닙니까?”

봉화수가 아는 체를 했다.

“자네가 도둑바위를 어찌 아는가?”

언구가 놀라워했다. 도둑바위는 워낙에 후미진 곳에 있어 이곳에 사는 사람들도 대부분 말로만 아는 곳이고 실제로 그곳을 본 사람은 그리 많지 않았다. 그런 곳을 봉화수가 알고 있다니 언구가 놀랄 만도 했다.

도둑바위는 물론 골골이 도둑 붙은 이름과 관련된 이야기들이 왜 그리도 많은지 모르겠다. 꺼뜩하면 도둑이다. 대전에서 장회를 가려면 적곡천 계곡을 따라 가야한다. 적곡천 양쪽으로는 까마득하게 치솟은 바위산들이 계곡을 덮고 있어 하늘조차 빠꼼하게 보인다. 그 하늘조차 아름드리 나무들이 빼곡하게 들어차 언뜻언뜻 보여 쨍쨍한 대낮에도 어둑어둑할 정도다. 지금도 그렇지만 아무리 담력 센 장정도 그곳을 혼자 지나려면 간이 오그라들어 서너씩 동무를 만들어 지나는 곳이 그곳이었다. 그곳에 도둑바위가 있었다. 도둑바위 언저리에는 도둑굴, 도둑발자국, 할미바위 등 도둑과 관련된 흔적들이 있어 더더욱 사람들을 움츠리게 만들었다.

도둑바위에는 이런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었다. 그 이야기를 전하자면 이렇다. 옛날 임진란 때 왜병들이 조선 팔도를 유린할 때 이곳까지 쳐들어와 사람을 헤치고 물건을 빼앗았다. 사람들은 왜병을 피해 이곳 도둑바위로 피난했다. 그런데 왜란이 끝났지만 갈 곳 없어진 피난민들이 이곳에 계속해 머물며 오가는 사람들의 봇짐을 털었다. 그래서 사람들은 여러 사람들이 떼를 모으지 않으면 이곳을 지나는 것을 꺼려했다. 그런데 어느 날 웬 노파 한사람이 이곳을 홀로 지나가려 했다. 동네사람들은 혼자 가는 것은 위험하니 여러 사람들이 모이면 함께 가라며 말렸지만 노파는 급한 일이 있다며 홀로 길을 나섰다. 이윽고 도둑바위에 이르자 도둑이 나타나 노파의 보따리를 빼앗으려했다. 그런데 노파는 굴하지 않고 도리어 달려들어 도둑을 두들겨 패고 멀리 쫓아버렸다. 노파가 걱정된 동네사람들이 떼를 지어 도둑방위 아래 당도했을 때는 이미 노파는 온데 간 데 없이 사라진 후였다. 그때 도둑들이 있던 바위가 도둑바위이며 도둑이 남긴 발자국을 도둑 발자국이라 부르게 되었으며 도둑이 숨어 있던 굴이 도둑굴이 된 것이다.

봉화수 일행이 적곡천에 당도했을 때는 이미 한낮이 한참 지난 때였다. 긴긴 여름해라 해도 산 깊은 곳이나 골 깊은 곳 해는 달랐다. 양편으로 치솟은 절벽에 싸인 적곡천 계곡은 해 그늘에 가려 어둑어둑 어스름처럼 보였다. 지나가야 할 계곡 안쪽을 바라다보니 더욱 음산하게 보였다.

“아재, 워째 으스스합니다요!”

동행하던 동몽회 녀석이 잔뜩 어깨를 움츠렸다.

“으시시하기는, 나는 그런 네 놈이 더 무섭다!”

다른 동몽회 녀석이 허세를 부렸지만, 그 녀석 역시 무섬증을 느끼기는 마찬가지였다.

“휙휙 날아다니는 노파가 나타나면 어쩔까요?”

동몽회의 또 다른 녀석이 도술을 부리며 도둑떼를 혼내는 노파의 형상을 재현하며 우스게 소리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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