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기석 시인 ‘디자인하우스 센텐스’ 출간

[충청매일 김정애 기자] 기하학적 이미지와 초현실적 상상력으로 언어의 한계를 넘어서는 시인 함기석의 신간 시집 ‘디자인하우스 센텐스’(민음사/ 1만원)가 출간됐다.

시인은 일찍이 평단에서 ‘시의 원리로 이 세상을 확장하고 점령하는 발명의 시인’으로 알려져 왕성한 생명력으로 자신의 시 세계를 확장해 가고 있다.

이전 시집 ‘힐베르트 고양이 제로’에서 추상적 기호로서 죽음의 풍경을 그려냈던 그의 시력은 이번 시집에 이르러 절정에 달했다. 예측할 수 없이 변화하는 ‘공간’에 집중하며 현실 위에 초현실적 세계를 구축하는 가운데 언어는 끊임없이 운동하며 시공간을 지배한다.

시간과 언어를 따라 한순간에 생겨나고 사라지는 이 무한 공간 ‘디자인하우스 센텐스’는 센텐스(문장)로 지어진 집이다. ‘불가능한 사건이 반드시 터지도록 설계된 다차원 건축물’인 셈이다.

‘두 개의 탄환이 무한을 날고 있다’(시인의 시 ‘포텐셜 에너지―언어’ 중)에서 시인이 발사한 이 탄환은 무한한 에너지를 가진 ‘언어’다. 시의 언어는 ‘창백한 백지’ 같은 현실에 발을 딛기 위한 시도로서 탄생한다. 이를 두고 시인은 시론집 ‘고독한 대화’에서 삶의 ‘비극적 허무와의 알몸 대면’이라고 말한 바 있다.

함 시인의 언어가 자주 호기심에 가득 차 결코 지치지 않는 아이의 몸을 하고 있다는 사실은 시가 현실을 찌르고 찢고 부러트리며 태어나 존재의 세계를 향해 가는 언어의 몸짓임을 암시한다.

언어와 사물 사이의 간극을 포착해내 파고드는 움직임 속에서 그의 언어는 육체성과 에로티시즘을 보여 준다. 단어들은 맨몸을 내보인 채 행과 행 사이로 미끄러진다.

시인의 시 텍스트는 현실에서 이탈한 욕망의 표출 장소가 아니라 현실 자체다. 모든 장소는 각각의 연이고 사물들은 벌거벗은 낱말이다. 현실 텍스트와 시 텍스트는 기형의 팔다리와 머리의 관계처럼 분리 불가능한 하나의 참혹한 신체기관이다.

낱말들은 살아 움직이는 주체가 되고 문장들은 모여 이상하고 낯선 새로운 공간을 창출한다. 이 창출된 공간들은 현실의 관점에서 바라보면 초현실의 공간이지만 낱말들에게는 자명한 몸의 공간이다. 이런 시각은 인간인 우리에게 관습화된 공간을 다시 바라보게 하고 공간들 사이에 무한히 깊은 숨은 공간들이 존재함을 각성시킨다. 현실을 초과한 시가 현실로 회귀하여 현실을 흔들어 현실을 다시 바라보게 한다. 

요동치는 언어들은 시공간을 휘고 뒤집는다. 현실의 공간은 어느새 초현실적 세계가 된다. 출근길 도시는 거꾸로 뒤집히고 하루는 뫼비우스의 띠처럼 아름다운 공회전을 시작한다. 이러한 초현실적 상상력이 실현될 수 있는 이유는 이 공간이 ‘센텐스’로 이루어진 기호의 세계이기 때문이다.

문장들은 자신에 앞선 문장들, 즉 자신의 ‘시간적 선구자였던 텍스트들을 살해’하며 공간을 붕괴시키고, 이를 통해 새로운 공간을 만들어 낸다. 문장은 곧 형을 선고하는 행위, 센텐스(sentence)인 셈이다.

‘디자인하우스 센텐스’의 세계는 무의식적이고, 언어의 자율성이 극대화된 무한의 공간이다. 시인이 설계한 다차원의 건축물에서 언어는 그 설계마저도 뛰어넘어 새로운 가능성을 향해 나아간다. 그의 센텐스를 따라 휘고 뒤집히는 다섯 개 공간을 여행하고 나면, 독자들은 언어의 최대치의 가능성을 엿볼 수 있다.

이원 시인은 ‘디자인하우스 센텐스’에 대해 “함기석 시 세계의 결정판이다. 그동안 초현실과 현실, 과학과 수학을 종횡무진 오가며 탐구한 ‘언어와 시’ 설계도를 볼 수 있다”며 “당신을 디자인하는 디자인하우스 센텐스인 나와 영원히 삭제된 센텐스 속의 주어인 당신의 ‘오늘·레이스’ 전모를 4D로 체험할 수 있다”고 했다.

박상수 문학평론가는 “만약 함기석 앞에 축구공이 떨어져 있다면 그는 축구공을 들어 뻥 차는 대신 축구공에 들어 있는 오각형 열두 개와 육각형 스무 개를 스캔한 뒤 오각형과 육각형이 들어 있는 무수한 다른 사물들을 상상하며 그것들의 관계를 이미지화하고, 추상 공간에서 그것들을 이리저리 잡아당기거나 접으면서 놀 것”이라며 “함기석처럼 사유하고, 상상하고, 유희하는 시인은 지금도 여전히 함기석이 유일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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