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매일]  “딸은 따서 뭣에 쓴답디까?”

“쓰기는 어디에 써, 딸은 아무짝에도 쓸 데가 없소. 외려 뿌리 양분만 빨아먹기 때문에 다 쳐버리는 거여.”

“그럼 저 건너 삼포에서 딸을 일일이 따고 있던데 그건 왜 그러는 거요?”

봉화수가 아까 지나왔던 건너편 인삼포 쪽을 가리켰다.

“글씨, 그깟 걸 다서 뭣에 쓸려고 그러나. 딸은 어린 삼에는 안 달리고 삼 년은 묵어야 달리기 시작하는데 그때부터는 뿌리도 막 자라기 시작하는 때라 딸로 가는 양분을 뿌리로 가게하기 위해 잘라버리는 건데 뭣 때문에 딴다나. 그래서 삼 년부터는 매해 여름이 되면 달리는 딸을 육년 근이 되어 수확할 때가지 모두 잘라버리는 거여. 또 딸은 아무 맛도 없구 따놔도 하루가 안 돼 시들어버리기 때문에 아무짝에도 소용없는 물건이여. 내가 평생 삼농사를 지어왔지만 그걸 따는 건 왜 그러는지 모르겠구먼!”

언구도 알 수 없다는 표정이었다.

“그래서 여기 바닥에 맨 딸들이구먼요.”

봉화수가 언구내 삼포 바닥에 널부러진 인삼 열매를 보며 말했다. 그러고 보니 인삼포 고랑에는 딸들이 빨갛게 떨어져 있었다.

“우리 삼포도 올해 수확을 해야 하는 육년 근이라 더 실하게 키우려고 다 쳐버린 거라네.”

언구가 삼포를 바라다보며 흐뭇한 표정을 지었다.

“삼은 언제 수확하는 겁니까?”

“화수 자네는 딸은 알면서 삼 수확하는 것은 안 배웠는가? 정작 중한 건 안 배우고 쓸다리 없는 것만 배웠구만! 인삼에 대해 배우려면 여기 대전에 와야 제대로 배우지, 어디 엄한 곳에 가 배웠는가?”

“그러게 말입니다. 배우려면 당차게 배워야하는데 설 배워, 선무당이 사람 잡습니다요.”

언구의 농 소리를 봉화수가 우스개소리로 받아 넘겼다.

“구월이나 시월에는 캐야하니까, 이제 두 달 남짓이면 캐야지.”

“작황은 어떻습니까?”

“특히 이번 삼은 아주 좋다네! 이 나이가 되도록 삼농사를 짓다보니 이제는 삼 이파리만 봐도 땅속에 들어앉은 뿌리가 내 손바닥처럼 환하게 보이는구먼!”

탐스러운 이파리가 수북하게 우거진 삼포를 보는 언구의 눈에서 꿀이 뚝뚝 떨어졌다.

“이게 그렇게 잘 된 삼입니까?”

“이르다뿐인가. 저 삼으로 최고의 홍삼을 만들어볼 테니 대행수께도 전해주시게. 그동안 입은 은혜를 이번에 톡톡히 갚아드리겠다고!”

언구에게 북진여각의 최풍원 대행수는 은인 중 은인이었다. 최풍원이 아니었다면 언구는 아직도 청풍도가의 손아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을 것이 확실했다. 청풍도가에 진 빚으로 인해 아무리 열심히 삼 농사를 지어도 자신의 손에 쥘 수 있는 돈도 없이 겨우 입에 풀칠을 하며 일만 직사하게 하고 있을 터였다. 언구의 빚을 갚아주고 언구가 농사를 마음껏 지을 수 있게 해주고 농사를 잘 지은만큼 이득도 더 보게 해준 사람이 바로 최풍원이었다. 그러니 어떤 일이 있어도 언구는 청풍도가에 매수될 일이 없었다. 하지만 대전의 다른 인삼 농가는 언구처럼 확실하게 믿을 수 없었다.

“수확철이 되면 덕산 임 객주가 올라오겠지만, 지금부터 아제가 단단히 인삼농가들을 관리해주세요. 아마도 수확이 본격화되면 청풍도가 놈들이 무슨 수를 쓸지 몰라요. 그러니 아제가 동네 사람들에게 단단히 일러 수삼이든 건삼이든 삼은 한 뿌리도 그놈들한테 넘어가지 않도록 해주세요!”

“그런 거라면 걱정 말게나. 우리 동네에서도 청풍도가 놈들에게 당한 사람들이 한둘이 아니여. 그놈들이 악독하게 한 짓은 이미 떠르르 소문이 나있어서 여기에 발붙이기 힘들거여.”

“그래도 워낙에 야비한 놈들이라 어떤 기발한 술수를 쓸지 모르니 각별하게 조심해야 할 거요!”

언구가 청풍도가에 다시는 속지 않을 거라며 자신만만하게 말했지만 봉화수는 누누이 조심할 것을 당부했다.

“여기 삼은 걱정하지 말라고 전해 주시게!”

“아제, 무슨 일이 생기면 즉각 여각으로 기별을 띄우세요. 그러면 곧바로 달려올 것입니다!”

봉화수가 언구에게 재차삼차 자꾸 당부를 하는 것은 그만큼 대전 인삼이 북진여각에 미치는 영향이 크기 때문이었다. 인삼은 고가의 귀한 물건이기에 돈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런 인삼이 만의 하나 청풍도가로 흘러들어간다면 북진여각 입장에서는 큰 타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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