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매일] 봉화수와 동몽회 패들이 박샘이 있는 새물동치에서 능선으로 난 산길을 따라 앞막골에 이르렀을 때 동네는 쥐 죽은 듯 조용하기만 했다. 하기야 앞막골은 동네라 할 것도 없었다. 이름조차 앞이 꽉 막힌 골짜기에 있는 동네라 붙여진 것이었다. 그래도 한 때는 십여 호 집들이 금방이라도 떠밀려 내려갈 듯한 골짜기에 다닥다닥 붙어 화전을 일구며 살던 곳이었다. 그런데 지금 형세를 보니 게딱지같은 초막이 그것도 두어 채만 집 꼬라지로 남아 있었다. 나머지는 기울거나 풀썩 주저앉아 짚더미인지 풀더미인지 가늠하기조차 어려웠다.

“화수 아재, 망했나 봐유?”

앞막골 여기저기를 살펴보던 동몽회 패 중 누군가 말했다.

“그런 것 같구나.”

“이런 데서 워떻게 살었을까유. 호랭이 나올까 무섭구먼유!”

“호랭이보다, 문지방 앞이 바로 비알이니 잠결에 오줌 싸러 나오다 산골탱이로 굴러 떨어질까 그게 더 겁난다.”

“이런 숭악한 골짜기에도 사람들이 살았다니 사람이 호랭이보다 더 무섭구나!”

동몽회원들이 앞막골 형세를 보며 나오는 대로 떠들어댔다.

“이놈들아, 사람 목숨만큼 모진 건 없다! 죽기 전까지는 어떻게든 살아야지, 어디 생목숨 끊는 것이 쉽더냐?”

“아재는 할배처럼 얘기하는구먼유.”

봉화수가 세상을 다 산 늙은이처럼 말하자 동몽회원 중 한 놈이 능글거리며 말했다.

“…….”

봉화수는 그 말에 대꾸하지 않았다.

봉화수는 앞막골을 보며 자신의 어린 시절이 떠올랐다. 봉화수가 난 곳도 산중 마을이었다. 그렇지만 앞막골처럼 험한 산중은 아니었다. 산중이거나 아니거나 무서운 것은 험한 산골도 무서운 짐승도 아니었다. 정말 무서운 것은 사람이었다. 짐승에게 물리면 약이라도 있지만 사람에게 물리면 약도 없었다. 봉화수는 아버지의 허랑방탕한 생활로 아주 어려서부터 권 교리댁에서 꼴머슴을 살았다. 아버지가 코흘리개나 다름없는 아들을 팔아넘겼기 때문이었다. 아버지는 거기에서 끝난 것이 아니었다. 어린 아들의 세경을 미리 끌어다 쓰고, 급기야는 어머니까지 노름빚으로 황 심보에게 넘긴 꼴이었다. 아버지는 역말에서 주막을 하며 고리대금을 하는 황 심보에게 노름 밑돈을 빌려 쓰고 어디론가 종적을 감춰버렸다. 빌려준 돈을 떼이게 생긴 황 심보는 제 먹이거리를 빼앗긴 호랑이보다도 더 지랄을 떨고 날뛰었다. 그러나 아무리 포악을 떨어도 먼지 밖에 나올 것이 없자 황 심보는 어머니를 제 집으로 불러 겁간을 했다. 그리고 어머니는 그 길로 집으로 돌아와 방문을 걸어 잠그고 물 한 모금 마시지 않고 굶다 한 달 만에 세상을 떠났다. 봉화수는 어머니 임종을 보지도 못했다. 기별을 받고 봉화수가 집으로 달려갔을 때는 이미 어머니는 뻣뻣하게 굳어있었다. 그 때 봉화수 나이 열두 살이었다. 그리고 최풍원을 만나 장사를 배우게 된 것은 그로부터도 한참 후의 일이었다.

“화수 아재, 여그 사람들 다 워디로 갔을가유?”

“이런 골짜기에서도 살 수 없어 떠났다면 다른 데를 간들 뾰족한 수가 있겠냐. 여기저기 떠돌며 걸뱅이나 하겠지. 그러다 병들어 빌어먹지도 못하게 되면 길바닥에서 비명횡사 밖에 더 하겠냐?”

봉화수가 완전히 내려앉아 풀 넝쿨이 뒤엉겨 집인지 뭔지 구분도 힘든 집터를 뚫어지게 바라보며 말했다.

“맞어유. 옛날에 우리 동네에서도 으드박지를 하며 돌아댕기던 걸뱅이가 하나 있었는데 동네 곳집 처마 아래서 앉은 채 얼어 죽었어유. 그래가지구 동네가 벌컥 뒤집히고 사람들이 몰려 가구 애들은 사람이 죽었다니까 무서우면서도 구경거리 났다고 달려가 멀리서 가슴 두근거리며 어른들이 하는 일을 지켜봤던 게 생각나유?”

“그래 워떻게 됐냐?”

“워떻게 되긴 뭘 워떻게 돼! 어른들이 멍석에다 둘둘 말아 지게에 지고 산으로 올라갔지.”

“그게 다냐?”

“그럼 그게 다지. 뭐가 더 있을 게 있어!”

“개뿔도 아니네!”

“사람이 죽었는데 개뿔도 아니냐?

“걸뱅이 하나 죽었는데 개뿔도 아니지, 그럼 소뿔이냐?”

“니 놈이 죽어도 그럴거다!”

뒤따르던 동몽회원들이 제 놈들끼리 떠들며 주고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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